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상 변호사가 《월간천관》에 '이청준문학관 건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故 이청준 작가의 인물과 문학세계를 심층적 소개 중이다.
2022년 8월호를 시작으로 9월호, 10월호, 11월호, 12월호, 2023년 1월호, 2월호, 3월, 4월호, 5월호, 6월호이다. 이번 6월호가 열한 번째 연재기고이다. (편집자 주)
이청준의 '소리'와 '말'-이청준 문학관을 위하여(11)
1. '잃어버린 절, 잃어버린 말'
<잃어버린 절, 1989>은 <연작, 가위그림의 음화와 양화4>에 해당한다. 해남 대흥사에 전시된 종(鍾)에 '탑산사'라 추각된 부분을 본데서 장흥사람 이청준은 '잃어버린 종, 잃어버린 절, 잃어버린 산, 잃어버린 역사‘를 되살펴보게 되고 결국에는 '잃어버린 말’로 그 마감을 짓고 말았다. ’탑산사동종'이 원래 있던 자리, 천관산에 깃들었을 역사와 말을 잃어버린 고향 현실을 한탄한다. 그 시절 천관산지역이 누렸을 은성연월(殷盛煙月)성세기(盛世期)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전히 무기력증과 자폐증에 빠져있는 고향땅을 안타까와 한다. '잃어버린절'을 찾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종소리'와 역사적 사연을 되찾는 것인데, 저 대흥사로 넘어간 '탑산사 동종은 언제 천관산에 돌아와 제 목소리로 울 것인가? 한편 이청준의 소설에는 고향산 '천관산'이 공간적 배경으로 활용되는데, 마지막 작품 <신화의 시대>에도 등장한다. 이청준은 초등학교 가을 소풍길에 천관산 구룡봉에 올랐었다. 이청준은 '대흥산'으로 부러 부르기도 했으며, 남쪽방향을 바라보는 남면(面) 모습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청준은 고향에 대해 종종 '대흥(大興)' 지명을 사용하였는데, <장흥향토지, 정묘지(1747)>에 등장한 행정구역 '대흥방'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중에 '대흥+ 덕도= 대덕'이 되었다가, 다시금 1983년경에 '대덕읍에서 회진면을 분면 하였으니, 이청준은 대덕면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회진면 사람으로 지내다가 회진면에 영면한 셈이다.
2, 이청준의 '소리'와 '말'
이청준은 '소리'에 민감하였다. '소리'의 철학자일 수 있다. 때론 소리에 시달리면서, '소리'와 '말'을 대비하였다. '소리'는 존재양식의 원초적 형식이요, 수단일 수 있다. 그 형식에 내용이 실리면 '말'이 되고, '노래'가 된다. 진실한 소리가 진실한 말이 되고, 또한 화합과 용서의 노래가 된다. <서편제/ 소리의 빛>이 그런 경우이다. 이청준은 '소리'의 <조율사, 1972>를 꿈꾸었을지 모른다. 여러 소음과 이명(耳鳴)현상에 시달렸을 이청준에게 '소리'는 상징이다. <비화밀교, 1985>에서 억새 초원과 횃불과 함성의 합창소리, <돌아온 풍금소리, 1993/ 흰옷, 1993>에서 여선생이 남겨놓은 풍금소리, <침몰선, 1968>에서 죽어버린 뱃고동 소리, <잔인한 도시, 1978>에서 새들의 날갯짓 소리, <새와 나무, 1980>에서 새를 부르는 나무의 소리, <이상한 나팔수, 1969>에서 군영 바깥의 임신한 아내에게 보내는 나팔소리 등이 있었다. <꽃과 소리, 1969>에 생화와 조화가 있는 것처럼 '소리'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향수가 뿌려진 소리도 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소리'는 가슴에 묻혀 원망 속에 삭혀질 수 있다. '소리'는 바깥 세상으로 나와 제때에 떳떳한 '말'이 되어야 한다. 이청준은 <다시 태어나는 말, 1981>이 실린,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언어사회학서설 연작, 1981>을 썼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가나다라' 가요는 그 기본을 찾자는 말, '다시 태어나는 말'로 들린다.
