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김상규
1984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 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42회 중앙시조신인상을 수상했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재학 중.
2025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E-mail: kimsanggyu84@naver.com
시인의 말
주디와 키다리 아저씨는 보육원을 떠났지만
우린 아직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25년 5월
김상규
불새잎눈
지나간 모든 것을 단번에 잊기 위해
수만 번 날갯짓하는 불새를 아시나요?
단 한 번 날아오르면 끄지 못할 섬광 같은
저 불티 잡아다 가슴에 품겠다고
몇몇은 빛을 따다 가지에 올렸지요
실패한 이야기들이 그물처럼 쌓였지만
우는 자의 밤이란 빈 새장 속 온기입니까?
텅 빈 줄 알았지만, 끝인 줄 알겠지만
아직도 두근거리는 나목 위의 심장들
프릭쇼(freak show)
여린 것만 낳을래, 바짓단 활짝 걷어
열두 번 벼락 맞은 우물에 몸을 씻고
독 오른 도롱뇽 잡아 눈에 넣고 비볐어
사내는 벗어버리고 고운 것만 품을래
두 입술 앙다물어 독니는 숨겨 놓고
모가지 높게 치켜든 붉은 지넨 뱉었어
노파가 쌓아 올린 광풍의 황무지는
긴 차양 드리워 성스러운 감람빛
저 혼자 살갗 깨부순 씨앗들만 꽃 피우지
허물 덮인 세상이란 단단한 비웃음이야
화사한 비늘 털며 구름 뭉게 그네 타면
구만 년 내 살에 박힌 오발탄의 아이들
*프릭쇼(freak show): 기형적인 외모의 사람들을
모아 구경거리로 보여주거나 곡예를 하는 공연.
존 그리어 보육원의 불량소년들
대장은 입을 열었다, 잘린 검질 들고
'세상의 흠집 속에 집어넣은 흔적이야,
헛간 밖 악취미들은 이제 그만 넣어둬.'
어린 낙오자만큼 멋진 것은 없었기에
모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를 훔치다 들킨 나도 역시 마찬가지
찻잔 속 도마뱀이 원장을 놀래줬을 때
선함보다 추악함에 마음이 끌렸을 때
불순한 공범이 되는 건 경이로운 일이었다
영원히 자라지 않을 손가락을 곁에 두고
대장은 또 누구를 황홀하게 홀릴까
고아는 참으로 견고한 담장 아래 흑마술
오래전 이곳을 떠난 곱사등이 패장은
독약을 손에 쥐고 우물에 빠졌다 했다
'조심해, 소문이야말로 낙인보다 깊으니.'
대장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불행했지만
우리는 겁 없이 불량함을 뽐냈다
조금씩 거뭇해지는 수염을 만지면서
제주 바다
깨친 채로 두세요, 누구나 알아차리게
뒤에 오는 철부진 내력 따윈 모른답니다
바람이 덧댄 문에서 비명 지른 이유도
바다는 유리 조각, 수없이 베었지요
맨발로 절뚝이며 여까지 도망칠 때도
몇몇은 상처를 보고 내 본향을 알았지요
힘겹게 건넜으나 한 번도 넘지 못한 곳
매일 밤 날 죽이며 나를 숨겨 놓았지만
유성은 삭풍 지난 조류에 더 밝게 비치던걸요
마닐라 봉투를 든 검정 고아의 나날
이제는 꺼낼게요, 나만큼 슬픈 것들을
잘 마른 토끼털과 딱딱해진 호밀식빵, 메
마른 숨소리와 차게 식은 엉겅퀴죽, 굶주
린 목양견은 이미 절 떠났으니 멀리서 날
찾아온 목숨 하나 꺼낼게요 매맞는 소년들
과 노예들의 낮은 영가, 쫓겨난 이방인과
털 없는 붉은 쥐 떼, 사라진 존재들과 사라
질 존재들 속 한 줌 남은 내 희망도 밖으로
나왔어요
지금 전 한갓 빈털터리, 이게 바로 나인걸요
해설
구멍 난 세계를 위한 레크웸
오민석 문학평론가
윌리엄 블레이크(W. Blake)가 쓴 「타이거(The Tyger)」라는 제목의 시에 “무시무시한 균형(fearful symmetry)”이라는 유명한 대목이 나온다. 시인은 어두운 숲속에서 무섭도록 밝게 불타는 호랑이의 눈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어떤 불멸의 손과 눈이/그대의 그 무시무시한 균형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 불을 뿜는 호랑이의 눈에서 블레이크가 읽은 것은 오로지 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질서와 균형이다. 물론 그는 개체로서의 한 존재에 나타난 신의 손길을 읽고 있다. 