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시경 일어나 밝게 빛나는 샛별을 본다.
아침을 먹고 문자를 확인해보니 진주가 청도역에 14:35 에 도착 하니 13시로 출발시간을
늦추었다고 한다.
청도까지 소요시간을 2시간으로 예상했는데 1시간이면 충분하고 날씨가 쌀쌀해
최서방에게 따뜻한 옷을 별도로 가져오라고 했다 한다.
일광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도시 외곽순환도로 진입하니
도로는 순조로 왔다
내 전속 기사가 마누라에서 딸로 바뀌었다.
내 평생에 잘한 것이라곤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이다.
설레고 좋은 기분에 들떠 간 밤을 설친 탓에 차에 타자 깜박 졸았다.
실눈으로 바라보니 밀양강에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낚싯배가 몇 척 지나고 있고,
강 기슭에서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은 암석 위에 주변의 뺏어난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영남루가 보인다.
밀양강 영남루는 친구 사이로 지낼 때 마누라와 함께 첫 여행인 고향 가는 길에 처음으로 가본 곳으로
대동강 부벽루, 남강 촉석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다
청도 1터널을 지나 55번 국도에 들어가니 이른 봄부터 논밭을 갈고 씨를 뿌려 여름 내내 흘린
땀 방울이 알알이 영근 황금빛 들녘에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답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풍광이다.
이제 벼를 베어 탈곡을 한 결실은 반드시 그동안 피땀 흘리며 노력한
농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들녘에서 스스로 연분홍색·흰색·붉은색 등 화려한 꽃잎의 자태를 드러내는
코스모스가 웬일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코스모스가 안 보이지"
해주가 차 창밖으로 보이는 10포기 정도의 코스모스를 손짓으로 가리킨다.
코스모스는 도로변 척박한 땅에 군락으로 피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처녀 총각 때 마누라와 둘이서 온천장 오시게 장에서 노포동까지 코스모스가 지천에 널려 있을 때
"함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아" 우리는 코스모스 꽃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때 생각하니 내 혼자 좋았지~ 영혜는 다리가 아파겠다.
봄, 여름에도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가을에 더 예쁘게 보이는 것은 높고 파란 하늘 아래에서
소슬바람에 긴 줄기를 한들거리며 서로를 의지하며 군락으로 피어있고,
가녀린 꽃잎과 실낱같은 잎사귀로
척박한 땅에서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옛날에 운문산 등산 갈 때 있었던 고즈넉한 청도역은 없고 보기에 밋밋한 단층 슬라브 건물이
조명 간판에 청도역이라고 번쩍였다.
차도와 구분되지 않은 것 같은 인도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상가도 여러 개 있어 역 앞이 너무 요란하다
25시 편의점 모퉁이에 먼저 온 최서방과 손자 윤재가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든다
역 앞 계단을 내려오는 진주와 은성이가 보인다.
키 큰 것이 이를 때 도움이 되더라
진주와 손자 은성이를 태워고 최서방과 통화하더니 출발한다.
이서방은 급한 일이 있어 회사에 갔다고 한다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지"
탑 마트에서 장을 보고 목적지인 각남면으로 이동 중 보이는 풍광은
아슴푸레하게 보이는 산과 누러 끼리 한 들녘이 보이고 군데군데
감 과수원이다.
고추잠자리가 떼 지어 비행하는 모습을 이제는 못 보는 것인가.
해거름의 흩어지는 햇살을 받으며 윤재와 은성이가 잔디밭에서 놀고 있다.
여섯 살인 은성이는 달리기가 빠르기도 하고 자세도 좋다.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같은 선수가 되려면 체력을 열심히 길러야 되겠다.
윤재는 수영초등학교 야구 부원이다
송구 능력이 좋아 3루수가 적당한데 순간 대응능력과 세밀하고 정확한 움직임을 향상시켜야겠다.
체력이 좋아 타격에 좋은 조건을 가졌으니 볼넷을 많이 얻으면서 삼진이 적은 선구안을 가질 수 있도록 침착함을 길러야겠다.
둘의 행동을 가만히 보니 분명히 의견이 다른데도 강제하려고 다투지 않고 서로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윤재가 야구 공을 던지고 놀면 은성이는 축구공으로 발차기를 한다.
사촌 간에 만나면 큰 소리가 나게 마련인데 윤재와 은성이는 소곤거리며 다정하게 논다.
