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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 용유진, 숲으로 가다 1. "아무래도 이상해." 용유진은 생각하고 있던 것을 무의식중에 입 밖으로 소리내어 흘려 보냈다. 그리고 스스로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번 표행에는 문제가 있었다. 세상이 다 알도록 떠들썩하게 떠난 행사였다. 세상이 다 인정할 만 큼 많은 표사까지 붙였다. 이 정도면 관부와 세상의 이목이 무서워서라 도 감히 털 생각을 못할 것이다. 이렇게 쉽게 생각한 그가 어리석었던 건이다. 용유진은 그렇게 반성을 했다. 표사가 표물을 맡는 데는 몇가지 원칙이 있다. 능력에 넘치는 일 은 맡지 않고, 정체가 의심스러운 물건은 되도록 피한다. 특히 그는 정 체를 모르는 물건, 소위 이 계통에서 암표(暗표)라고 부르는 종류의 물 건은 절대로 맡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해서 주지 않았던가. 그는 또한 고수 따위는 믿지 않았다. 한 손이 열 손을 못 당하는 법 이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실수할 때가 있고, 하지 못할 일이 있다. 단순히 죽고 사는 문제라면 그는 이렇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 러나 일을 하고 못 하고의 문제라면 그는 사소한 것 한 가지 한 가지 를 다 따져 보고서야 표물을 맡았다. 밤하늘의 별빛이 흐려지고 있었다. 어둠은 더욱 깊어 갔다. 새벽이 머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자긴 틀렸군.' 용유진은 잠자리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손으로 머리를 괴고는 생각 에 잠겼다. 이번 표행에서 느껴지는 불안 요소들을 하나씩 다시 점검해 보기로 했다. 우선은 노리는 자가 너무 많았다. 이게 가장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직접 나서지 않는 녹림도 총표파자까지 나섰다. 전대의 거마 오 행마군 동방척이 나타났다. 장강의 수적들이 물을 터나 산에 올랐다. 멀리 요동의 마적들이 그 거추장스러운 깃발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 냈다. 황금의 요사스러운 광채가 사람들의 눈을 가린 것일까. 그럴 수 있었다. 더구나 사대철인 임태풍이 말한 대로 부정한 재물 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도적질을 하면서 의적이 된 것 같은 기분까 지 들 것 아닌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일은 하지 말아 야 한다는 교육의 흔적을 드에 지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가 그런 제약이 풀리면 못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번처럼 훌륭한 변 명거리가 생기면 흑도 아니라 백도의 인물들까지 달려든다고 해도 놀 랄 일이 아니었다. '동창까지 말이지.' 이게 가장 걸리는 일이었다. 그는 대력귀가 일행에 합류한 것은 동 창과 무관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황제, 혹은 군주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동창은 넋 놓고 앉아서 왕소팔의 재산이 사천 골 짜길 숨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단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는 사부인 허신과도 머리 싸우을 해야 할지도 모 를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역시 뵙고 왔어야 했어.' 북경에 갔을 때 만났더라면 이런 이야기를 미리 들었을 것이다. 해 청에게 제의를 받고 난 뒤에 만났다면 맡지 말라고 말렸을 것이다. '아니, 아니지.' 용유진은 내심 부정했다. 허신은 그런 일을 말할 사람도 아니고 그 가 무슨 일에 관계되어 있다고 그걸 말릴 사람도 아니다. 오해려 내버 려두고 그를 변수로 삼아 상황의 변화를 추측하는 놀이를 즐길 사람이 었다. '죽든 살든 나 혼자 힘으로 상황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겠군. 아니, 나 혼자는 아닌가?' 문득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이번만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동표가 있고, 책임자가 있지 않은 가. 그가 표행의 일원인 이상 그들과 손발을 맞춰서 일해야 할 것이다. 불현듯 그는 여태까지 간과했던 두 가지 일을 깨달았다. 첫째로 이번 표행에서 그가 이상하게 어중간하고 한 발 물러선 태도 를 취하게 된 원인은 그가 표국을 다시 세운 후 처음으로 타인들과 함 께 표행을 하게 된 것에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 색해하고 있다고나 할까. 둘째로는 문제의 그 동료들이 오늘 있었던 일로 그를 의심하게 되었 을 거라는 점이었다. 녹림 총표파자 임태풍에 오행마군 동방척 같은 거 물들까지 아는 사이라는 건 일개 지방 표국의 국주로서는 불가능하다 시피 한 일이었다. 당장 노골적으로 의혹을 표시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도 표행 내내 의심스런 눈초리로 볼 것이 뻔했다. 