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역사에 유난히 관심이 있어서 원리적 시각으로 조선왕실의 역사를 봅니다. (저도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저희 남편이 전주 이씨라 태조와 태종은 조상님 이기도 하니 관심이 있어서 그냥 개인적인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두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향처(鄕妻)인 한씨와 경처(京妻)인 강씨입니다. 태조는 강씨 소생 막내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였지만, 왕자의 난으로 한씨 소생의 방원을 위해 폐세자가 되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정종을 이어 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합니다. 저는 이 사건이 구약성서에 나온 야곱가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에게도 부인이 둘이 있었습니다. 언니 레아와 동생 라헬입니다. 아벨형(型) 처는 라헬이고 가인형 처가 레아였다고 원리에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왠지 이성계 앞에서 아벨형 처가 강씨고 가인형 처가 한씨였던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담이지만, 야곱이 승리하므로 중심가정이 되었는데, 레헬이 낳은 요셉이 중심인물로서 요셉의 자손에서 혈통전환이 이루어져 메시아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성경에서는 레아의 자식 유다의 자식에서 혈통전환이 이루어져 후대에 메시아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뭔가 하늘의 뜻을 어기는 일을 했으니 중심적 입장에서 제외되고 레아의 아벨 형(型) 자식인 유다(요셉을 죽이면 안 된다고 형제를 설득시켰다) 가 선택을 받았던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이 하늘의 뜻을 아는 이스라엘 여성을 처로 맞이해야 했는데 (뜻을 모르는) 애굽의 여성을 처로 맞이하니 이스라엘의 전통을 차세대에게 전달 못하여서 라는 생각이 둡니다.
이성계는 조선건국의 일등공신이었던 방원을 미워하고 아쉬울 때만 부르고 이용하였다 합니다. 방원에게 동정적(同情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탕감이 있으니 인간적으로만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방원은 가인의 입장에서 방석을 보호하여 방석을 통해서 부친에게 가야 했던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 못하여 차세대에게 복귀섭리가 이어갔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태종(방원)의 아들 세종은 세손인 단종을 지극히 사랑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세종의 뜻과 다르게 문종이 일찍이 승화하자 단종은 삼촌 세조에게 왕위와 목숨을 뺏겼습니다. 원래 방원과 방석의 실패를 세조와 단종 때 복귀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세조는 어디까지나 단종을 보호하여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결과로 같은 왕족끼리 권력싸움이 이루게 되고, 연산군이라는 왕으로서 처음 폐위된 인물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임금의 권위가 추락되어 정치를 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던 것 아닌가 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조의 손자 성종은 “이를 성(成)”자를 받은 만큼 실적이 있는 군주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인을 다스리지 못하여 연산군의 어머니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아들 연산군이 폭군이라 평가를 받았지만, 친부가 친모를 죽였는데 온전하게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생각합니다. 부모가 이혼하는 것 만해도 자녀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물론 당시 도독 의식도 지금과 다르고 임금은 백성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니 함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만.
조선시대는 유교문화가 꽃피운 시대였습니다. 저는 전에 누구에게서 유교는 하나님을 모시게 되면 완성한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아버님의 집안도 유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왕실에서 바른 왕통과 욕심이 없는 정치가 이어졌더라면 기독교를 잘 받아줄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금이나 왕비를 “어버이”라 부르는 민족이니 근본 조상인 하나님을 모시게 되었을 때 정신문화(精神文化)가 완성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여담이지만 19세기 후반 일본은 명치유신으로 무신정권 에도막부에서 천왕에게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일본도 에도막부 장군을 중심으로 거국일치(擧國一致)가 되었더라면 조선의 정신문화를 잘 받아주며 한일이 합쳐서 서구에 대응할 수가 있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구열강이 밀려올 때, 일본국내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원래는 막부가 정권을 천왕에게 반환했어도 에도막부 장군이 국무총리 입장으로 정권운영이 이루어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막부와 적대관계에 있었던 세력들이 막부를 빠뜨리며, 자기들이 주도로 새 정권을 만들었습니다. 명치유신으로 정권의 중심자리에 선 세력은 임진왠란을 일긴 후예들이고 에도막부는 조선통신사를 통하여 조선의 정신문화를 숭배했던 사람들입니다.
늘 아벨권과 가인권의 싸움에서 사탄이 이기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 때마다 탕감이 가중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배울 것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잘 실행해야 할 것인데 저 자신도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