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의 감정 [조용미]
고택 연못 앞의 분홍매와 허공에 매달아놓은 구근베고
니아들이 숨겨놓은 마음을 부추겼다 흰 배고니아 꽃잎의
가장자리마저 같은 마음이다
그 오래고 먼 절의 고목 능수벚나무도 곧 공중에 수많
은 분홍의 음표를 드리우겠지
베고니아 논스톱핑크는 장미의 형식을 빌려 왔지만 잡
념이 없이 고요한 마음에 이르렀다
분홍의 감정을 제어하기 힘든 누군가 베고니아 꽃말에
기대어 새 품종을 만들었을 때,
손발이 쉽게 어는 사람처럼 약한 추위에도 잎은 노랗게
변하지만 물과 가까이 있어야 하는 분홍이다
베고니아 일루미네이션의 노란색조차 분홍과 겹쳐 보
이는 봄의 감각이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봄이라면 이젠
퍽 멀리 온 것이다
- 초록의 어두운 부분, 문학과지성사, 2024
* 봄날의 색은 분홍색과 같아서 온통 분홍으로 물들어 있다.
그 와중에 젊은 사람들은 분홍꽃가루를 맞으며 결혼식을 올린다.
딸을 시집으로 보내는 어머니는 분한 마음에 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딸을 받아들이는 시어머니는 시퍼런 마음으로 청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분홍의 감정은 그런 것일까?
슬픔도 기쁨도 아닌 봄날의 마음을 닮아있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분홍 작약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