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Xrla6lQwrQ
암 5:4,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2023.8.20.
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왜 교회를 그렇게 싫어하십니까? 그러면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나 교회 다니는 어떤 성도에 대해서 좋지 않은 경험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청년 때에 세 들어 살게 되었는데, 그 때는 연탄 보일러를 사용했습니다. 처음 연탄보일러가 나올 때에는 펌프시설이 되지 않아서, 보일러를 잘 놓지 않으면 물이 역류를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뜨거운 물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폭탄 터지는 소리를 내면서 물통으로 다 쏟아지는 그런 현상입니다. 그래서 집 주인에게 보일러 수리를 부탁했더니, 그 해 겨울이 다 가도록 고쳐주지 않더랍니다. 자꾸만 핑계를 대면서 한 해가 다 가 버리고 또 겨울이 왔는데, 그 때까지도 고쳐주지 않아서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집 주인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랍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하면 치를 떨면서, 말도 꺼내지 말라는 식입니다.
그 사람의 청년 때의 기억이 고수란히 교회 다니는 사람은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상식도 말도 통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교인이라는 생각이 뿌리박혀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집 주인은 교회를 다니기는 하는데,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까?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지, 교인도 사람이지 그렇게 말해 버리면 되는 일일까요?
여러분은 교회를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들과는 전혀 다른 공의롭고, 사랑이 많은 그런 사람, 예수님을 믿으면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감을 갖게 되는데, 그런 기대감과 달리 실망이 너무나 크다는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첫째, 예배나 찬양이 여호와를 찾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족속에게 실망감을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커녕, 온갖 죄로 말미암아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볼 때는 어떻습니까?
암 5:1–3, 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3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1절에 ‘애가’(키나~)는 ‘슬픈 노래, 슬픔과 비탄으로 인한 울부짖음, 장송곡’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애가는 누가 죽었는데, 그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 이스라엘 족속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망하게 되었습니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1000 명 중에 100명만, 100명 중에 10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절망적인 노래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적도, 버린 적도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망하게 하시고, ‘살고 싶으면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모스의 주제는 ‘정의와 공의’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사랑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악인이나 깡패도 자기들끼리는 사랑합니다. 그런 망할 사랑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정의와 공의를 따르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정의와 공의를 버린 예배, 신앙생활은 하나님은 관심도 없습니다.
암 5:21–24,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정의와 공의만이 살 길입니다. 그것만이 여호와를 찾는 길입니다.
둘째, 교회 출석이 여호와를 찾는 길이 아닙니다.
북 이스라엘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레위지파도 없습니다. 그러니 성전 대신에 성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목회자와 같은 레위 지파 대신에 아무나 제사장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도 북 이스라엘에 대표적인 성소가 있습니다. 그 성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만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우상들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쉽게 말하면 물질만능주의를 상징하는 바알과 아세라신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를 다니는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속물근성이 있어서 하나님보다 물질과 돈을 더 사랑하는 그릇된 성도들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돈을 찾았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성소를 찾는 것, 다시 말씀드려서 교회를 출석하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학헤 못 박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나열됩니다. 그곳을 찾지도 들어가지도 가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비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는 길은 오직 여호와를 찾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는 길은, 사는 길은 오직 정의와 공의 밖에 없습니다.
암 5:5–6,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옳고 그른 것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교회만 다니면,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고, 축복을 받는다고 하는 그런 미신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다가는 끌 수 없는 불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호와를 찾는 길은 정의와 공의를 다시 회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성도들이, 그리고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성도들은 보일러가 고장나면 즉시 고쳐줘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이며, 성도들과 교회가 사는 길이며,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하는 길입니다. 정의와 공의만이 축복받는 길입니다.
암 5:14–15,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셋째, 정의와 공의만이 여호와를 찾는 살 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못할 것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정의와 공의를 버린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다시 주워 담아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은 정의와 공의뿐이요, 그것이 여호와를 찾는 길이며, 유일한 살 길이며 축복의 길입니다.
암 5:7–8, 7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8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믿음이 다가 아닙니다. 그 믿음이 정의롭고, 공의로운 성도로 세워지게 해야 합니다. 판단이나 판결은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져야 합니다. 정의(미스파트)는 결정, 판결, 규례입니다. 공의(세다카)는 올바름, 정직함, 곧음이며, 하나님의 뜻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이것 만이 살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