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션을 보면서 받기를 원하는 것이 더 많이 있는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나의 대역의 움직임이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즐거워 하면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 동안은 가벼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답답하다는 말, 움직임이 멈춰졌다. 그리고 한참 답답함을 호소하시더니 누워서 아기자세로 손발을 들고 등으로 버둥거리는 모습이다. 유선생님의 말씀 손발을 않쓰고 있네요…. 유선생님의 여러 말씀 중에서 나는…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지 말아요. 감을 따야지”.. 라고 하신 말에 꽂혔다. 나는 예전에도 누군가에게서 이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때는 그 말에 나는 저항했었던 적이 있다. 왜 감을 따야하냐고… 감이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는데 왜 감을 따라고 하냐고…. 감을 따야 한다면 감이 먹고 싶을때 따 겠다고… 그 때를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할수 없는데 하라고 하는 말 처럼 들렸다. 그래서 포장했었다. 감이 떨어질때 까지 기다릴꺼라고. 감이 따고 싶지 않다고.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두려웠던 것이다. 예쁜 감을 골라서 터지지 않게 흠집나지 않게 잘 따야한다고 생각에 무서웠던거 였다. 내가 감을 딸 재주가 없는것이 들통날것 같아서 무서웠던 거였다.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나는 어떤가? 나는 감이 지금 먹고 싶은가?! 묻는다. 나는 감을 딴다면 어떤 감을 딸지 간보고 있는것 같다. 간을 너무 오래 보면 안되는것도 안다. 간 보고 있는 사이에 감은 다 익어 떨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그냥 일단 보이는 감을 따야 할것 같다. 하지만 감 따는 법을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했다. 유선생님께서 흔쾌히 “내가 알려줄께요?”하고 하신다. ”……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는 감 밭에 있다. 그 감 밭은 우주의 초대 받은 공간 처럼 나의 움직임으로 창조되는 공간이다. 우주의 감 밭! 그 밭에서 무엇을 할지를 선택하는것은 나다. 능동적인 행위!
엄마가 나에게 모든것을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어린 아이에서 자라나야 한다. 스스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능동적으로 나무에 열매를 따먹어야 한다.
나는 태어날때 이미 생명의 힘을 다 받았다.
어머니 당신은 주시고 저는 받습니다. 당신으로 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이제 어떤 것을 합니다.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받았습니다. 나머지는 저 혼자 합니다.
세션을 보면서 받고 싶은 마음에서 더 받고 싶은 갈망을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더 받아도 괜찮아 아직 받은게 없으니깐. 나는 엄마한테 환영받지 못하고 뱃속에서의 좌절을 먼저 맛보았으니 엄마가 계속 나한테 뭔가를 줘야해. 세상은 나에게 뭔가를 줘야해. 나는 열심히 살았고 나의 욕구를 죽이고 참고 살았으니깐 나는 뭔가라도 받아야해… 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집에서도 명절때 싸주는시는 모든 것들을 받아왔습니다. 양잿물을 준다면 그것도 받아 갈꺼라고 그래서 비누라도 만들꺼라고 할머니에게 말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처럼 수동적인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린아이의 어리광이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피할수도 없도 피해서도 않되는것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사는것을 포기합니다. 능동적인 행위의 주인으로 내 삶의 어른으로 책임을 선택합니다.
첫댓글 선생님 저널을 읽으니 몸에 소름이 돋네요. 선생님의 이슈가 저의 이슈와 맞닿아 있어서 그런가봐요.
여우의 신포도 얘기도 떠오르고요.
선생님 대역을 서면서 자유롭게 춤을 출 때 유명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저렇게 무대에서 아름답게 춤을 추기 위해 얼마나 뒤에서 많은 연습을 할까요?"
남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제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을 손발을 움직여서 할 때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