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세계 Ⅰ
현대 세계불교㉔ 브리티시와 불교학
실론에서 불교를 접하고 근대불교학
연구의 뼈대를 세우다
현대세계불교를 소개하면서 먼저 미얀마와 태국을 다루고 지금은 인도 불교권에 속한 실론(스리랑카)불교를 리서치하고 있다. 실론의 근현대 불교는 동남아인 미얀마와 태국불교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또한 브리티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런가하면 미국의 올코트 대령의 영향, 독일출신 비구들의 섬불교학파 형성 등, 실론의 근현대불교는 이처럼 동남아시와 서구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불교학 연구에서 영국의 위치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브리티시가 실론에서 불교를 접하고 근대불교학 연구의 뼈대를 세우게 된 전말을 리서치 해보기로 하자.
불교의 정경(正經)은 빨리어 대장경에 집대성되어있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경전 성립은 실론에서 이루어 졌다. 물론 대승불교 경전 위주의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 티베트 대장경 등이 있으나, 부처님의 직설(直說)을 모아서 경율론(經律論)으로 분류하여 삼장(三藏)이란 이름으로 문자화해서 편집한 것은 실론에서였다. 2천 6백여 년 전, 인도에는 종이도 없을 뿐 아니라. 문자가 없는 말만 있는 언어가 많았다.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용한 언어는 당시로서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던 지방의 한 방언이었다. 그렇지만 이 언어는 산스크리트어와 사촌정도 된 언어로써 이를 프라크리트어라고 하는데, 인도 중부 지방에는 이와 유사한 언어들이 몇 종류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당시의 마가다 지방에서 통용되던 빨리어로 설법을 했다. 부처님 당시
에도 문어인 산스크리트어가 있었고, 성도(成道) 이전, 태자신분일 때인 고오타마 싯다르타 시절, 그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베다를 배웠다. 하지만, 출가 이후 도를 이루고 일반인들에게 깨달음을 전파할 때는 마가다 지역의 통용어였던 빨리어로 설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언어는 문자가 없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기억에 의해서 암송하면서 구송하는 반복학습을 통해서 말씀을 보존 전승해 나갔다. 부처님이 열반(죽음)하자마자, 상수(上首) 제자들은 한 동굴에 모여서 부처님께서 남기신 말씀을 점검 확인하는 경전 결집회의를 개최하게 된다. 불교 역사에서 이 경전결집회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이 경전 결집회의에서 부처님의 말씀 즉 직설(正說)을 확인하여 결정하는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이런 경전결집회의는 3차까지 이루어 졌고, 제 4차는 실론에서, 5차 6차는 버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경전결집회의의 경전어(經典語=聖典語)는 석가모니부처님이 구사했던 구어로서의 빨리어가 된다. 불교가 다른 지역으로 전도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부처님의 말씀이 함께 따라 가야 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경전을 가지고 가야 하는가이다. 부처님 열반 이후, 수 세기가 지나면서 부처님의 정설(正說)에 바탕한 3차 경전결집을 통해서 확립된 경율론(삼장)을 기억해서 암송하여 구송하는 비구(승려)들에 의해서 보존되고 전파되었다.
기원전 3세기 불교가 실론 섬에 전해질 때도 수십명의 비구들이 불교전도를 위해서 실론 섬에 갔을 때, 전도단장은 아소카 대왕의 아들인 마힌다 비구였지만, 경전을 기억하고 암송하여 구송으로 전승해 주는 전문 비구들이 따로 있었다. 비구들은 경율론 삼장에 대한 전문 암송분야가 있
었다. 불교의 전파는 바로 이 삼장의 구송학습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대대로 전승되었다.
한편 인도 땅에서도 불교는 전지역으로 전파되었고, 발전해 갔다. 몇 세기가 흐르면서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상의 이견이 생겨나고 삼장 가운데 어느 특정한 분야만을 집중해서 의지하는 부파(部派)가 출현하게 되는데, 크게 대중부와 상좌부로 나뉘게 되고, 여러 부파와 부파에서 분파한 지파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여기서 이런 부파불교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한다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간단히 좁혀서 이야기 해보면, 인도의 남쪽 끝으로 전해진 상좌부(부처님 직설에 가까운)와 인도 북부로 전해진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사이에는 차이와 변화가 있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실론에 전해진 상좌부는 빨리어에 의거한 경율론 삼장을 통째로 암송하여 구송하는 전통을 유지했고, 북부 인도에서는 빨리어가 아닌 산스크리트어로 주로 아비다르마(論藏) 위주의 결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실론에서는 삼장을 문자화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렀는데, 실론 섬에 가뭄에 의한 기근이 들자 불교 승단에도 엄청난 파고가 몰려왔다. 암송에 의해서 구송으로 삼장을 전승했던 전통을 더 이상 고수할 수가 없자,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454년 후인 기원전 29년에 제4차 경전결집회의를 열고 말린 종려 잎(palm leaf)에 문자로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패엽경(多羅樹)이라고 한다.
