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儀封人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의(儀) 땅의 봉인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면서 “관직에 계신 훌륭한 분이 이곳에 오신 경우에는 제가 일찍이 뵙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하니,
儀, 衛邑. 封人, 掌封疆之官, 蓋賢而隱於下位者也. 君子, 謂當時賢者. 至此皆得見之, 自言其平日不見絶於賢者, 而求以自通也. 儀는 위나라 읍이다. 봉인은 봉강(국경)의 일을 관장하는 관리다. 아마도 현자이면서 낮은 자리에 숨어 지내는 사람인 듯하다. 군자는 당시의 현자를 말하는데, 여기에 이르면 모두 만나 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가 평소에 현자에게 거절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스스로 공자님과 통하기를 구한 것이다.
胡氏曰 封人周官名 掌爲畿封而植之 左氏傳 所謂穎谷封人 祭封人 蕭封人 皆此類 호씨가 말하길, “封人은 주나라 관직명인데, 직할지 경계을 위하여 나무를 심는 일을 관장한다. 좌씨전에서 말한 영곡봉인, 제봉인, 소봉인이 모두 이러한 부류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封人有請見之心 則非若沮溺之狷介自高矣 自言其得見君子之多 則見其好賢有素而所聞不淺狹矣 雖其見聖人而請問之辭不傳 然意象和平進退從容 出語門人又深得其大致 則賢而隱於下位者也 호씨가 말하길, “봉인은 알현을 청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 張沮나 傑溺과 같은 굳은 절개를 갖고서 스스로를 고상하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 말하길, 자신이 군자들을 많이 알현할 수 있었다고 하였으니, 그가 현자를 좋아함이 평소에 있으면서도 들은 바가 얕고 협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가 성인을 알현하면서 묻기를 청한 말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뜻과 기상이 화평하며, 진퇴가 조용하였으며, 나와서 문인들에게 했던 말 또한 크게 지극함을 깊이 터득하였으니, 현자이면서 아래 자리에 숨어 지내는 사람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夫子行經衛邑而封人因請見 故云然 공자께서 위나라 읍을 거쳐서 가셨고, 봉인은 그 때문에 뵙기를 청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
2 |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수행하는 사람이 공자를 뵙도록 하였다.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기를, “여러분은 공자께서 관직이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을 어찌 근심하십니까? 천하에 도가 없은지 오래되었습니다. 하늘이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請見, 見之之見, 賢遍反. 從, 喪, 皆去聲. 請見과 見之의 見은 모두 현이다. 從喪은 모두 거성이다.
○ 見之, 謂通使得見. 喪, 謂失位去國, 『禮』曰“喪欲速貧”是也. 木鐸, 金口木舌, 施政敎時所振, 以警衆者也. 言亂極當治, 天必將使夫子得位設敎, 不久失位也. 封人一見夫子而遽以是稱之, 其所得於觀感之間者深矣. 見之란 심부름꾼을 통하여 알현하는 것을 말한다. 喪이란 벼슬자리를 잃고 나라를 떠나가는 것을 말한다. 예기에 이르길,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고자 한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이다. 목탁이란 쇠로 된 입에 나무 혀를 가진 것인데, 정교를 베풀 때 흔드는 것이니, 이로써 뭇 백성에게 경계해주는 것이다. 혼란이 너무 심해지면 마땅히 잘 다스려야 하는데, 하늘이 반드시 장차 선생님으로 하여금 벼슬자리를 얻어서 가르침을 세우도록 할 것이니, 벼슬자리 잃은 것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봉인이 선생님을 한 번 보고서 곧바로 이로써 칭찬하였으니, 그가 살피고 느끼는 사이에 얻은 바가 깊었던 것이다.
意夫子失魯司寇去魯歷聘時 생각하건대, 공자께서 노나라의 사구 벼슬을 잃고서 노나라를 떠나 차례차례 빙문할 때인 것 같다.
張氏存中曰 喪欲速貧出禮記檀弓 詳見孟子滕文公上篇 장씨 존중이 말하길,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길 바란다는 말은 예기 단궁편에 나오는데, 자세한 것은 맹자 등문공 상편에 보인다.”고 하였다.
