|
더러운 옷을 벗기라
231217낮 (슥3:1-5)
<1)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아멘
2023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금년은 유독 빠르게 지난 듯합니다. 두 주만 지나면 새해가 됩니다.
어릴 적 생각이 납니다. 가난했던 시절이죠? 그래서 새 옷을 입는 날은 정해져 있습니다. 일 년에 단 한번 새 옷을 사주십니다. 새해입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더러운 옷을 벗어야 합니다. 더러운 옷에다 새 옷을 껴입을 수 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먼저 더러운 옷을 벗깁니다. 그리고 간만에 가마솥에 물을 뜨겁게 끓여서 찬물을 타고 몸을 깨끗이 씻겨 주십니다. 그러고 나서 장에 가서 사온 새 옷을 입혀 주십니다. 일 년 중 제일 기분이 좋은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이 환상이 제가 지금까지 얘기한 어린 시절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는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솔로몬 성전입니다. 솔로몬 성전 건축 비용을 오늘날의 시세로 환산하면 들어간 금값만 약 900조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하나님께 건축하였지만, BC 586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패망했습니다. 이때, 바벨론이 쳐들어 와서 솔로몬 성전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성벽도 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쓸 만한 남자나 여자는 다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노인, 병자, 어린아이 같은 찌끄러기 인생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절망만 남았습니다.
이런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주시는 환상속에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첫째,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존재
2절입니다.
<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씀해주고 계신데..<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속에서 나무가 타고 있습니다. 그냥 두면 모두 타서 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불속에서 타고 있는 나무를 꺼내서 불을 껐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신세라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떠났습니다. 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 한명이 생겼습니다. 선교사님은 너무나 기뻐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을 믿습니까?”
이 말을 들은 토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낙엽을 긁어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벌레 한 마리를 넣고 불을 질렀습니다. 시뻘겋게 불타고 있을 때 그 토인은 벌레를 꺼내 살려 주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지옥 불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지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카나다 나무를 다 쌓아 놓고, 사우디 석유를 다 붓고, 미국 석탄을 다 쏟아 놓고 불을 지릅니다. 그렇게 뜨거운 불속에 지옥에서 꺼낸 사람을 넣으면 그 사람이 수염에 고드름이 달린 채 나오면서 말한다고 합니다. 아이추워”
지옥은 그렇게 뜨거운 곳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지옥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오직 한 분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냥 두면 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여야 할 인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불속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도 자기가 자기를 가리켜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불타다만 부지깽이다."
우리는 모두 불속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존재들입니다.
둘째, 더러운 옷을 입은 존재
3절입니다.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는 하나님 그리고 천사와 마귀가 있는 곳에 섰습니다. 그런데 자기 옷을 보니 더러운 옷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대제사장옷은 이 세상에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비싸고, 아름답고, 가장 깨끗한 옷입니다. 금실로 짰습니다. 12 보석이 앞가슴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이라는 보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으로 보였습니다. 인간의 옷은 더러운 옷입니다.
시기의 옷, 질투의 옷, 미움의 옷, 음란의 옷, 욕심의 옷, 혈기의 옷, 간교함의 옷, 교만의 옷, 이기심의 옷, 나태함과 게으름의 옷 같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옷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옷들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옷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옷들을 껴입고 살았으니 이제 벗으라는 것입니다.
셋째, 항상 사단이 대적하는 존재
1절입니다.
<1)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항상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죄를 참소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하나님 앞에서 대적 하고 있습니다.
욥도 사단의 참소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욥도 그런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다윗도 사단의 참소를 받았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자 마귀는 그를 참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훼방거리를 주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회개하였습니다.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삼하12:14절입니다.
<14)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죄는 용서받았어도 벌은 용서받지 못 하였습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간음으로 태어난 아들은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습니다. 다윗은 몹시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마귀의 공격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을 통하여 인간은 이렇게 세 가지 모습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첫째,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존재
둘째, 더러운 옷을 입은 존재
셋째, 항상 사단이 대적하는 존재
그 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본문 4-5절입니다.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선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겨주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시고, 정결한 관을 머리에 씌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스가랴가 본 환상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아름답고 깨끗한 옷을 입으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추하고 더럽게 보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불에서 타다 남은 부지깽이 같고, 마귀의 훼방을 받는 존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비록 그 모습이 더러운 옷을 입은 것 같아 추하고 부끄러워 보여도 하나님 앞에 섰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추하고 더러운 옷을 입었어도 하나님 앞에서 서면 하나님께서 더러운 옷을 벗겨주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추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였을 때나 큰 어려움을 당할 때,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양심에 참소합니다. ‘나 같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라는 수치심을 심어주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했을 때, 그들은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알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고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낯을 얼마나 피할 수 있으며 인간이 해 입는 옷으로 얼마나 수치를 가릴 수 있을 까요?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스스로 찾으셔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의 더러운 옷이 드러났을 때, 큰 어려움과 시험을 당할 때, 큰 죄를 범하고 수치스러울 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럴 때, 더럽혀진 우리의 옷을 벗겨주시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실 줄로 믿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우리를 하나님 품에서 떼어 놓으려고 참소하고 우리의 수치를 드러낸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더렵혀진 옷을 입고 여기까지 살아왔지만, 이제 하나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의 더러운 옷을 벗겨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새 옷을 입혀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더러운 옷을 벗었을 때 하나님이 입혀주실 아름다운 옷이 무엇일까요?
