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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주일 성수 훈련
20: 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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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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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연동교회가 연못골에 세워진 교회창립 112주년을 맞는 주일입니다. 지난 112년 동안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시대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고, 교회는 세상을 위한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는 112 주년이기에 특별한 행사는 없습니다. 115주년의 행사와 사업을 위하여 힘을 결집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그 지향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세 가지 지향을 가집니다. 첫째는 상향(upreach) 입니다. 위를 향한 것입니다. 둘째는 내향(inreach) 입니다. 안을 향한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외향(outreach) 입니다. 상향은 예배를 통하여 성취 가능합니다. 내향은 교육과 훈계를 통하여 성취 가능합니다. 외향은 섬김 혹은 돌봄을 통하여 성취 가능합니다.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는 교회로서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예배나 주일 성수가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교회에서의 주일 예배가 강조되어야 합니다. 교회와 주일과 예배는 앞으로 더 강조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주일을 잘 지킨다 즉 성수한다는 것은 성도의 기본 의무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 중의 하나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학교에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개근한 모범학생으로 45년간의 세계 기록을 낸 미국 죠지아주 어거스타 장로교회의 몰간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2,340 주일을 계속 참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을 다시 필라델피아의 파우어즈씨가 갱신했는데 그는 무려 56년간 즉 2,936 주일을 주일학교에 개근했습니다. 그러나 기네스북의 기록에 의하면 일리노이즈 주의 다아브씨가 57년간, 즉 3,000주일 개근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이 계명은 평안의 계명입니다. 기쁨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안식일을 지키면 평안하고,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행하면 그 자체가 평안이고 기쁨입니다.
현재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일을 휴일로 지킵니다. 기억하여 안식하라고 하신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노동에서 단순한 해방이 아닙니다. 이제는 단순히 쉬는 의미가 아니라 더 많은 일을 위한 재충전 날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의 필요성은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게 하는 것입니다. 이 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체 리듬입니다. 육신과 정신은 쉼이 필요합니다. 재충전은 재생산의 시간입니다. 쉬는 것이 예배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배를 통하여 영육이 쉼을 얻기 때문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 어떤 분이 질문하였습니다.
“주일에 소가 우물에 빠지면 건지겠습니까? 건지지 않겠습니까?” 그 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물론 건져야죠, 그러나 그 소가 주일마다 우물에 빠진다면 그 소는 팔아 치우십시요”. 습관적으로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만 되면 피곤이 몰려온다고 합니다. 이런 소는 팔아치워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주일에 교회에 가기 싫은 것은 불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런 불신앙을 벗어나서 주일성수에 익숙하여 주일성수가 일상이 되게 하기를 바랍니다.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첫째, 복되고 거룩하게 한 날이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출애굽기 20:8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0:11 하반절에는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아주 강한 명령입니다.
거룩하게 하신 날을 우리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거룩이란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이 날을 다른 날과는 다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거룩의 조건은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일 날 탁구를 쳤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일 날 운동 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일 날 등산을 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 한 일이지만 다른 날과 같은 일인가 아니면 다른 날과 다른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의미가 달라야 하고,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일 날 예배 후에 집에서 뭘 하고 지내십니까? 극장에도 가고, 쇼핑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청소도 할 것입니다. 이것을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주일을 성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리문답 60문에는 “다른 날에 합당한 여러 가지 세상일과 오락까지 다 그치고 그 시간을 봉사와 예배에 바쳐서 사용할 것이요. 그 외에는 사세 부득한 일과 자선 사업에 사용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주일에는 세상 일과 오락을 금합니다. 봉사와 예배는 하나입니다. 부득이한 일과 선한 일을 하라고 합니다. 기억하세요. 아무것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죄입니다.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지배받는 삶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배해야 합니다. 주일을 부정적인 제한으로 채우지 말이야 합니다. 일하지 말고 무얼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으로 채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일을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하고 긴장된 날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주일이 오히려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하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주일을 이렇게 만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서기관들의 규례 가운데는 안식일의 조례가 39가지가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200규빗 이상 걷지 말라고 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긷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유의 조례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밀밭 사이를 가시가다 밀을 따서 손으로 부비셨습니다. 따는 것도 어긴 것이고, 부비는 것도 어긴 것입니다. 이런 조례들이 거룩하지 않다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거룩이란 단어는 ‘잘라서 떼어놓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어원은 ‘베어내다’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어입니다. 어원으로 보면 주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잘라서 떼어놓아야 합니다. 다른 날로부터 베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날이 됩니다.
