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이란 무엇인가: “코데쉬(קֹדֶשׁ)/카도쉬(קָדוֹשׁ)“ 레위기 19장 2절의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개역개정)”라는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대체 무엇을 요청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요? 표준국어대사전은 ‘거룩’을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로 정의하고, Oxford Languages는 ‘holy’를 “dedicated or consecrated to God or a religious purpose”로 정의하는데, 그렇다면 “거룩하라”는 명령은 뜻을 높은 곳에 두고 24시간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뜻인가요?
명사 코데쉬와 형용사 카도쉬의 어원적인 의미는 ‘분리(separate)’와 ‘다름(different)’을 의미합니다. 따로 떼어놓아, ‘다른 것과 다른’ 특별한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창세기 2장 3절에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라는 구절은, 그 일곱째 날이 무언가 금치장으로 빛이 번쩍번쩍하고 함부로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귀한 날이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일곱째 날은 다른 날과 다른, 특별한 날이며, 그 날의 다른 점, 혹은 특별한 점은 하나님께서 그 날에 창조행위를 멈추셨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성(聖)과 속(俗)의 이원론으로 이해하면, 일곱째 날인 안식일만 ‘성스러운(holy)” 날이 되고, 나머지 6일동안의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속된’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날이 귀하고 소중한 날입니다. 다만 일곱째 날은 다른 날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일을 하지 않으신 날이고,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부여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절기인 유월절과 무교절이 제정되는 출애굽기 12장 16절의 “첫날에도 성회(거룩한 모임)요 제 칠일에도 성회(거룩한 모임)가 되리니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라는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날과 일곱번째 날은 특별한 날인데, 어떤 점에서 특별하냐 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날과는 다르다.’ 출애굽기 28장에서 제사장의 복장을 규정하는 장면에서도 아론을 위해 “거룩한 옷”을 지어(2절), 그 옷으로 아론을 “거룩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 옷감이 값비싼 귀한 재질로 되어 있거나 어떤 신비한 힘이 깃든 옷이라는 뜻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입는 옷과는 차이가 나는 다른 방식으로 지어진 특별한 옷이라는 뜻으로, 그 옷을 입은 사람은 옷만으로도 그가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코데쉬/카도쉬”는 분리와 다름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단어가 나올 때는 어떤 면에서 다른가, 혹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옵니다. 레위기 19장 2절의 “너희는 거룩하라”는 명령은 “너희는 달라야 한다”는 뜻이기에 3절 이하에서 어떤 면이 달라야 하는가를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과 달라야 할 첫번째로 성경이 언급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이고, 그 다음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뒤따릅니다(레19:3). 다른 민족들이 어떻게 하든 간에 하나님 믿는 백성들은 자신의 부모를 두려움으로 공경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쉼 없이 일을 하건, 열흘에 한번, 혹은 십사 일에 한번 휴식을 취하건,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창조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6일을 일했으면 하루는 반드시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이 말하는 “거룩,” 즉 다름과 차이, 특별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대하는 ‘수직적’인 측면이고, 또 하나는 이웃과 사람들을 대하는 ‘수평적’인 측면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4절)는 명령과 제물을 드리는 특정한 방식(5-8절),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않는 것(12절) 등을 ‘수직적인 거룩’이라 한다면, 그 외의 대부분의 명령은 ‘수평적인 거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난민들을 위해 밭과 포도원의 일부를 추수하지 않고 남겨놓는 것(9-10절), 남의 것을 훔치지 않으며,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는 것(11절), 이웃을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노동자의 임금을 제때 지불하는 것(13절), 장애가 있는 이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14절), 공평과 정의로 재판하는 것(15절), 이웃을 희생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 것(16절),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며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17절) 등. 마지막으로, “너희는 거룩하라(2절)”는 명령은 그 유명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18절)”는 명령으로 귀결됩니다. 이러한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거룩의 두 방향성은 십계명의 두 가지 측면(수직적인 1-4계명과 수평적인 5-10계명: 제4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수직성과 수평성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과 연결되며, 그리고 마태복음 22장과 누가복음 10장에서 말하는 율법(성경)의 핵심인 하나님과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명령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너희는 거룩하라”는 명령이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셔야 할 때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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