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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 : 믿음 BIW : 신앙의 엄마가 되어라 AG : 사무엘의 아내
TS : 믿음이란 신실한 인격과 신앙을 겸비한 엄마로, 여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유대인 엄마들의 기도문
유대인들의 엄마들은 아래와 같은 기도문을 외우면서 자녀들에게 목욕을 시킨다고 합니다.
① 얼굴을 씻어주면서 = “하나님, 우리 아이의 얼굴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갖고 자라게 하소서.”
② 입안을 씻어주면서 =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소서.”
③ 머리를 감기면서 = “하나님, 우리 아기의 머리속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 차게 하소서.”
④ 손을 닦아주면서 = “이 아이의 손은 기도하는 손이요. 축복의 손이요 사람을 칭찬하는 손이 되게 하소서.”
⑤ 가슴을 닦아주면서 = “하나님, 우리 아기 가슴에는 하나님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⑥ 배를 씻어주면서 = “하나님, 우리 아기의 오장육부는 건강하여 튼튼하게 자라게 하소서.”
⑦ 성기를 씻어주면서 = “하나님, 우리 아기가 자라나 거룩한 성기관을 통해 거룩한 백성을 만들게 하옵소서. 결혼하는 날까지 순결을 지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어 축복의 자녀를 준비하게 하소서.”
⑧ 다리를 씻겨주면서 = “부지런한 다리가 되어서 온 나라와 민족에 하나님을 증거할 전도자의 걸음으로 인도하소서.”
⑨ 엉덩이를 씻어주면서 = “교만한 자리에 앉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 앉게 하옵소서.”
⑩ 등허리를 씻어주면서 = “보이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자녀들을 향한 유대인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엄마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자기 자녀들을 향하여 꿈과 비전이 없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요?
모든 엄마, 아빠들은 자기 자녀들을 향하여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엄마들처럼 구체적이지 못합니다.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을 향하여 구체적인 꿈을 가져야 합니다.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어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 세계적으로 0.2%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축복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 자녀들에게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도록 우리들도 노력해 봅시다.
우리 자녀들의 미래와 민족의 미래,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P4
신앙이 아주 좋은 가정에서 아주 훌륭한 신앙의 자녀가 태어나고 자라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 세워지는 가정이 아주 많다.
우리들 주변에 보면 신앙의 몇 대 손이라는 말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저는 괜히 신앙의 몇 대 손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가 팍 죽게 된다.
신앙의 1대를 형성하면서 목사로 부르심을 받고 주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신앙의 몇 대 손으로 목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저의 현실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우리 자녀들 세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한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하기도 한다.
신앙의 몇 대 손으로 주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세움을 입어서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신앙이 아주 좋은 사람인데, 그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지탄이 대상이 되는 가정들도 있다.
아버지에게서 흠집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이 완전한 신앙인의 삶을 살았는데, 그의 자녀들을 보면 개망난이가 되는 가정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 사무엘에게서 어떻게 이런 아들이 태어나서 이런 못된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사무엘의 두 아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은 그야말로 패악자, 개망난이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무엘이라는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다.
사무엘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흠잡을 데가 없이 완전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두 아들은 그렇지가 않다.
사무엘의 두 아들은 요엘과 아비야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개망난이로 살았던 것이다.
사사가 되었다는 말은 요즘 말로는 대통령이나 도지사, 시장이 되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나 도지사, 시장이 되었는데, 국민을 대상으로 장사하고, 뇌물을 받고,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일삼는 아무 못된 지도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들 두 아들은 아버지 사무엘이 살았던 삶의 모습, 신앙과 인격의 삶을 따라서 살지 않고,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뇌물을 받으면서 심각하게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럼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저질르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의 아들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무가내로 자신들도 이방인들처럼 살아야겠다고 주장하게 되었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찾아와서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민족들처럼 자신들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장로들의 말을 전해 들은 사무엘은 기막힐 정도이다.
그래서 기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라고 말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이방인들처럼 세상의 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왕이 존재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은 세상의 왕들처럼 사람이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왕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하기도 하고, 침략해 들어오는 이방 민족들과 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키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사람을 뽑아서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의 대리권자를 세워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도록 하셨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사람을 왕으로 세워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젠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왕들처럼 사람을 왕으로 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백성들의 요구대로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왕으로 세워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왕이 세워짐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무엘은 백성들을 모아서 왕이 세워짐으로 인하여 생겨나게 될 것들을 가르친다.
11-18절에서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하면서 왕을 세움으로 인하여 좋은 일들보다는 좋지 않은 일들이 넘쳐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계신다.