여태까지 어울리려 들지 않았던 걸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동료로 잘 지내보려고 마음먹었지만 상대 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생겨버린 것이다. '젠장! 설명도 힘들겠군.' 내력을 밝히면 간단히 해결될 일일까? 어쩌면 더욱 의혹을 불러일으 킬 수도 있다. 그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왜 '표사질'이나 하느냐고 생각 할 테니까. 이장도의 중원표국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표국도 아니고 .....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다가 문득 그는 어둠 속이 한 지점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잠시 바라보다가 손짓을 했다. "잠자리가 불편핟냐? 그럼 이리 오너라. 여긴 두 사람 정도는 충 분히 들어가고, 또 지금 나는 일어날 셈이니까. 네가 여기서 자도 좋 아." 어둠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강위명이었다. 그는 주춤거리며 다가오 더니 선 채로 말을 했다. "잠은 어디서 자도 좋습니다만 여쭤볼 게 있습니다." 용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손짓해서 강위명도 자리 위에 앉혔다. 산동에서 떠나올 때 준비한 잠자리였다. 산 속의 밤은 추 워서 땅바닥으로 부터도 한기가 올라오는데 이 잠자리는 그것을 충분히 막아 주고 있었다. 용유진은 거기 강위명을 앉히고 얇은 담요 하나를 어깨에 둘러 주었다. "궁금한 게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궁금해하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 라고 내 사부, 그러니까 네 사조께서도 그러셨다." "제가 궁금해하는 것은 무공 분야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아무거나 상관없다.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공만이 아니니까." "사는 데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용유진은 빙긋이 웃었다. 이 어린 제자는 정말 당돌하다. 누구 앞에 서든 할말을 못하는 법이 없다. 그것이 지나쳐서 오히려 화를 사게 될지도 모르지만 성공하면 크 게 성공할 싹수가 보이는 것이다. "사는 데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란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하 지만 지금 네게 배울 기회인지도 모르겠구나. 어디 말해 보거라." 강위명은 잠시 말을 고르는지 침묵하더니 불쑥 뱉듯이 말했다. "오늘 임태풍 총표파자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어떤 말 말이냐?" "이 표물의 불의한 재물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용유진은 대답을 해놓고고 이게 아니다 싶어서 신중히 말을 골라 다 시 말했다. "나로서는 아직 이게 불의한 재물인지 아닌지 판단할 증거가 없다는 뜻이다. 큰 재물은 무수한 사람의 피와 땀 위에 쌓아올려진 것이 대부 분이지만 그걸 꼭 불의한 재물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하지만 임 총 표파자의 말대로라면, 나는 그의 말을 믿는다만, 적어도 이번 표물이 압수될 위험에서 피하기 위해 옮겨지는 중이라는 건 맞는 것 같다. 그 런 뜻으로 사용한 말이라면 불의한 재물이라기보다 정당성이 크지 않 은 재물일 수는 있겠지." "그걸 빼앗아서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더욱 곤란한 질문이었다. 용유진은 원칙대로 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상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건 옳은 일은 아니다. 그걸 할 수 있는 건, 도리에 맞는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관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도적만이 하려고 드는 일이다. 나 같은 표사는 생 각하면 안 되는 일이야." "옳은 일이 아니라고 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표사가 생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이유도 모르겠고요." "너는 옳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유사 이래로 협사는 불의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은 것을 이상 으로 삼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한 개인이 일백만 금을 가지고 혼자 호의호식하려고 조정의 손이 닿지 않을 곳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한편 북경성 밖에는 수백만의 유민이 하루에 동전 한 닢도 채 벌지 못 하며 살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누구고, 약한 자가 누군지는 명백하 지 않습니까. 이를 보고 행동에 옮기지 않는 자는 협사가 아니지 않겠 습니까?" 