1. 꿈의 옷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소망이 없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쓸 만한 사람은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일할 수 없는 노인과 병든 자들과 아이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죄의 결과입니다. 마귀가 참소하고, 더러운 옷을 입고 어디를 보나 소망이 없습니다. 모두가 불속에서 타다 남은 부지깽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슥6:12-13절입니다.
<12)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싹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성전을 짓고, 성벽을 쌓고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꿈을 불어 넣어 주시고 있습니다. 스가랴의 이런 예언에 모든 백성들은 꿈의 옷으로 갈아입게 하였습니다. 절망의 옷을 벗어버리고, 꿈의 옷으로 갈아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쓰실 때 꿈부터 주시고 쓰십니다.
빌2:13절입니다.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꿈부터 주셨습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주 리라.”
“네가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땅을 네게 주리라.”
“네가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네가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모세를 부르셔서 쓰실 때도 꿈을 주셨습니다.
“내 민족을 인도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도 꿈부터 주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지 않고 꿈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꿈의 옷은 정말 아름다운 옷입니다. 꿈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꿈을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사람은 보기에도 추합니다. 생기가 없습니다. 눈에 초점이 없습니다. 삶의 의욕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런 옷들을 다 벗겨주시고, 꿈의 옷을 입혀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화려한 옷이 아름다운 옷이 아닙니다. 비싼 옷이 아름다운 옷이 아닙니다. 꿈을 가진 옷이 아름다운 옷입니다. 비싼 메이커 옷보다 작업복이 아름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깨끗한 흰 옷보다 기름 묻은 작업복이 더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하는 사람은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말과 행동의 옷입니다.
다시 슥6:12-13절 읽겠습니다.
<12)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하여 이제 절망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인상 깊고 아름다운 말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말이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것입니다. 말하는 것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싹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앞으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 한 마디는 온 백성에게 용기와 꿈을 주었습니다. 살맛나게 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포로생활 70년 동안 지치고 지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일어서게 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아내가 밥을 하다 보니 3층 밥이 되었습니다. 위는 설었고 가운데는 제대로 되었고, 맨 밑은 타버렸습니다. 그 때 한 남편은 소리를 지르면서 말합니다.
“이것을 밥이라고 한 거야?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는 거야?”
그러나 다른 한 남편은 말했습니다.
“오늘 세 종류 밥을 골고루 먹게 되는 행운은 다 당신 덕분이네~”
어느 것이 아름다운 말입니까?
우리 남편 분들 어느 쪽 입니까?
우리나라는 아들 중심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딸에 대한 속담이 많습니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다.”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 간다.”
“잘 키운 딸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다.”
“아들 키우면 버스 타고, 딸 키우면 비행기 탄다.”
이런 말들을 보면 다 뿌리가 있습니다. 딸을 첫 번 낳고 보니 미안해하는 며느리를 위로하려고 “첫 딸은 살림밑천이다” 하는 말이었습니다.
세 번째까지 딸을 낳으니까 더 위로하려고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 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편안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딸만 낳는 이를 위하여 “잘 키운 딸 하나가 열 아들보다 낫다” “아들 키우면 버스 타고, 딸 키우면 비행기 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아름다운 말과 행동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운동 코치가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시합이라 모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수 차 앞을 장의사 차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이 중얼거렸습니다.
“더럽게 재수 없네.”
그 때 지혜로운 코치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예전에 내가 선수시절에는 시합하러 나가다가 장의사 차를 보면 꼭 이겼다.”
이 말 한 마디에 모든 선수들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행동입니까? 말 한 마디에 감정의 기폭이 큰 법입니다.
스가랴는 아름다운 말로 온 백성을 사로잡았습니다.
아름다운 옷이란 아름다운 말입니다. 항상 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말이 아름다운 옷입니다.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게 하는데 용기를 주고 동기를 강하게 부여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포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성전을 짓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남을 편안하게 살게 만들어 주고, 보람 있는 일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행동이요, 아름다운 행동이요,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더러운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대제사장을 천사들이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었듯이...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더러운 옷도 벗겨주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해가 넘어가기 전에 더러운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고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