아들딸들이 왕의 노예처럼, 하인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아들들을 데려다가 군사로 삼을 것이고, 십일조를 빼앗아 갈 것이고, 백성들을 노예처럼, 하인처럼 취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왕을 세움으로 인하여 좋은 일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일들이 수없이 샹겨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사무엘이 전하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하면서 계속 다른 이방 민족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애원한다.
사무엘은 백성들이 애원하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너무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아프다.
백성들의 완악함, 무지함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민족들처럼 살겠노라고 결단하는 계기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결단을 할 수밖에 없도록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바로 사무엘의 아들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의 사람, 만인이 인정하고 추앙하는 사무엘에게서 이런 패악한 아들들, 개망난이같은 아들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이방인들처럼 살겠다고 주장하는 참극이 벌어지게 한 것일까?
무엇이 이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하도록 만든 원인이 되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이방 민족들처럼 자신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으로 왕을 세워달라고 주장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삼위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D4.
오늘 본문에서 성령 하나님은 성경에 이름을 기록하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등장하신다.
사무엘서는 전통적으로 사무엘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으로 인정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무엘과 두 아들의 이름은 기록하는데, 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다.
사무엘의 아내, 두 아들의 엄마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사무엘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두 아들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의 가정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왜 자신의 아내 이름 곧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의 엄마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일까?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엘의 아내, 요엘과 아비야의 엄마가 어떤 여인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사무엘이 자기 아버지와 엄마에 대해서는 기록하면서 왜 자기 아내, 두 아들의 엄마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사무엘이 태어날 사회적인 배경을 기록하면서 그 당시에 사사요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와 두 아들에 대해서는 기록하면서 엘리의 아내,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엄마에 대해서도 기록하지 않는다.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에 대해서는 잠깐이라도 기록한다.
아마도 엘리와 두 아들이 하나님 앞에서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패역한 아들, 개망난이와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엘리 대제사장 아내에 대해서도 전혀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두 아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특히 사사와 제사장으로 양육하지 못했기 때문에 엘리의 아내, 홉니와 비느하스의 엄마에 대하여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두 아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아들이 제사장이 되고, 사사가 되었음에도 패악한 지도자가 되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를 멸시하고 성막에서 수고하는 여인들과 간음을 행하고, 이스라엘에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엘리의 아내에 대해서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성경을 기록하도록 전폭적으로 감동을 주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성경을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시면서 엘리의 아내와 사무엘의 아내에 대해서 기록하지 못하도록 막으셨기 때문에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엘리의 아내와 사무엘의 아내에 대해서 기록하지 못하도록 막으셨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의 부모님 곧 엘가나와 한나와 브닌나에 대해서는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시면서도 엘리의 아내와 사무엘의 아내에 대해서는 기록할 수 없도록 막으신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두 여인을 성경에 기록하지 못하도록 막으셨기 때문에 사무엘이 성경을 기록하면서 엘리의 아내와 사무엘의 아내에 대해서 아무런 내용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왜 성령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자신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 두 아들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을까?
고고고고고대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날에 아버지가 할례를 행해 준다.
그러면 엄마가 아들에게 젖을 물리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양육해 나가는 것이다.
엄마는 아들이 젖을 떼기까지, 만 13세가 되어 성인식을 하면서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까지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철저하게 양육하고 교육시키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자라도록 훈육하면서 키우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들은 만 13세가 되어 성인식을 거행하고 나면 남자들의 세계, 곧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형님들의 세계로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남자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나라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서서히 이스라엘의 남자, 하나님의 남자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성인식을 거행하기 전까지, 만 13세가 되기 전까지는 여자들의 세계, 곧 할머니, 엄마, 이모, 고모, 누나들의 세계에서 자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인식을 하기 전까지의 삶, 곧 여자들의 세계에서 사는 삶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여자들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과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 하면 유대인이 되는 조건이 바로 엄마가 반드시 유대인 여자라야 하는 조건이다.
부모가 유대인이면 그 자식을 당연히 유대인이 된다.
엄마가 유대인이고, 아빠가 이방인이면 그 자녀는 당연히 유대인이 된다.
하지만 엄마가 이방인이고, 아빠가 유대인이라면 그 자녀는 결단코 유대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설령 유대인 남성이 이방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을 경우에는 이방인 여인을 유대인으로 개종시켜서 유대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혈통주의를 따라서 아빠를 중심으로 형성하는 민족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계사회로서 엄마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가계도를 세워가는 민족이다.