용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불의한 재물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혹시 불의한 재물이라도 무단히 약탈한다면 나는 그걸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혹시 협사라고 치고, 어떤 사람의 재산을 불의하다고 판 단하고, 담장을 넘어 들어가 무단히 약탈했다고 해보자. 만약 내가 협사가 아니라 그냥 협사를 가장한 도적이라면 어쩔 테냐. 그 재물이 빈민을 구휼하는 소용 이외에 한 푼이라도 쓰여졌다면 나는 도적에 불 과한 것이다. 만약 그 사람으 재산이 불의하지 않은 것이라면 어쩔 테 냐. 재산이 많다고 해서 불의하다고 한다면 세상에는 애써 땀을 흘리는 사람이 없어지지 않겠느냐. 도대체 누군가가 누구의 재물을 불의하다 고 규정해서 임의로 약탈하고, 누군가가 악인이라 규정해서 마음대로 그 생명을 뺏는 것이 허용되는 세상이라면 힘 없는 진짜 약자들은 불 안해서 어찌 살겠느냐." 용유진은 강위명의 눈빛을 보고 지금 그의 말이 조금도 먹혀들고 있 지 않는 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결론지어 말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표사다. 표사란 도적으로부터 재산과 생명을 지켜 주는 사람이지 그것을 빼앗는 사람은 아니다. 더구나 한 번 맡겠다고 약조를 한 것에 대해서는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 표사의 도리 다. 나는 여태까지 표행에 실패한 적이 없었고, 맹세코 이번 표행도 성 공시킬 것이다." "제가 어리석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사람 은 날 때부터 부호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땀 흘리지 않고도 호의호 식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평생 손끝이 다 닳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을 해도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이 살다가 늙어지면 산야(山野)에 내버려 집니다. 어떤 사람은 며칠이 걸려도 다 둘러볼 수도 없이 많은 땅을 가 지고 있는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먼 옛날 선조가 황제의 말 한 마 디에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땅에서 일하는 농민들은 할아버지의 할 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 그 땅에 땀을 흘리고 그 땅에 뼈를 묻어가 며 살고 있는데도 땅 한 조각 가지고 있는 게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는 가진 자는 무조건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있는 셈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무조건 억울한 약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가진 자에게서 재물을 빼 앗아 억울한 자에게 그것을 나눠 주는 것은 법을 지키고, 황명(皇命)을 하늘로 삼아 양순하게 사는 것에 비해 백 배는 나은 일이 아니겠습니 까. 하늘 아래 이것보다 더 옳은 일이 있겠습니까." 용유진은 침묵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그래서 그 자신이 맡지 않고 백리 제일에게 맡기려고 했던 것이지만, 이 아이는 대가 너무 세다. 게다가 적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무공만이라면 몰라도 그 이외의 분야에 까지 이 아이의 스승이 되기에는 스스로의 그릇이 너무 작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아이의 열변에 달리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 그럴 기분이 되지도 않는 것은 아직 그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에는 모자라는 증거일 것이다. 용유진은 천천히 머리를 젓고는 강위명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도적의 논리다. 표사의 논리 는 빼앗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도 알다시피 어 쩔 수 없는 표사에 불과하지." 강위명은 용유진의 시선을 맞받아 보는 듯 하더니 천천히 시선을 내 리깔았다. "저는 사부님이 보통의 표사는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잘못 본 모양이지요." 그는 공연히 땅바닥을 손으로 긁으면서 말을 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저는 아무래도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표사 는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도적이 되겠습니다." "그러려무나." 용유진은 혼쾌히 대답했다. 이제야 강위명이 왜 찾아왔는지를 알아 차렸다. 이 아이는 임태풍을 찾아가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내 제자가 아니다. 너는 이제 자유다." 강위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용유진에게 넙죽넙죽 절을 했 다. 