그러나 창조주의 시각에서 볼 때 피조물들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을 ‘무시무시한’ 수준의 질서와 균형은 개체만이 아니라 그것들의 집합인 세계에서도 나타난다. 불행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행운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태어나는 자가 있다면 죽는 자도 있으며, 가난한 자가 있다면 부유한 자가 있게 마련이다. 불행과 행운은 오로지 그것에 점유된 각 개체의 몫이 되며 개체 너머의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그것들의 분포와 배열은 놀랍도록 대칭적이다. 그러나 보라. 초월적 존재가 아닌, 제 운명의 담지자인 피조물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종종 결함투성이고 불공평하며 비대칭적이고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블레이크가 위의 시에서 개체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놀라운 균형과 질서에 주목했다면, 김상규 시인은 이 시집에서 개체의 현실 속에 구현된 비대칭과 불균형에 주목한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보육원, 사생아, 아동 성폭력, 불량소년, 오발탄, 소년원, 고아, 버려진 소년, 손목 긋던 그 밤, 악몽, 멍 자국, 날 버린 엄마, 정키(마약중독자), 기지촌, 지옥, 복수 같은 기표들은 모두 불균형과 비대칭으로 구멍 난 세계의 내면을 향해 있다.
불균형의 비극을 감당하는 개체들은 늘 세계의 균형과 대결한다. 불행은 왜 나에게(만) 일어나는가. 나는 왜 이 끔찍한 삶을 견뎌야 하는가. 나의 불행이 세계의 균형 일부라면, 하필이면 왜 내가 이 불행의 저울대에 서 있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감당하는 개체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것은 균형과 대칭과 조화가 아니라 불균형과 비대칭과 부조화이다.
거미를 길들이던 친구가 중얼댔다
‘여기서 나간다면 박쥐를 키우겠어,
젖 없이 자란 것들은 버릇이 없거든.’
‘웃기지 마, 방장은 자기 엄말 때렸고
신입의 여동생은 두 번이나 애 지웠대.’
내 말에 동의한 친군 스스로를 저주했다
왜 여긴 보육원보다 고아들이 많을까?
우리는 징벌방에서 어른으로 태어나고
거미는 어밀 삼켜야 줄을 칠 수 있었다
- 「소년원 친구들」 전문
“소년원”은 불행한 세계의 대명사이다. 그곳엔 불균등한 세상에서 불균등하게 밀려난 아이들로 가득하다. 그곳의 아이들은 징벌을 받아야 어른이 되고, “어밀 삼켜야” 비로소 제힘으로 살아가는 “거미”를 닮는다. “자기 엄마”를 때린 “방장”, “두 번이나 애”를 지운 “신입의 여동생”은 그런 세계의 그늘에 존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불행으로 행복한 자들의 대칭을 이룬다. 소년원은 불행과 저주와 징벌의 공간으로 행복과 축복과 포상의 공간의 대척점에 있지만, 그 내부의 구성원들에게 그것은 세계의 한 짝이 아니라 전부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 바깥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청동 지붕이 무겁게 내려앉은 그곳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문법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들은 어미를 죽여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됨으로써 다시 죽임을 당해야 할 대상이 된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시인의 산문]
호주의 한 부족은 화전을 짓기 위해 불붙은 나뭇가지를 검은 솔개에게 건네준다고 합니다.
저도 이제 건네주려고 합니다.
증오와 수치로 가득 찬 초원 속 수많은 비밀을.
솟아오를 새싹을 기다리며 홀로 숨죽이고 있는 원주민 아이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