구송에서 전승되던 삼장은 패엽경으로 전승되었는데, 인도에서부터 전해지던 삼장이 보존된 곳은 오직 실론뿐이었다. 이후 중세 시대에 실론은 이 패엽경으로 된 빨리 삼장을 버마와 시암(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 전파해 주었다. 그런데 빨리어는 본래 구어(口語)였기에 문자가 없었다. 부득이 실론의 신할라 문자로 빨리어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버마나 시암에서는 신할라 문자를 익혀서 빨리어를 학습하고 삼장을 배우게 되는데, 나중에는 자기 나라 문자로 빨리어 삼장을 역경하여 대장경을 조성하게 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을 한역(漢譯)하여 한역대장경을 조성하게 되었고, 고려는 이 한역경전을 근거로 고려팔만대장경을 조성하게 되었다. 티베트는 7세기 전후, 인도에서 유행하던 후기 대승불교와 밀교경전과 인도의 다양한 서적을 11세기 까지 티베트어로 역경하여 티베트 대장경을 조성하게 되어서, 오늘날 3대 대장경의 하나로 위상을 점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 시대부터 아소카왕 시대 전후까지의 초기불교는 실론의 빨리어 삼장에, 기원 전후부터 당나라 시대까지의 인도 서역에서 생긴 불교 경전은 중국의 한역대장경에, 인도 후기 대승불교와 밀교 등의 경전은 티베트 대장경에 축적되어 있게 된다.
지금 실론의 근현대 불교를 소개하고 있기에 이제 실론에서의 브리티시와 불교학에 대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위에서 고찰해 본 바와 같이 실론불교는 이처럼 중요한 불교경전을 보존. 전승해 오고 있는 나라임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했을 것이다. 실론은 브리티시 직할 식민지가 되면서 영국의 학자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리즈 데이비드(Thomas William Rhys Davids 1843–1922)라는 학자이다. 그는 젊어서 폴란드에서 산스크리트를 배우고 영어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는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고선 실론으로 가서
남쪽 갈레 지방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승가법(僧伽法)과 관련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빨리어를 알아야만 문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1871년에는 고고학위원회로 발령을 받아서 아누라 다뿌라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이 지역은 불교가 인도에서 처음으로 실론에 전해진 초전법륜지(初傳法輪地)로 아주 역사적인 곳이었고, 993년부터 폐허가 된 곳에서 비문과 사본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이 내용을 정리해서 로이얼아시아틱소사이어티 저널((Ceylo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Journal)실론 분원 메거진에 기고했다. 그는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실론비문과 경전 번역내용이 막스 뮐러가 편집한《동방성서》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발행되었다. 리즈 데이비드는 1882년부터 1904년까지 런던대학 강사로 근무했다. 1905년부터는 맨체스터대학에서 비교종교학과장이 되었다. 리즈 데이비드
교수는 영국에서 상좌부 불교와 빨리어 연구와 보급에 힘을 쏟았고, 영국 정부에 빨리어 산스크리트어는 영어와 같은 인도 유럽어족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정부의 관심과 예산지원을 호소했다. 리즈 데이비드는 1894년 유명한 빨리어 학자인 오거스타 폴리와 결혼하여서 부부는 평생 <빨리성전협회>를 운영하면서 빨리어 삼장을 영역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이 분이 빨리성전협회를 만들게 된 배경은 상좌부 경전어인 빨리어로 된 경전을 영역하여 출판한다는 목적이었다. 사실 19세기 말, 이런 아이디어를 내서 이런 일종의 출판회를 창립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고 할 것이다. 영국은 19세기 말경이면 동인도회사를 해체하고 인도정청을 만들어서 직접 통치를 할 무렵이다. 본격적인 식민정부를 운영한 것이다. 리즈 데이비드 교수는 영국 정부에 요청하기를, 같은 유럽어족인 빨리어를 학습하고, 빨리어 문헌을 영역하는 것은 인도 통치를 위해서도 필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주창한 것이다. 조선식민지에서 한국의 역사 언어를 연구해서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학술적 작업과도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식민지배 이데올로기 정책과 연관성이 있다. 그렇지만 리즈데이비드 교수는 조선 식민지의 일인(日人) 학자들 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순수한 불교학자라고 하겠다. 진정으로 빨리어와 불교사상과 철학에 빨려들어
갔다는 것을 그의 학문하는 자세에서 엿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리즈 데이비드 교수가 만든 빨리성전 협회에서 영역한 빨리문헌들은 상좌부 불교 연구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큰 초석이 되었다. 게다가 막스 뮐러라는 옥스퍼드 대학 교수의 정신적 후원을 받아서 빨리어 문헌 연구에 격려를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