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놓고 우리 정부와 일부 피해자·민간단체 간의 대립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러시아 극동 하바로프스크에 거주하는 사할린 동포 후손들이 지난 4일 하바로프스크주재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일본의 강제징용 행위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현지 TV 채널과 하바로프스크 고려인 연합회(회장 백규성)에 따르면, 하바로프스크의 사할린한인이산가족협회는 이날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1930년대 러시아 사할린섬으로 한인들을 강제징용한 일제의 행위를 규탄하고, 이산가족으로 만든 데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하바로프스크의 사할린이산가족협회 시위. 현지 방송이 취재중이다/사진출처:가족협회
시위를 주도한 사할린 동포 2세 세르게이 최 사할린이산가족협회 대표는 현지 TV '베스티'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일제는 경제 부양을 위해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사할린 남부로 끌고가 탄광과 벌목장에서 강제 노동을 시켰다"며 "그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인력 채용이 아니라 강제 노동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은) '꼰쩰라게랴'(концлагеря, 나치독일의 강제수용소/편집자)보다 거주 환경이 더 나쁜, 소위 '카타베이'(일본어 표현/편집자)라는 곳에서 살았다"며 "일본은 아직 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우리는 거의 80년간 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할린주한인협회(회장 박순옥)에 따르면 사할린에는 현재 3만여 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징용 등으로 사할린으로 끌려간 뒤 해방 후 귀국길이 끊겨 현지에 남겨진 1세대와 그의 후손 들이다.
다행히 고국으로 귀국한 징용 피해자들 중 일부는 일본 제철 등을 상대로 피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최종 승소했다. 한-일간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지난 3월 주도적으로 해결 방안을 제시했고, 징용 피해자 15명 중 11명이 이를 수용한 뒤 판결금(배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4명은 일본 기업으로부터 직접 배상을 받겠다며 수령을 거부한 상태다.
반면,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들은 강제징용 배상금 청구 등에 대해서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한인(조선인)들의 사할린 징용은 지난 1938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일제가 ‘국가 총동원령’을 발령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제는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대거 관동군에 징집했고, 이에 따라 노동력이 크게 부족해지자, 조선인들을 사할린섬으로 강제로 끌고가 탄광과 벌목장 등에서 강제 노역을 시켰다.
일제는 이후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한 조선인들을 또 다시 일본 본토로 끌고 가기도 했다. 소위 '사할린 한인 이중 징용'이다. 이 과정에서 또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다고 한다. 사할린 한인 단체들은 '이중 징용'으로 일본 본토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3,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현지 방송과 인터뷰하는 세르게이 최 대표
백 회장은 "하바로프스크 지역 방송이 사할린이산가족협회 측의 반일 시위를 취재하고 세르 게이 최 대표의 인터뷰 내용을 내보낸 게 이례적이고,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할린이산가족협회 측은 사전에 하바로프스크시 당국으로부터 시위 허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할린이산가족협회는 사할린에 본부를, 하바로프스크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 지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