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배둔역(背屯驛)> 해암 고영화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에 위치한 배둔역(背屯驛)은, 조선시대 경상도 고성(固城)에 위치한 역(驛)으로, 경상우도 소촌도(召村道)의 속역(屬驛) 중 하나였다. 고려시대 산남도(山南道)의 속역인 배돈역(排頓驛)에서 유래하여 구한말까지 존속한 전통시대의 역이었다. 배둔(排頓)의 지명 연원을 ‘배가 줄이어 머문 형국’에서 유래했으며, 배둔역의 관계성은 고려시대 이래의 해안(海岸) 교통로를 이으며, 그 동서로는 진해현의 상령역과 고성의 송도역을 연결하였다. 또한 그곳에 '박석걸'이란 지명이 남아 있어 길에 바닥돌(박석 薄石)을 깔았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이 소촌도에 속한 관도가 지나는 곳이며, 가까운 곳에 배둔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1916년에 조사한 <방화산(芳華山) 국유림 경계도>에서 보듯, 배둔역은 방화산 남쪽 모퉁이에 있었다. 이 경계도에는 배둔천을 가운데 두고 북동-남서향의 옛길이 그려져 있으니, 배둔역을 나선 길은 방화산의 남동쪽에서 배둔천을 건너 북동쪽을 지향한다. 바로 회화농공단지 남쪽에서 진북면 오서리로 이르는 울빛재(우비치 牛飛峙)로 길을 잡은 것이다.
◯ 아래 시편 중에 강유(姜瑜)는 해안에 가까운 배둔역의 초여름 정경을, 오횡묵(吳宖默)은 배둔역의 좁은 역참방에서 하룻밤 청한 불편한 잠자리에서 느낀 소회를 읊었다.
<시골집으로 돌아가다가, 배둔역에서 비를 만나(歸庄次背屯驛逢雨)> 강 유(姜 瑜,1597~1668) 조선중기 문신.
古驛靑山擁 오래된 역이 푸른 산에 끼였고
閒庭綠樹濃 한가한 뜰에는 푸른 나무 짙네.
天非留五馬 하늘이 다섯 마리 말을 남겨둔 것은 아니지만
雨是慰三農 비가 내려 삼농(三農)을 위로한다.
漸晩歸田計 다가오는 만년에는 농사지을 계획이라,
全衰去國容 완전히 도롱이 입고 고향으로 가는 얼굴이네
長吟臨海岸 해안에 이르러 길게 읊조리며
悄悄到高舂 조용히 무척 늦게서야 도착했다.
[주1] 삼농(三農) : 평지(平地), 택지(澤地) 산지(山地)의 세 땅에서 짓는 농사. 봄갈이, 여름 갈이, 추수. 중국에서 농업, 농촌, 농민 을 일컫는 말.
[주2] 초초(悄悄) : 근심하다. 고요하다. 조용하다, 은밀하다, 소리가 낮다.
<배둔역에서 밤에 앉아 번민을 물리침[背屯驛夜坐排悶]> 오횡묵(吳宖默) 고성부사(固城府使, 1893~1894). 韻字 ‘陌’
朝發金羅郡 아침에 금라군(함안)에서 출발하여
夜宿背屯驛 밤이 되어서야 배둔역에 숙박했다.
傳舍小如蝸 역참의 방이 달팽이 같이 작아
僅容貼膝席 무릎을 굽혀 겨우 몸을 들여놨네.
亂墨矮兒屛 난잡한 그을음 속에 어린 아이를 감싸놓으니
沈煤黑漢壁 그을음 가득한 벽 때문에 거멓게 되었네.
藉使遜於此 여기 깔개를 주어도 사양하며
何辭經一夕 하룻밤 보내니 무슨 말을 하랴.
云胡司火手 어찌 화부(火夫)가 불을 잘 살피어
要溫失中適 마땅히 따뜻하게 해야 함을 잊어버렸나.
髀肉爛將消 넓적다리 살이 문드러져 쇠하여지더니
背汗融成液 등에서 식은땀이 흥건히 흘러내린다.
披襟欲大呌 진심으로 참다못해 소리치고 싶으나
煩鬱無從釋 번민 속에 속을 삭이었네.
將身寄洪爐 장차 이 몸이 용광로에 맡기게 되니
便成渴睡客 곧 갈증 속에 잠자는 객이 되었구나.
人情貴推下 인정(人情)은 꾸미지 않음이 중요하니
宜豔不宜讁 마땅히 꾸짖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孔路疲供臆 큰길은 피곤하니 마음을 잘 다스려야하지만
橫遭困苛責 뜻밖의 어려움에 시달리면 모질게 꾸짖어야 한다.
酷吏比大暑 혹독한 관리는 무더운 더위와 비교되니
詩言傳自昔 시(詩)로써 몸소 겪은 일을 전한다.
從此逝臨民 이로부터 백성의 다스림을 맹세하노니
洗心如保赤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개심(改心)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