유대인이 되느냐? 이방인이 되느냐? 하는 갈림길은 엄마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남자로 태어나서 성인식을 하기 전까지 여자들의 세계에서 양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갓난아이로 태어나서 13세 성인식을 거행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백성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격과 신앙과 소양과 자질을 배우고 익히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여인들의 세계에서 자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인격과 품성을 배운다.
여인들의 세계에서 자라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철저한 신앙심을 배우며 자란다.
여인들의 세계에서 자라면서 토라를 읽고 배우면서 철저하게 613개의 계명들을 지키면서 자라게 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느냐?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인 엄마의 책임, 여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엄마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버지의 책임도 막중하다.
아무리 어머니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해서 아버지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책임도 막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가 온전한 신앙과 인격을 갖춘 언약의 자녀로 자라는 데에는 어머니의 책임, 아내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남자로 나라와 민족과 사회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 문화에서 가정에서 온전하게 자녀 양육의 책임은 어머니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무엘의 두 아들은 자라고 성장하여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두 아들이 하나님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 개망난이처럼 살았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요엘과 아비야의 엄마, 곧 사무엘의 아내가 두 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신실하게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양육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두 아들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향한 믿음의 삶을 살도록 양육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두 아들에게 신실한 신앙과 잘 다듬어진 인격의 삶을 살도록 양육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결국 이 여인은 두 아들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음에도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패역자, 개망난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사무엘의 아내는 두 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여인이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성경을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시면서 자기 아내의 이야기, 두 아들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사무엘의 아내는 두 아들을 하나님의 신실한 믿음의 아들들로 양육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사무엘의 아내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없었던 여인이지 않을까 싶다.
이 여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전혀 없는 여인은 아니다.
이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불신자, 이방인이 아니라 정당한 이스라엘의 딸이요 하나님의 여인이다.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기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살아 가는 여인들이다.
그렇지만 이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 뜨거운 심장, 뜨거운 열망, 뜨거운 열정이 없이 그저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뜨거운 열정, 마음, 심장,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무엘을 남편으로 만났음에도 자녀 양육에는 실패한 여인이 되고 만다.
이 여인이 자녀 양육에 실패한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상태까지 몰고 가게 된다.
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사사, 지도자가 되었음에도 하나님의 종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리하는 사사답게, 신실한 아버지 사무엘을 닮아가지 못하고 패역한 지도자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무엘 자신도 자기 자신과 아들들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아내가 아내로서의 사명과 엄마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여인이기 때문에 사무엘이 성경을 기록하면서 사무엘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감동을 주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무엘의 아내는 살아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하는 아내로서도, 엄마로서도 실패한 여인이다.
사무엘의 아내는 하늘 아버지 앞에서도 뜨겁지 않은 여인, 냉냉한 여인, 능력과 은혜는 없고 모양과 형식으로만 살아가는 여인이다.
이 여인이 요엘과 아비야를 신실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 언약의 아들로 훈육하며 양육했더라면 두 아들이 사사가 되었을 때 패역한 지도자가 되지 않고,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아버지 사무엘을 닮아가는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두 아들은 패악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나 가정에서나 나라와 민족 앞에서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못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 여인에 대하여 전혀 기록하지 못하도록 막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가정이란 열차는 남편과 아내라는 두 사람이 똑같은 신앙과 인격을 지녀야 탈선하지 않고 온전하게 운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의 신앙이 월등하고 아내의 신앙이 뒤떨어지거나 아내의 신앙이 탁월하고 남편의 신앙이 뒤떨어진다면 가정이라는 열차가 온전하게 운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보다는 아내의 신앙이 탁월하다면 그 가정이라는 열차는 그래도 온전하게 운행해 나갈 수 있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형편없는 남편이었다.
엘가나는 탁월한 신앙과 인격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그저 형식에 따라서 절기를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면서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엘가나에게도 한나라는 탁월한 신앙의 여인이 있었다.
한나라는 여인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는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탄원하며 기도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그 여인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새로운 지도자 사무엘이 태어나고 자라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것이다.
한나 여인은 너무나 탁월하게 신앙과 인격을 지녔기 때문에 그 속에서 태어난 사무엘은 한나 엄마의 헌신과 기도와 사랑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본래 제사장의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제사장직과 선지자직과 사사직, 이렇게 3직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세워주신다.
사무엘은 엄마의 헌신과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다.
이렇게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엄마인 한나 여인의 헌신된 신앙과 인격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무엘의 아내도, 엘리의 아내도 탁월한 인격과 신앙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귀한 일꾼, 지도자로 양육해 내지 못하여 가정뿐만 아니라 민족과 나라에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L4 & B4.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안중근이라는 사람을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서 독립투사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사람은 바로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라는 여인이다.