胡氏曰 明堂位言振木鐸于朝 호씨가 말하길, “예기 명당위 편에서 말하길, 조회할 때 목탁을 흔든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齊氏曰 木鐸金口木舌 若金鐸則金口金舌 春用木 秋用金 文用木 武用金 時與事之不同也 제씨가 말하길, “목탁은 쇠로 된 입에 나무로 된 혀지만, 만약 금탁이라면, 쇠로 된 입에 쇠로 된 혀를 갖고 있다. 봄에는 목탁을 쓰고 가을에는 금탁을 쓰며, 文에는 목탁을 쓰고, 武에는 금탁을 쓰니, 때와 일이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這裏儘好看 如何從者見之後 便見得夫子恁地 這裏也見得儀封人高處 주자가 말하길, “이곳에서는 어찌하여 從者가 그를 알현시켜 준 후 곧바로 공자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보았는지 전부 살펴보기에 좋다. 이곳에서는 또한 의봉인이 고상한 부분도 알아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問儀封人亦是據理而言 若其得位失位 則非所及知也 曰 儀封人與夫子說話 皆不可考 但此人辭氣最好 必是箇賢有德之人 一見夫子 其觀感之間 必有所見 故爲此言 前輩謂作者七人 以儀封人處其一以此 누군가 묻기를, “의봉인 역시 이치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니, 만약 그 지위를 얻거나 잃는 것이라면, 그가 이에 미쳐서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의봉인이 공자님과 더불어 한 말은 모두 상고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말하는 기세가 제일 좋은데, 반드시 현명하여 덕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므로, 공자님을 한번 보자마자 살펴보고 느끼는 사이에 반드시 본 바가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을 하였을 것이다. 선배들이 ‘作者 7인’을 말하였는데, 의봉인을 그중의 한 사람으로 처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聖人德容之盛 觀之者 固當知所敬愛矣 然封人之贊夫子 則因所見而驗所聞 卽其已然而得其將然 不惟有以見聖人之當乎天 而又有以知天之不能違乎聖人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성인의 德容이 성대함을 살펴본 사람이라면, 본디 공경하고 친애할 바를 알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의봉인이 공자를 칭찬한 것은 자기가 본 바를 바탕으로 들은 바를 징험한 것이니, 그가 이미 그러한 것에 나아가 그가 장차 그러할 것임을 터득한 것이다. 단지 성인께서 하늘의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음을 알았을 뿐 아니라, 또한 하늘이 성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알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封人一見夫子能知聖道之不終廢 世道之不終亂 天意之不終忘斯世 可謂知足以知聖人且知天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의봉인이 공자를 한 번 보자마자 성인의 도가 끝내 폐지되지 않을 것임을 능히 알 수 있었고, 세상의 도가 끝내 어지러워지지 않으며, 하늘의 뜻이 끝내 이 세상을 잊지 않을 것임도 능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지혜가 성인을 알아보기에 족하였고 또한 하늘을 알아보기에도 족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
3 | 或曰: “木鐸所以徇于道路, 言天使夫子失位, 周流四方以行其敎, 如木鐸之徇于道路也.” 혹자가 말하길, “목탁은 도로를 따라서 다니는 것이니, 하늘이 선생님으로 하여금 벼슬자리를 잃고서 사방에 두루 다니면서 그 가르침을 행하도록 시킨 것이 마치 목탁이 도로를 따라 다니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書曰 每歲孟春遒人以木鐸徇于路 서경에 이르길, 매년 초봄에 遒人이 목탁을 두드리며 길을 따라 순행하였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前說意實而味長 後說意巧而味短 경원보씨가 말하길, “앞의 학설은 뜻이 충실하면서 의미가 심장하나, 뒤의 학설은 뜻이 공교로우면서 의미는 짧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夫子得位與不得位 封人所不能知 其所可知者 夫子道德如是 天將使振揚文敎以開天下後世也必矣 或得位或周流四方 皆在其中 쌍봉요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지위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는 의봉인이 알 수 없는 바였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공자님의 도덕이 이와 같으니, 하늘이 장차 그로 하여금 文敎를 떨치고 드날려서 천하와 후세에게 길을 열어주게 하는 것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혹 지위를 얻거나 혹은 사방으로 주유하더라도, 이 모두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後說與喪字及天下之無道久 皆不甚相應 朱子姑存之耳 신안진씨가 말하길, “뒤의 학설은 喪자(지위를 잃음) 및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는 것과 더불어 모두 그리 잘 호응하지 않지만, 주자가 잠시 보존시켰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