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전쟁
전쟁(מִלחָמָה 밀하마)과 싸움(לְהִלָּחֵם 레히라헴)은 빵(לֶחֶם 레헴)에서 유래된 단어다. 같은 어원인 לח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인이 城을 쌓은 이유는 자신의 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즉 내 빵을 타인에게 주지 않겠다는 심보로 城을 쌓은 것이다.
고대로부터 전쟁은 식량(빵) 때문에 일어났다. 요즘은 그것을 무역 전쟁이라고 부른다. 무역도 먹고사는 문제이니 결국 식량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농업혁명은 BC9,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땅이 비옥해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했던 곳으로 BC3,000년경(청동기시대)에는 이 강변 주변에 10여개의 도시국가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되자 주변에서 떠돌던 유목민들이 “빵이 보장된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도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70년대에 수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판자촌과 쪽방촌을 이루었다. 빵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유목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자 도시 주민들은 자신들의 빵을 지키기 위해 城을 쌓았으며 이 城은 “城 안의 사람”과 “城 밖의 사람”으로 구별하면서 차별사회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1887년 나일강변의 도시 아마르나에서 400여개의 고대 이집트 토판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BC14세기경의 것으로 “하비루”’라는 명칭이 무려 125회나 나온다.(이집트 상형문자로는 아피루) 이 문서가 발견된 이후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시리아, 페니키아, 가나안 등 광대한 지역에서도 “하비루”에 관한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하비루”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이방인, 포도원 일꾼, 전쟁포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 노예, 용병, 약탈자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하비루란 城 주변에서 떠돌던 소수민들, 또는 사회 밑바닥에서 살던 노예(포로)들을 경멸조로 부르던 명칭으로 보인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가나안 城 주변에서 떠돌던 하비루였다.
창14:13을 보면 아브라함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도 요셉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다(창39:14). 그런데 히브리의 아카디아어가 “하비루”다.
마르크스는 城 안의 사람과 城 밖의 사람을 다르게 표현했다. 즉 城 안의 사람을 부르주아지(유산계급)로, 城 밖의 사람을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로 표현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는 산업혁명이 낳은 쓰레기 인간(하비루)들이었던 셈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에 대한 단호한 대책을 세웠는데 그게 바로 <공산당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BC9,000년 유프라테스강 변에서 시작된 문명 이후 “새로운 생산방식과 분배방식”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달랐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은 혁명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었다.
가인은 이웃 사랑이 식으면서 동생을 쳐 죽였다. 그리고 城을 쌓고는 자신의 빵을 지켰다. 분배를 거부한 것이다. “이웃 사랑”은 스스로 쌓은 城을 허물 때만 가능하다.
예수님께서 관심과 사랑을 쏟았던 사람들은 세리, 소경, 앉은뱅이, 문둥이, 걸인, 귀신들린 사람, 창녀, 혈루병자, 사마리아인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하비루”들이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하셨다. 예수님 역시 “하비루”처럼 사셨다.
오늘날 목사들은 부르주아지처럼 산다. 전혀 하비루가 아니다. 예수님은 헛소리하실 분이 아니시다. 따라서 마7:22~23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