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월25일)의 聖人 中 세르지오 司祭 傳記
기본정보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세르지오 (Sergius) |
9월 25일 |
성인 |
신부, 수도원장, 설립자 |
라도네즈(Radonezh) |
1314-1392년 |
세르게이, 세르기예프, 세르기오, 세르기우스, 세르지우스 |
러시아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세르기우스(또는 세르지오)는 로스토프(Rostov)에서 태어나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5세 때에 그는 모스크바 통치자들의 로스토프 침략을 피하여 정처 없이 온 가족이 떠나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모스크바(Moskva) 교외인 라도네즈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1335년 부모와 사별한 세르기우스와 그의 형 스테파누스(Stephanus)는 마코프카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세르기우스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은수생활을 계속하였으므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다.
이때부터 제자들이 몰려들자 세르기우스는 후에 유명해진 ‘삼위일체 수도원’을 세워 원장이 되었고, 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타타르족의 침략 이후 사라졌던 러시아에 수도 공동체를 재건한 것이다.
그 후 그는 헤르쟈크 강변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던 중 모스크바의 대주교 알렉시스(Alexis)를 계승하도록 요청받았으나, 자신의 소명은 수도생활이라고 판단하고 강력히 거부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있었던 그는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조국 러시아의 일치를 위해 제후들의 통합과 일치를 요청하였고, 마침내 모스크바의 디미트리 돈스코이(Dimitri Donskoi) 왕자가 타타르족과 싸워서 러시아를 해방시킬 때 두 명의 수도자를 파견하였다.
이 승리 이후 그의 명성은 더욱 퍼져나갔고, 러시아 왕가의 협조는 매우 관대하여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짓게 되었다. 1378년 그는 모스크바 대주교 임명을 끝내 사양했고, 또 1392년에는 자기 수도원의 원장직도 사임한 후 6개월 만에 서거하였다.
성 세르기우스는 묵상을 즐겨 하고 항상 기도하는 영성적인 사람으로서 러시아 최초의 신비가로 불려지기도 한다.
1422년 7월 5일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노브고로트(Novgorod)에서 시성되었으며, 그 후 그를 주보성인으로 모신 성당이 세워졌고, 진정한 수도자의 소명을 실현한 성인으로 공경받으며 '천상의 사람'이라고 불렸다.
그가 세운 삼위일체 수도원은 아직까지도 러시아인들의 종교적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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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님,
이 세상에서'세르지오'를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시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꽃 피우게 하셨으니
당신의 충실한 종,聖'세르지오'司祭의 轉求를 들으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우리 모두가 복음을 따라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 멘!
+ 아 멘!
첫댓글
+ 慈悲와 사랑의 우리主 하느님 아버지 ,
오늘 이 세상에서 '세르지오 '를
당신의 從으로 선택하시어 信仰을 꽃피우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모범을 받들어 언제나 福音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충실한 당신의 종, 聖'세르지오'司祭의 轉求를 들으셔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 정다니엘과 '문베드로'와 모든 患友들이
완전히 病魔에서 벗어나는 주님의 慈悲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恩寵을 베풀어 주소서.
+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