"형은 동생이 하나 뿐이고
동생은 형이 하나 뿐이다."인 것을 애들은 알고있다
숙소 정원은 잘 가꾸어져 있고 잔디는 푹신푹신했다
최서방이 또 수고를 한다. 오래간만에 먹는 목살과 삼겹살을
실컷 먹고 나니 청도 미나리가 먹고 싶다.
"말고기 다 먹고 니니 무슨 냄새가 난다"라는 꼴이다.
추모를 왔는지 소풍을 왔는지 모르겠다
"추모가 뭐 별거인가.
떠난 이가 좋아하던 음식 놓고 둘러앉아 떠난 이와 얽힌 옛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
생전 떠난 이가 그랬던 것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하하~ 호호~하고...."
떠난 이와 함께한 "희, 노,애 ,락 애 ,오, 욕" 의 추억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숨을 쉬는 한 추모할 것이다.
제법 움직이기도 했지만 전 날 밤에 잠을 설쳐 어둠이 내려와 주위를 감쌀 때 잠이 들었다.
깨어나 휴대폰을 보니 새벽 2시다.
화장실 가기가 만만찮다.
조용히 다녀와 거실 소파에 앉아 몸을 뒤 털어 보지만 시원치 않다.
베란다에 나와 보니 여명은 사라지고 일출의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든 구름의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아침은 해주 시엄마께서 마련해 준 된장 풀고 파 ,풋고추를 듬뿍 넣은 갈치찌게, 사캉사캉하고 새꼼달꼼한 겉절이로
몇 년 만에 아침다운 아침을 먹었다.
해주가 11시에 출발 한다고 한다.
12시경 삼랑진 "효"추모공원에 도착하여 마누라를 추모했다
예나 지금이나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 2018.10.14 혼자서 찾아와
마누라가 생전에 지녔던 성경 책을 두고 그 위에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라는 메모를 붙인 것을 매년 와서 보았는데
5주기라 그런 지 새삼스럽게 보인다
설날에 오겠다하고 추모공원을 떠났다.
차를 타고 가다가 점심 예약을 하는데 밀양역 근처에 있는 식당이겠지 했다.
그런데 가는 방향이 부산 쪽이다. "어디 식당에 예약했노"
"진주는 해주 집에서 하룻밤 더 자고 간다고 한다.
금정 터널로 가지 않고 양산을 경유하는 길로 네비가
안내했다. 차량이 막혀 예상 보다 늦게 "속초 이모네 집 "에 도착하니 혼잡할 정도로 손님이 많다.
내가 찜 요리를 좋아도 하지만 이 집도 맛있었다.
최서방과 해주가 점심 먹는 내내
가시 돋친 말들을 주고받고 있다. 진주는 마누라를 닮아 대화를 할 줄 아는데 해주는 나를 닮아 영 아니다.
당신이 가신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군요
해주 , 진주 식구들 모두가 가슴이 저린 슬픔에서 벗어나
제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운동을 좋아했든 당신의 첫 손자 윤재는 야구 선수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주지 못해 미안해 했던 은성이는 유치원에 씩씩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한 45년 세월에서
나는 항상 당신의 보살핌 아래
있었습니다
당신의 의견이 혹시나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끙끙 앓고
당신 속이 썩어가도 나에게 힘든 표정을 절대 안 지었지요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당신이 스며
있어 나 혼자 지내기가 너무 어려워 당신 곁에 갈려고도 했습니다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았던 당신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첫댓글 친구야,
그렇구나.
슬하에 해주와 진주라는 딸을 두었구나.
그리고 최서방과 이서방이란 사위를 얻고.
사랑스런 외손자들, 윤재와 은성이.
어린 은성이에게 사랑을 줄 시간이 없었던 아내는
몹시도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아내가 되기 전 여인과 함께 갔던 첫 여행지, 영남루.
그 멋진 곳이 두 사람의 사랑을 영글게 한 곳이었구나.
죽서루와 함께 영남루가 한국의 국보가 될 것이라는 보도를 보았다.
코스모스를 보며 친구는 아내의 이름이 영혜씨라고 하였다.
옛 시절, 친구의 그 대책없이 세상을 대하던 酩酊에 젖은 樂觀이
바로 영혜씨의 河海와 같은 마음에서 연유하였구나.
아내의 묘소를 참배하는 날의 새벽,
잠이 깨어 뒤척이는 그 마음이 아련하게 전해져 온다.
정말 반갑다.
우리 마당에 이렇게 부지런히 글을 올려
친구들과 소통하여 만추의 저녁 하늘같은
충만함을 맛보게 해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