용유진은 말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제자로 받아들일 때는 절을 받지 않았는데, 떠나려는 순간에야 절을 받는 셈이다. 애초에 제자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 다. 몇 번인지도 모르게 절을 하고 난 강위명은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불초한 소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밤은 어둡고, 산에는 들짐승이 많다. 날이 밝은 뒤에 가면 어떠냐?" "제가 배은망덕하긴 하나 한 번 배신한 사부 곁에 오래 나아 있을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습니다. 짐승에게 당하면 그 또한 제 운명이겠지 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위명은 저벅저벅 걸어서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용유진은 강위명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부터 속으로 숫자를 세 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백에 이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날렸 다. 추측한 대로 숲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한 거리에서 나는 소리 인 듯 가물거렸지만 그는 정확하게 방향을 잡고 나뭇가리를 밟으며 달 려 이윽고 소리의 발생지에 도착했다. "걱정한 대로군!" 그는 높이 자란 소나무 꼭대기 마른 가지에 올라서서 흔들거리며 아 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무 아래쪽 공터의 어둠 속에서 몇 사람이 술레잡 기를 하고 있었다. 술래는 덩치 큰 장한 두 사람인데 쫓기는 사람은 작 은 손년인 이상한 술레잡기였다. 용유진은 바로 개입하려고 하다가 멈추었다. 조금 더 지켜봐도 괜찮 은 상황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년, 강위명은 중워표국의 표사임이 분명 한 두 장한의 손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고 있지 않은가. 숲속은 어둡고, 나무도 많았다. 다람쥐처럼 뛰는 소년을 잡기란 쉽 지 않았다. 장한들은 분노했는지 급기야 검을 빼들었다. 잡으려고 들려 면 어려워도 죽이자고 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어 둠 속을 향해 마구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리를 질렀다. "죽기 싫으면 얌전히 무릎을 꿇어라! 검에는 눈이 없는 법이다!" 강위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양쪽에서 압박해 오는 장한들의 사이를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 틈을 보는 것 같았다. 한순가, 그런 틈이 보 였는지 강위명은 달리가 시작했다. 그리고 고꾸라졌다. "엇!" 용유진은 신음을 토했다. 강위명이 나무 뿌리에라도 걸렸는지 넘어 진 그 뒤로 장한들이 덮쳐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꼼짝없이 잡혔구나 싶었는데 상황이 반전되었다. 장한 한 명이 돼지 멱따는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허벅지를 움켜쥐고 있는 것으로 보 아 모종의 이유로 다친 모양이었다. 강위명은 그 모종의 이유가 된 짧 은 비수(匕首)를 움켜쥐고 다시 다람쥐처럼 튀어 일어나 도망가기 시작 했다. 용유진은 쓴웃음을 흘렸다. 강위명이 일부러 넘어져서 틈을 보이고, 방심한 장한을 찌름으로서 탈출구를 모색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녀석은 그의 눈까지 속인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겠지." 그는 나무에서 나무로 몇 개를 건너뛰며 강위명이 도주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는 강위명이 무사히 도주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표사 둘을 골탕 먹이고 도주한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이제 그 가 당해내지 못할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 아이는 내 제자이니 잘못이 있으면 나를 책해야지 애를 괴롭혀 서야 쓰겠소. 놓아주시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강위명의 팔을 움켜쥐고는 걸어나왔다. 중원 표국의 표두 중 하나로 팔황웅풍(八荒雄風)이라는 별호를 가진 사람이 었다. "이 아이는 이제 용 표사의 제자가 아닌 것으로 아는데, 내가 잘못 안 거요?" "잘못 안 거요." 팔황웅풍은 느물거리며 말을 받았다. "잘못 안 게 아닌 것 같은데?" "잘못 안 거요. 파문된 제자라도 내 집 문을 벗어나기 전에는 내 제 자. 표행 중의 표사에게는 산과 들이 집이니 이 산을 벗어나기 전에는, 적어도 이 골짜기를 벗어나기 전에는 내 제자라고 주장하오." 팔황웅풍은 손가락을 들어 흔들었다. "저런, 저런. 착각하시는군. 표행 중의 표사에게 산과 들이 집이라는 건 맞소만 여기는 용 표사의 집이 아니오. 중원표국 국주님의 영역이 지. 