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때 근사(近死)체험 이야기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근사체험은 일시적인 죽음 체험입니다. 순간적으로 심장박동이 멈췄다가 심폐소생술로 회생한 사람 가운데 10∼25%가 체험하게 되죠. 체외이탈 경험, 밝은 빛과의 교신,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친지와의 만남 등이 근사체험의 주요 유형입니다.”
―신비로운데… 영혼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근사체험 하면 영성술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과학적 실재입니다. 저는 과학자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근사체험은 랜싯(Lancet)이나 미국신장병학회지 같은 의과학 전문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내용입니다. 영혼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육신이 작동을 멈추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또렷이 유지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겁니다. 신비체험이라면 그런 학술지에 실릴 수가 없겠지요.”
―다른 사람의 근사체험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 겁니까.
“타인의 근사체험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공포를 없애줄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죽음이었지만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특히 말기암 환자처럼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크게 누그러뜨릴 수 있어요.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어 자살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15년 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것도 근사체험 현상을 공부한 덕분이었습니다.”
말기암 환자 연명치료는 무의미
―요즘 우리는 거의 모두 병원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우리는 가장 비참한 임종을 맞는 나라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가족들과 마지막 눈빛도 주고받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지요. 품위 있는 죽음과는 아주 거리가 먼, 외롭고 비참한 죽음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손자 손녀가 집에서 모두 지켜봤는데….”
―그래도 중환자실은 더 붐빕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연명치료가 늘어났습니다. 환자나 가족 의료진 모두 생명을 연장시키지 않으면 의료행위의 실패로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말기암 임종자까지 연명치료를 적용해야 할 것인지 의문입니다.”
―최근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동의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의 고통만 가중시키고 가족들에게 더 큰 아픔만 남기게 되지요. 연명의료결정법은 일본도 입법을 못했는데 우리는 했습니다. 연명치료에 집착하는 관행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자신이 말기암인지도 모르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사람도 있습니다.
“말기암 환자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건 좋지 않습니다. 환자에게 병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 더 효과가 좋을 수 있고 남은 생을 더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존엄하게 죽는 것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며칠 여행을 다녀올 때도 가족들에게 ‘문단 속 잘하고 밥 잘 챙겨먹고’ 이런 얘기를 하는데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아무런 얘기도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한다니요.”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생존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는데요.
“사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100세 환상’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100세 시대를 참 쉽게 얘기하는데 솔직히 100세까지 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여든이든 아흔이든 나름대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삶의 길이를 연장하려는 것보다는 삶을 잘 마무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족과 죽음을 얘기할 수 있어야
―주변 사람들의 장례식장에 가시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우리의 병원 장례식장에 가면 망자(亡者)는 없습니다. 시신도 그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떨어진 곳 냉동칸에 있지요. 떠나간 사람이 좋아했던 음악이나 영상 등을 조문객들이 공유하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죽음학자이자 의사로서 죽음은 뭐라고 정의하십니까.
“죽음은 겨울옷을 입다가 봄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입니다.”
―그럼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평소에 가족과 죽음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족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그때 그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유언장도 써보고 내가 좋아했던 음악이나 그림도 찾아놓고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해도 더 커질 겁니다.”
정현채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88년부터 서울대병원에서 내과의사로 많은 환자들을 만나왔다. 그는 여느 의사들처럼 생물학적 죽음관과 실증주의 과학교육에 충실한 의학자였다. 말기암 환자도 많이 봤지만 죽음을 자신과 연결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10여년 전, 나이 오십을 바라보며 문득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쳐들기 전까지는. 왜 딱히 그때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그 몇 해 전이니 그 때문이라 하기 어렵고, 건강에 특별히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종교적 관심은 아니었나?
“아니다. 종교적 교리나 문화적 전통에 의한 믿음이 아니고, 실제로 팩트가 뭔지, 죽음에 임박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 아내가 내게 선물한 책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사후생>(死後生)이라는 책이었다.”
취리히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한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의 근사체험과 삶의 종말체험을 관찰하고 연구해서 20여권의 저서를 발표한 죽음학 연구의 대가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에 꼽힐 만큼 권위를 인정받는 퀴블러 로스가 근사체험자들의 증언을 분석해 <사후생>에서 주장하는 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는 것이었다.
-근사체험자들이 말하는 게 뭔가?
“정신과 전문의 김자성 선생이 번역해 소개한 <사후세계의 비밀>(마이클 팀 저)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임종을 앞둔 어떤 할머니가 오랫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의식이 돌아와서는, 30년 전 죽은 남편이 아침에 와서 ‘오늘은 저승 갈 날이 아니나 사흘 뒤 떠난다’고 말했다는 거다. 그러곤 할머니를 돌봐주던 간호사의 죽은 남편이 전하는 말이라고, 부부만이 알던 어떤 사실을 이야기해줬다고 한다. 실제로 할머니는 이 말을 남기고 다시 혼수에 빠진 뒤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근사체험은 이제 의학의 한 연구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권위 있는 의학전문학술지 <랜싯>(Lancet)에 2001년에 실린 연구를 보면 네덜란드의 여러 병원에서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344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18%인 62명이 근사체험을 했는데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50%), 긍정적인 감정(56%), 체외이탈 경험(24%), 밝은 빛과의 교신(23%),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지와의 만남(32%), 자신의 생을 회고함(13%) 등이 공통된 체험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떠나간 사후세계에선 어떤 일이 펼쳐진단 말인가?