조마리아라는 여인은 자신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여인이다.
조마리아 여인은 늘 아들 안중근에게 “최후까지 남자스럽게 싸우라.”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아들이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서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만나자.”라고 하였다고 한다.
1910년 2월14일에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조마리아 여인은 아들에게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하게 목숨을 버리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명주로 손수 수의를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안중근의사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수의를 입고 당당하게 사형장으로 걸어갔다고 한다.
엘리의 아내도, 사무엘의 아내도 조마리아 여인와 같은 심정으로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사사로, 지도자로 양육하고 세워갔다면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을 떠나는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 부부가 다 함께 신앙과 인격이 탁월하여 오직 삼위 하나님과 성경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정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남편의 신앙과 인격이 탁월해야 하지만, 남편보다는 아내의 신앙과 인격이 탁월하게 더 좋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신앙과 인격이 탁월한 일꾼과 지도자로 양육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엄마의 인격과 신앙이 절대적으로 자녀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끼치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엄마의 신앙과 헌신으로 위대한 일꾼, 지도자가 되었던 사례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무엘의 엄마 한나의 이야기,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야기, 디모데의 엄마 유니게의 이야기,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뵈뵈 이야기, 어거스틴의 엄마 모니카의 이야기. 링컨 대통령의 새어머니 사라 이야기 등등 수많은 신실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신실하게 세워갈 수 있었다.
우리들 주변에도 신실한 엄마의 기도와 헌신으로 위대한 주님의 일꾼들, 사역자들이 배출된 사례들이 너무 많다.
교회와 가정의 신앙을 세워가는 것은 인격과 신앙에 탁월한 여인들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에 달려 있다.
신실한 할머니들, 엄마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여교역자들의 신실한 인격과 신앙에 따라서 가정과 교회를 세우고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의 일꾼들을 세워가는 것이다.
신앙의 여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정과 교회,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의 일꾼들, 지도자들을 낳고 양육하여 신실한 일꾼들, 지도자로 세워가는 막중한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내가 낳아서 키우는 자녀들, 아들, 딸들이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일꾼으로, 지도자로 세워질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하는 여인,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인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 손주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전폭적으로 성령 하나님께 붙들림받고 든든한 삼위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과 도우심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나 가정과 생업터전과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의 신실한 일꾼들을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의 여인, 헌신의 여인, 엄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신앙의 여인들, 신앙의 엄마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① 먼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직접 체험하며 살아야 한다.
엄마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엄마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간절한 마음으로 갈망하고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에 진실한 모습으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엄마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자녀들에게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전수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들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한 하나님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경험, 체험이 없다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전해줄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만난 하나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전해주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엄마들은 열정과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
②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식이라는 믿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한다.
10달 동안 내 배 안에서 키워서 배 아파 낳았으니 내 자식, 내 새끼라는 의식으로 사는 엄마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그 자식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하여 우리 가정, 우리 부부, 내 태를 통해서 이 땅에 보내주신 가장 보배로운 존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귀한 가장 생명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내 자식, 내 새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가장 귀한 생명이요 존재라는 의식과 사명으로 자녀들을 대하면서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를 매일매일 점검하고 체크하신다는 믿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③ 자녀들을 향하신 삼위 하나님의 비전, 꿈, 소망, 희망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하고 헌신하는 엄마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가지신 꿈과 비전과 희망과 소망이 있어서 보내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가장 귀하고 복된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와 모습으로 어느 나라에, 어느 민족, 어느 지역, 어느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아무렇게 취급해도 되는 생명, 하찮게 부려도 되는 생명, 막굴러먹어도 되는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복된 대접을 받으면서 가장 많은 사랑과 행복을 누리면서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는 신앙인 여성들, 엄마로서의 사랑과 헌신과 은혜로 자녀들을 위하여 쉬임없이 기도와 헌신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엄마가 기도하는 자식을 잠시 잠깐 비틀어지고 엇나갈 수 있을지라도, 끝끝내는 반드시 돌아온다.
엄마가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낳고 양육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하신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는 것보다 양육이 더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시때때로 변하고 바뀌는 아이들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의 제물이 되어야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과 지도자로 세워갈 수 있다.
믿음의 여인들, 엄마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엄마의 사명, 헌신과 사랑과 기도와 축복의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생명들, 영혼들을 책임지고 양육해 나갈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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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은 마음속에 평안과 안식을 준답니다.
진실한 말 한마디로 믿음과 행복을 줄수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어 진실한 목소리로 행복을 주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사랑과 행복으로 편안한 삶에 만사형통 하시고 즐겁게 아름다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