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學園)>, 글쓰기로 이끌어준 책 / 2022.11.08
'어어' 하는 사이 어중간한 노년기에 들어서서 글(수필과 칼럼) 쓰는 일 외에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그럭저럭 지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주위에 ‘알고 보면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아직 가시지 않아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함께 어울려 물 마시며 천장도 쳐다보고 “구구구구” 모이를 쪼기도 합니다. 영어 속담도 있잖아요. ‘같은 깃을 가진 새들은 함께 모인다(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언제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두었는지 돌이켜봅니다. 고장 난 시계의 태엽을 거꾸로 감듯 아득한 옛날로 돌아갈 수밖에요. 1960년대 월간 종합잡지로 <사상계>와 <세대>가 있었습니다. 월간 문예잡지로는 <현대문학>과 <월간문학>이 있었죠. 또 무슨 책이 있었더라? 여성종합잡지 <여원(女苑)>, 일반교양잡지로는 <샘터>, 그리고...아, 맞다. 학생교양잡지 <학원(學園)>! 생각해보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학원’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시 구절을 패러디한다면.
<학원>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이 1963년도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학원>은 당시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때 판매부수가 10만부에 이르기도 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책 읽는 사람을 형상화한 로고로도 유명한 <학원>은 잡지 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종 울음이었으며, 청소년들에게는 꿈의 공간이자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소통하는 문화 포털 사이트, 교류 플랫폼이기도 했습니다. 책 초반부에 연재되는 흑백 사진 소설은 인기 절정이었지요. 잘 알려진 명문 고등학교의 반듯한 학생들이 실제로 출연했으며, 이들은 선망의 대상이었죠.
무어니 해도 <학원>에서 가장 빛났던 코너는 단연 ‘우리네동산’이었습니다. 각 학교 문예반을 중심으로 자천타천 ‘글깨나 쓰는’ 학생들이 글을 투고해 문재를 뽐냈어요. 당시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무협소설 <정협지(情俠誌)>의 표현을 빌리면 천하의 쟁쟁한 후기지수(後起之秀)들이 모여 한바탕 기예를 겨루는 ‘영웅대회’였다고나 할까요.
‘우리네동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문명을 떨쳤던 학원 문단 출신의 중견 원로 문인들이 생각납니다. 알음알음 흠모하며 귀동냥으로 들은 선배 문인이 대부분이지만. 시인 유경환, 정공채, 마종기, 오탁번, 소설가 겸 시인 이제하, 시인 겸 소설가 윤상규(윤후명), 소설가 마광수… 연로한 분들이고 고인이 된 분도 있지만 내 마음엔 빛바래지 않는 별들로 떠 있습니다. 1950년대 지방 거주 고등학생인 이제하가 서울에 사는 친구인 유경환의 편지를 받고 답장 형식으로 쓴 시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다음은 시의 일절입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아아, 밀물처럼 온 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문학 소년소녀들을 들뜨게 한 이 시를 나도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지요. 시의 결미는 절창 중 절창입니다. ‘밀물처럼 스며 흐르는 피곤한 그리움’이라니! 아아, 어떻게 어린 학생이 이처럼 마음에 다가오는 시어를 지어낼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어린 마음에도 일종의 미학적 쇼크 상태를 경험했던 듯합니다. 아 참, 정작 내 이야기가 빠졌네요. 지면 관계상 다음 칼럼으로 이어집니다.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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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