소설가 이청준이 꺼려하고 싫어했을 소리도 꽤 있다. 지하실에 숨어 있는 사람을 찾는 전등에서 나는 소리, 고향에서 걸려오는 장거리 전화소리, 소문으로만 번져가는 소리, 그 원장님의 연설소리, 그 목사님의 설교소리. 그놈 자신이 먼저 용서를 베풀어준다는 소리, 그 술집에서 순번을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소리, 그 몽둥이를 맞고 죽어가는 개의 마지막 신음소리도 있었다. 그렇다고 '소리'가 '말'에 종속 되는 것은 아니다. 이청준은 "가위눌림 속에서는 좀처럼 말이 소리가 되어 나오기도 힘들다"고 말하였다. 이청준이 구사하는 '소리'와 '말'은 수레의 두 바퀴에 해당할 수 있겠다. 이청준은 '말이 되는 소리'와 '말도 안 되는 소리', '정신나간 소리'를 분별하면서, '오월이 가는 소리'와 '시월이 오는 소리‘도 구별했을 것 같다. 그는 이원수의 <고향의 봄>과 '정선아리랑'과 '밀양아리랑'도 즐겨 하셨다.
3, <소리의 빛(연작 남도사람2)>
<소설집 남도사람, 1978>에 발표되었다. 그 시대적 배경은 초판에서 '기묘년'으로 되어있으나, 1998년에는 1972년에 해당하는 '임자년'으로 고쳐있다. '영화 서편제'에도 70년대 상황에 부합하는 완행버스 모습이 등장하였다. 소설은 남도 땅 강진과 장흥의 경계 지역에 있는 천씨 주막에서 시작된다. 거기에서 여자 소리꾼은 10년째 살 고 있었다. 그 임자년 가을 어느 저녁에 이루어진 이부동복(異父同腹)의 남매의 만남은 소설 <소리의 빛>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여자 소리꾼의 판소리와 남자 고수의 북소리의 한판 어울림은, 이청준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한(恨)의 '쌓임'과 '힘'을 강조하기 보다는 한(恨)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회한‘이 아닌, '해한(解恨)의 상징 장면이었다. 두 사람이 밀고 당기는 북소리 장단과 판소리의 굴곡 속에서 여동생은 오빠를 용서하고 화해하였다. 돌이켜 오빠의 비겁한 도주로 인하여 결국에 혼자 남은 여동생의 눈이 멀게 된 청강수 사건이 일어난 것 아닌가? 그날 이루어진 오누이의 화해는 여동생 소리꾼의 득음 경지 때문에 가능한 것도 아니고, '1고수 2명창'이라는 기교적 화합 때문에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날 화해는 서로의 처지를 너그럽게 이해하는 소리와 북이 만들어 낸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한다는 고난의 역경 속에서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 어둠의 길을 내내 감내하던 소경 여동생에게는 '소리'가 곧 '빛'이었다. 다시 말하면 '소리의 빛'에 대한 믿음 때문에 여동생은 여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존재의 양식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알려주고 끌어주는 '소리'가 또한 그 '판소리'가 소경 여동생에게 '등대 불빛이 되어준 것이리라. 그 '소리의 빛'은 '어둠의 세상을 밝혀주고 이끄는 은유적 빛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설, 소리의 빛>은 '남도지방 떠돌이 소리꾼의 삶의 양식에 대한 사례 보고서'에 해당할 수 있다. 나아가 <다시 태어나는 말, 1981> 역시 남도지방에 관련한 풍속세태 보고서'에 해당할 수 있다. <소설집 남도사람/ 서편제>의 장소적 배경은 '보성, 장흥, 강진,해남 땅에 두루 걸쳐 있다. <소설집 남도사람, 1988>은 <소설집 서편제, 1998>로 다시 개칭되었다. "남도 땅 = 서편제 지역"이라 이해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 같다.
<덧붙임>
1) 이청준은 화해와 용서의 방법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두었다. <눈길>에서는 며느리가 <살아 있는 늪>에서는 갱엿을 권하는 고향 아주머니가 그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행한다. <소리의 빛>은 판소리와 북소리가 그 중재 역할을 하는 셈이다.
2) 해남 대흥사에 있는 탑산사 동종 내력에 관하여 장흥 사람의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
3) <떠도는 말들, 언어사회학서설 1, 1973>은 70년대 언론탄압 사태에 대응한 작품이다.
4) 이청준은 '소리의 얼굴‘ 개념을 말하였다. 어미가 낳은 핏덩이처럼, 여름날 뜨겁게 이글거리는 붉은 햇덩이 처럼 보이는 '소리의 얼굴’이 있다는 것이다. 이청준소설이 상정하는 숙명적 소리의 본질적 속성일지 모르겠다. 이청준에게서 '소리 햇덩이' 개념은 몇 소설에서 반복하여 등장한다.
박형상 변호사(前 서울중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