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開花)
-김영태 시인에게 / 장경린
아들 목우(木雨) 결혼식에서
형님이 입은 가다마이는
소매가 삶은 호박잎처럼 흐늘흐늘했지요
삐딱하게 서서,
마땅히 둘 곳 없는 시선을
가봉하듯 늘어뜨리고
저는 속이 가벼워서
결혼이라는 걸 못해봤어요
블라우스 자락에 클립으로 집어놓은 메모 쪽지처럼
건들건들 사연들을 달고 있다 보면
어느 날 블라우스는 온데간데없고
허공에
홀로 꽂혀 있는 클립
철(鐵)꽃 같아요
사람 하나 간신히 비집고 올라갈 수 있는
중국집 개화(開花)의 목조 계단은
옛날보다 더 삐걱거려요
자장면 면발은 눈에 띄게 가늘어졌죠.
불황 탓이거니 여기고
싱싱한 양파나 한 접시 더 시켜 먹으면
그게 그겁니다
개화
- 장경린에게 /김영태
1
지팡이 짚고
나는 게처럼 옆으로 걷는다
개화에서 자장면 한 그릇 때리고 중국 과자집까지
넘어질 듯 그러나 자네 소맷자락이
거드는 것 알아, 마음에
구먕 내고 그리로 고개를
꾸려박는 것도 내 알지
빼도 박도 못하는
이 주제에 세한 추위
코밑 고드름 녹이는
고게 정이라는 것도
2
이십여 년 혼자 살다 보니
과일 고르는 법도 터득했다
사과는 속살이 처녀처럼 단단한
짱구라야 맛있는 걸
자네가 사온 사과를 보고 대견했다
그 동안 혼자서 구정물 세상을 헤엄치는 법을 졸업했다 해서
나이 들면 체중이 부는데
물 빠진 물총닽이 자넨 바짝 줄어들었더군
눈가에 담긴 독 빼고는
가슴을 열고 바람을 빼면서
살모사 한 마리 기어들어와
또아리를 트나 기다린다
요즘은 쑤시개감도 못 되는 먹물들 군웅할거 시대 아니냐?
없어진 중앙청 옆구리에서 태어난
나 같은 묘목도 있듯이
없어진 중앙청 옆구리에서 태어난
나 같은 묘목도 있듯이
3
흑단 지팡이가 잘 어울린다고?
그건 말야, 내 세트거든
늙음, 빈자리, 그 중간 지팡이까지
(누가 훔쳐가지 않는 세트거든.......)
자네가 개화에서 말했지, 내 걸음걸이를 흉내내면서 걷는 지팡이라고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길은 너무 늦어요 라고
첫댓글 예전에 경상도 어른들이 호주머니를 개와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주고 받는 시편지를 보니
개화가 개와 같고
손 잡아주는 호주머니 같고
아... 그래서 참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