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무정에서 내려오면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잔디밭 오른쪽 야트막한 둑에 올라서면 쏴~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쌍천이 보인다. 본래 쌍천이 마을 앞에 흘렀으나, 1954년 큰 수해가 난 뒤 마을 밖으로 물길을 돌렸다. 뒤를 돌아보니 설악산의 수려한 봉우리들이 우뚝하다.
배처럼 생긴 마을에 만든 돌로 된 돛, 행주석범
5분쯤 둑을 따라 하류 쪽으로 내려가면 거대한 돌탑을 만난다. 행주석범(行舟石帆), ‘돌로 된 돛’을 뜻한다. 상도문돌담마을은 배처럼 생겼는데, 사람들이 배에 돛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 400년 전쯤
돌탑을 쌓고 돛을 대신했다. 돌탑은 1954년 수해로 유실됐고, 2012년 새로 쌓았다.
단층집과 한옥, 돌담이 정겨운 마을 골목
둑을 따라 돌아오다 보면, 중간쯤에 마을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 그 길로 내려와 마을 골목을 구경한다. 한옥이나 단층집마다 작은 마당이 있는데, 특이하게 대문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침 주민을
만나 물어보니, 예전부터 마을에 대문이 없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열린 마을 같아 기분이 좋다.
‘보고픈 집’ 마당에 딸이 아버지 이름으로 쓴 삼행시가 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 나온 ‘보고픈 집’ 간판을 단 가옥이 보인다. 꽃이 가득한 마당 가운데 딸이 아버지 이름으로 지은 삼행시가 있다. “김 : 김정배라는 사람 내 아버지 / 정 :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 배 : 배 아파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내 아버지라 자랑스럽습니다.” 딸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돌담 담쟁이덩굴에 앉은 부엉이 가족
골목은 돌담과 한옥 지붕이 어우러져 정감이 넘친다. 상도문돌담마을의 돌담은 돌이 크다. 사람
머리만 한 돌도 많다. 주민들이 작은 돌멩이에 참새, 고양이, 부엉이 등 친숙한 동물을 그려 담에
올렸다. 다양한 스톤 아트로 꾸민 돌담갤러리가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돌담에 이따금 보이
는 시가 오윤환의 〈구곡가〉다. 수려한 자연환경에 구곡을 정하고 시를 짓는 문화는 유서가 깊다.
함경도식 가옥의 특징을 보여주는 속초매곡오윤환선생생가
마을 중간쯤에 자리한 속초매곡오윤환선생생가(강원문화재자료 137호)는 생김새가 독특하다. 전면 4칸에 측면 2칸인 ‘ㄱ 자형’ 함경도식 겹집으로, 본채 지붕에서 낮게 이어져 마구간까지 내려오는
선이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느낌이다. 오윤환은 제자들과 3·1운동에 참가해 옥고를 치렀고, 단발령과 일본식 성명강요에도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에서 주인장의 강건함이 풍기는 듯하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인형극 〈상도문 사람들〉
마을은 속초도문농요(강원무형문화재 20호)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속초도문농요전수관을 비롯해 주민들이 도문농요의 전통을 이어가며, 인형극 〈상도문 사람들〉로 농요를 널리 알린다. 시골 마을이지만 주민들의 흥과 끼는 도시인보다 많다.
금강소나무가 일품인 송림쉼터
속초도문농요전수관 뒤쪽에 송림쉼터가 자리한다. 쉼터 앞 너른 연못에 물레방아도 있다. 금강소나무가 가득한 솔숲 안으로 난 산책로를 느긋하게 걸어보자. 잠시 멈춰 솔 향기를 맡으며 쌍천의 맑은 물소리에 귀 기울인다. 마음 가득 평화로움이 물결친다. 상도문돌담마을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주민이 거주하는 곳이므로 해가 진 뒤에는 방문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입장과 주차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