주일은 다른 날과는 달라야 합니다. 똑같이 밥 먹고, 옷 입고, 운전하고, 걷지만 그러나 그 의미가 달라야 하고, 태도가 달라야 합니다. 음식을 절제하고, 건강하게 먹고, 옷을 경건하고 정갈하면서 남에게 피해 안주고, 삶의 자세가 남에게 은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태도를 보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모든 순간은 거룩한 순간이며 삶 자체가 은혜”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만든 날을 거룩하게 지키면 복된 날이 됩니다. 원래 인간의 노동은 죄의 대가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안식하려고 다른 노동의 날과 구별한 거룩한 날이 안식일이며 이 날이 축복의 날입니다. 주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킴으로 이날이 우리에게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주간의 첫날이 주일이 되어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사도행전 20:7에는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기 전에는 모이는 날이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후에는 첫째 날이 모이는 날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안식 후 첫날이었고, 부활하심을 기념하여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큰 일은 창조였습니다. 엿새 동안 창조하신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정하고 안식일을 일주일의 마지막 날로 정하였습니다. 이 날은 요즘으로 말하면 토요일입니다. 신약에서 가장 큰 일은 부활입니다. 구속사업은 안식 후 첫날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 날이 일요일이며 우리가 주일이라 부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무 갈등 없이 안식일 대신 주일에 모여 예배와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안식일 문제를 극복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6:2에는 “매주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라고 합니다. 매주의 첫날이 주일이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오면서 바뀐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할례가 세례가 되었습니다. 오순절 잔치가 성만찬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이 주일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교가 기독교에 끼친 영향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전수한 일입니다. 둘째는 회당예배를 본으로 교회 예배의 틀을 만든 일입니다. 셋째는 일주일의 하루를 예배와 안식의 날로 결정한 일입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성경에 의거하여 정한 모본입니다.
바울은 안식일을 지켰고, 회당을 찾았습니다. 바울은 유대주의의 전승을 잘 지켰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달되기 시작할 즈음에 이방인들은 태양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태양신을 섬기는 날을 일요일(Sunday)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이방 전승과 이 날이 부활의 날이 된 것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확실한 주일이 되었습니다. 예배의 날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대치하는 안식의 날이 주일이 된 것입니다.
주후 321년 콘스탄틴 황제는 주일을 공휴일로 공포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공식적으로 국가가 주일이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주후 155년 순교자 저스틴은 “주일이라 불리는 날에 도시에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한 장소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무렵에 이미 주일 예배가 시행된 것입니다.
이제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성수해야 합니다.
이사야 58:13부터 14절 상반절까지에는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즐거움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루터는 “주일 준수는 교회의 권위에 의해 안식일 대신 필수적인 것으로 제정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5에서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사랑하는 일을 하고 살리는 일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선한 것을 하는 날이 주일인 것입니다.
결론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 때는 영웅이었던 그가 죄인의 몸이 되었지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기자가 어렵사리 나폴레옹에게 말을 건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백발을 휘날리던 나폴레옹은 눈을 지그시 감고 눈물을 흘리며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지. 잠시 전투를 그친 어느 주일 아침,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들려왔지.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갔지. 그때 눈물을 흘리며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 봤다네”라고 하였습니다.
천하의 나폴레옹이 주일 아침에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을 얻은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예배하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참 안식이 있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2:16에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배의 날이 안식일에서 주일로 된 것은 더 이상 논란거리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미 주일이 예배의 날이 된 것은 바울 당시에도 기정사실이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이 건강법을 ‘일무, 이소, 삼다’라고 하였습니다. 일무는 한 가지 하지 말 것으로 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소는 두 가지 작게 할 것으로 소식(小食), 소량(小量)이라고 합니다. 소량이란 술을 적게 마시라는 말입니다. 삼다는 세 가지 많이 할 것으로 다동(多動), 많이 움직이고, 다휴(多休), 많이 쉬고, 다접(多接), 많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에 교회에서 이 세 가지가 다 됩니다. 교회에 오면 많이 움직이게 되고, 많이 쉬게 되고, 많이 만나게 됩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사람이 건강한 것도 이런 이치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요일을 말할 때 주의 날,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준비하는 날,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참 성경적입니다. 성경은 안식일 전날은 예비일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요일을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이런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날이 삶의 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일 때문에 다른 날이 있어서 노동과 안식의 균형이 이루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어 안식의 복을 누리고 삶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을 잘 지켜 안식함으로 또 다른 일을 위한 재충전의 날을 얻기를 바랍니다.
주일성수의 훈련을 잘 하여 주일성수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