이번 표행은 중원표국의 표행이지 용 표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표행은 아니니까." "그 뜻은?" "제자를 파문하건 두들겨 패건 중원표국 국주이신 중원대협의 허락 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외다. 왜, 불만있으시오?" "이장도 국주의 허가를 득하라.... 그 말씀이시군." 용유진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쑥 말했다. "그리지요. 이 국주! 나는 내 파문제자의 안전한 길을 요청하오. 허 락해 주시겠소?" 팔황웅풍은 흠칫 놀랐다. 용유진이 그를 향해서가 아니라 어둠에 가 려진 숲을 향해서, 그의 이름이 아니라 이장도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 다. 처음부터 그 숲속에 이장도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일까? 용유진은 물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장도가 인기척을 숨기지 않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기 때문인지, 혹은 자신은 가리고 숨길 것이 없다는 무언의 압박인지는 모 르지만 그것은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그 숲속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 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발하는 사람. 진장자의 평은 역시 이 장도에게 너무 박했다. 이장도는 그 평가 이상의 실력을 갖춘 자라고 그는 다시 한 번 인정했다. "그렇게 하시라고 하고 싶지만.....!" 숲속에서 이장도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아까의 두 장한이 그 뒤를 따르고, 또 그 뒤에는 거령장의 총관 하기룡이 따르고 있었다. 이장도가 말했다. "단순히 용 국주의 품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표사의 길을 벗어나 도적 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니 문제가 있소. 용 국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 으시나 보지만, 나는 보수적이라 영 용납이 안 되는구려." 꼬박꼬박 국주라 불러주는 것은 용유진에게 표국주로서의 위치에 서 서 판단하라는 압박일 것이다. 용유진은 충분히 압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가르쳐 준 것도 없는 강위명에게 사부로서, 표사로서 길 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니 궁색한 변명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대로 유명한 표사 중에는 녹림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 요." 녹림도로 활동하다가 표사가 된 사람, 표국을 연 사람들이 적지 않 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변경의 황량한 지역에는 녹림도와 표 국을 병행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소양이 있는 표사로서 그런 말은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녹림도와 표사는 적이면서 동시에 동지인 것이다. 이장도는 소양 있는 표사인 모양, 용유진이 생각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사였다가 도적이 되는 경우는 없었소. 용납이 안 되는 일 이기 때문이오." '용납이 안 된다가 아니라 용납할 수 없다겠지.' 용유진은 속으로 뇌까리고는 다시 말했다. "이 국주의 말씀 충분히 이해하나 이 아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일반적인 원칙을 적용시키기 곤란하군요." "어떤 사정이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소 만." 이 한 마디로 용유진은 이장도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관심 은 강위명이 아니라 용유진에게 있는 것이다. '차라리 잘됐군.' 조금 귀찮게 되긴 했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강위명을 보낼 길은 열 린 것이다. 그는 되도록 솔직하게 대답하려고 작정했다. "이 아이는 사실 나 보다는 녹림도 총표파자와 더 인연이 깊은 사이 였으니 그냥 보내 주는 것이 옳을 듯하오." 그는 강위명과 녹림도 총표파자를 만난 경위를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이장도는 흥미롭다는 듯 듣고 있다가 이야기가 끝나자 물었다. "그것 뿐이오?" "더 필요하오?" "용 국주께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우린 용 국주의 정체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소. 말씀하시는 김에 오행마군 동방척을 아는 경위도 이야기해 주셨으면 하오만." 이렇게 솔직하게 나오니 용유진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 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동방척은 정말 오늘 처음 만난 것이오. 믿어 주시겠소?" "물론 믿을 수 있소. 