“우리가 죽어서 육신을 벗어나면 진동하는 에너지체로 존재하는데 그 주파수에 따라 비슷한 에너지체끼리 모인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체는 그것끼리, 증오와 질투로 살아온 에너지체는 또 그것끼리…. 절대적 심판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에너지체 스스로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그 구분은 보상과 징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고 새로운 영적 진화를 도모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윤회를 인정하나?
“그렇다. 윤회론은 불교나 힌두교의 전유물이 아니고, 미국이나 서구에서 오히려 연구가 더 많이 됐다. 우리는 미국이 건국되기 전부터 얘기를 해왔는데, 연구도 하지 않고 데이터도 없고. 아마 앞으로 미국 가서 윤회로 박사학위 받고 오는 사람도 생길 거다.”
-거듭되는 윤회에서 그럼, 이 생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주 빡센 신병훈련소라고 할 수 있다. 비물질계에서는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영혼들이 모이지만 지상에서는 주파수가 전혀 다른 사람들과도 봐야 하고, 그렇게 부딪히는 삶의 경험을 통해서 영적 성장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게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사후세계나 윤회를 인정한다면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컴퓨터가 이리저리 바이러스 먹고 자꾸 오작동하면 아예 리셋(reset)해서 초기값으로 돌려놓고 싶어지지 않나? 누군가가 ‘나는 이 생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 빨리 마감하고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을 ‘빡센 신병훈련소’라고 했는데, 그 과제가 힘들다고 그만두는 건, 학교에서 월담해서 뛰어나가는 거랑 똑같다. 그럼 어떻게 되겠나? 다시 들어와서 또 해야지. 초등학교 1학년 때 구구단 외다가 싫다고 나가버리면 다시 돌아와서 처음부터 또 구구단을 평생….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나? 다음 단계 올라가서 인수분해도 배우고 계속 성장을 해나가야 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감이 확 온다.(웃음)
인생은 빡센 신병훈련소, 사랑하고 감사하라
-이런 영적 세계를 과학으로 증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주목할 만한 학술논문들이 나왔다고는 해도 많은 부분은 여전히 신비가들의 주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다 입증할 수 있을까? 현대과학의 적용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오히려 과학자로서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물질계를 측정하는 잣대를 비물질계에 들이대는 건 타당하지 않다.”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로 삶을 산다면 뭐가 달라질까?
“나 같은 경우엔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우선 삶이 유한하다는 걸 절감하게 되니 늘 만나는 전공의나 자식들한테도 뭐 덕담이라도 한마디 더 해주고 싶어지고. 아침마다 전공의들이 발표를 하는데 어떤 때는 암만 봐도 뭐 별로 잘한 게 없는 거 같은데….(웃음) 꼼꼼히 보면 장점은 늘 있더라.”
-예를 들면?
“슬라이드 바탕을 흰색으로 해서 아침에 조는 사람을 적게 했다든가…(웃음) 그리고 주변에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는데 못한 거 있으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고. 얘기하면 그 사람은 벌써 잊어버린 경우가 흔하지만.(웃음)”
정현채는 아직 정년이 5년 남았지만 4년 전부터 자신의 연구실 비품이나 자료를 학교의 의학역사문화원에 기증해 오고 있다. 매년 다섯 번 헌혈을 하고 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강의노트를 복사해준다. 장기기증서약서와 유언장, 자신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기도삽관이나 연명의료를 하지 말라고 사전의료의향서를 써두었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쓸 음악을 90여곡 모아놓고, 수의 대신 무명 평상복을 입혀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사전장례의향서도 써 두었다.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이란 책을 쓴 미국 의사 아이라 바이오크는, 죽기 전 해야 할 일 네 가지를 제시한다. ‘사랑해요, 고마워요’라고 말할 것, 용서를 하고 용서를 구할 것, 작별인사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기란 쉽지 않다.
2010년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소가 ‘죽음의 질’을 조사한 것을 보면, 한국은 40개 나라 중 32위로 우간다보다 한 등수 위이다. 1위를 차지한 영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시티(CT)나 엠아르아이(MRI) 같은 고가의 장비는 3~4배나 많으면서 임종기 환자의 진통 완화를 위한 모르핀 사용량은 영국의 10분의 1이다. 전국의 호스피스 병상 수는 900여개에 불과하다.
-내 가족이 죽음을 맞이할 때 아름다운 임종을 도와주기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뭔가?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끝까지 유지되는 감각이 청각과 촉각이다. 의식이 없어 보이더라도 손을 꼭 잡고 할 얘기를 다 하는 게 좋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못다 한 이야기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수의 환자들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격리된 채 임종을 맞는다. 2013년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임종기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했지만 아직 법안은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가족과 따뜻한 작별인사라도 하고 떠나려면 죽기 전 해야 할 일이 많다.
2007년부터 11년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죽음학 강의를 해오고 있는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내과 전문의). 그는 “평소 가족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가족관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암병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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