하지만 여전히 의혹이 남는 건 어쩔 수 없구려." "그 의혹은 아마 내 빙조부님의 함자를 밝히는 것으로 대부분 해소 될 것 같군요." "빙조부님이 누구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소?" "별호는 월인, 성은 공손, 함자로 조(祖) 자와 덕(德) 자를 쓰시는 분 이오. 아마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믿소만." 이장도는 불시에 받은 충격을 삭히는 듯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말했다. "용 국주가 강시당의 현 당주인 공손소저의 부군(夫君)이라고 말씀하 시는 것이오?" "이 고개만 넘으면 산서 땅이니 확인해 보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 일로 어찌 천하의 월인 공손조덕을 귀찮게 할 수 있겠소. 우 리 무인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빠르고 편한 방법도 있지 않겠소." 이장도는 이렇게 말하고는 어깨에 두른 피풍을 한쪽으로 몰아 넘겼 다. 그 피풍에 가려져 있던 검의 손잡이가 드러났다. 용유진은 인상을 쓰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같은 표사끼리 손을 섞고 싶지는 않소." "나도 그렇소만 이 일은 워낙 중요하니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소. 솔직히 말해서 일행 중에 의혹이 있고서는 이 고개를 넘어 산서에 도 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오. 이해해 주시오." 검이 뽑혔다. 더 이상 말할 기회가 없었다. 이장도와 같은 검객은 쉽 게 검을 뽑지 않지만 한 번 뽑은 검을 그냥 집어넣는 경우도 없기 때 문이었다. 용유진은 쓴약을 입에 댄 아이처럼 상을 찌푸렸지만 어쩔 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장도가 검을 가슴 앞에 올리고는 말했다. "무기를 드시오." 용유진은 양손을 펴보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 두 손으로 모시고 싶소만?" 팔황웅풍이 마치 자기가 모욕을 받은 것처럼 분노한 눈길로 노려보 았지만 막상 당사자인 이장도는 그런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수 가르침을!" 그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향해서. 명가의 제자답 게 세 번 헛손질을 함으로써 상대에 대한 예의를 표할 생각이었을 것 이다. 그러나 용유진은 예의 없게도 허공을 향해 휘둘러진 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치 그대로 잡으려는 듯한 손짓이었다. 이장도가 흠칫해서 검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이번에야말로 분노 한 듯 날카롭게 용유진의 팔뚝을 노렸다. 손으로 음식을 집어가는 아이 의 팔을 때리듯 따끔한 일격이었다. 좀 제대로 싸우란 말이다라고 말하 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인 대응과는 아주 다르게도 용유진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이장도의 검이 그이 팔뚝을 베었다. 검은 이장도가 쓰는 검답게 보검이었다. 보검이 아니라도 이장도가 휘두르면 강철도 잘리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검이 용유진 의 팔뚝은 자르지 못했다. 예리한 쇳소리가 숲속에 퍼지고, 용유진은 팔뚝으로 검을 막은 채 서 있었다. 이장도는 그의 보검을 막고 있는 용유진의 팔뚝과 손을 노려보고 있 었다. 거무튀튀한 철색(鐵色)을 띠고 있는 그 팔뚝의 변화에 대해, 그렇 게 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공에 대해 그는 들은 바가 있었다. 그리 고 그것은 용유진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 이기도 했다. 고루천강수(고루天강手)가 아니고는 그의 보검을 맨 손으 로 막을 수 없을 것이므로. 이장도는 검을 거두었다. "실례했소, 용 국주! 나중에 빙조부님을 뵐 기회가 오면 좋겠군요." "기회가 닿으면." 용유진은 가볍게 대답하고 다시 물었다. "이 아이는 보내도 좋겠지요?" "물론이오. 용 국주 뜻대로 처리하셔야지요." 이장도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덧붙였다. "범상치 않은 재주에 강한 성품을 지녔다고 봤소. 녹림도에 들어가 면 위험할 재질이 아닐까 싶소만.....!" 용유진도 목소리를 낮추어 대꾸했다. "장래가 위험하다고 오늘 싹을 밟아버릴 수야 없겠지요. 곧은 재목 이 되길 기대할 수밖에요." 이장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긴 밤이었소. 날이 밝으면 바로 출발할 것이니 준비해 주시오." 그는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숙영지로 가버렸다. 용유진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긴 밤이었지. 그리고 아마 긴 낮이 되겠지." 그는 강위명을 향해 말했다. "녹림도 총표파자를 찾는다고 이 밤에 숲속을 헤맬 필요는 없다. 내 가 쉽고 빠른 방법을 가르쳐 주랴? "하교(下敎) 바랍니다." "어둠속에 숨어 있다가 날이 밝으면 우리 표행을 멀찍이서 따라오 면 된다. 내일 우리 표행을 가로막을 첫 번째 집단은 아마도 그의 녹림 도가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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