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길
주일 아침, 임 권사님 아들 전화였다.
‘목사님! 어머니가 새벽에 구급차로 실려 갔어요.
광주병원 응급실에 계시네요.
오늘 예배 차량 운행 염려에 빨리 연락하라 하셨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최근 조금만 움직여도 숨 가빠하시며 수요 예배도 힘겹게 오셨다.
목숨 건 발걸음 같았다.
찬바람 이는 주일 오후 병원을 찾았다.
산소 호흡기가 눈에 띄었다.
응급조치 후 수액 맞고 주치의 처방을 기다렸다.
성탄절 앞두고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셨다.
큰 딸이 측은히 여겼다.
통증 호소에 안타까울 뿐이었다.
도울 방법이 없어 기도하고 차디찬 손만 주물렀다.
심장 동맥이 좁아져 다음 날 수술 시간을 잡았다.
오른쪽 허벅지 혈관을 떼어 붙이는 수술이었다.
폐에 찬 물도 빼내어 숨소리가 수월하게 들렸다.
하지만 오른쪽 다리 핏대가 당기고 무거워 잠을 못 이루셨다.
코피가 터져 어려움을 겪었다.
자식들 짐 안 되고 그대로 갔으면 좋겠단다.
큰아들이 10년만 더 살아 달라고 애원하듯 매달렸다.
호전 반응에 회복이 빨랐다.
입원실 불편하다며 퇴원하고 싶어 하셨다.
실상은 치료비 줄이고 성탄 예배 가려는 속셈이었다.
아들은 괜한 일에 신경 쓴다고 나무랐다.
이튿날 요양병원 예배 시간이 소중함을 느꼈다.
감사로 섬길 때 어르신들이 중심을 아셨다.
성탄 선물로 양말, 넥타이, 영양제, 봉투를 주셨다.
오는 길에 지인 연락받고 방문을 기다렸다.
케이크 셋, 딸기 셋의 선물 보따리에 사랑합니다! 말로 덮고 사라졌다.
현관 성탄 트리에 사임당을 앉힌 나그네의 전화였다.
성도들 선물비로 쓰라는 말씀에 홈 플러스로 향했다.
초저녁 벌교 꼬막을 내려놓고 가신 분이 계셨다.
성탄절 아침 떡국이 배달되었다.
황 목사님이 성탄 예배 참석 인원을 물었다.
쥐도 새도 모르는 떡, 샌드위치, 음료가 들어왔다.
없는 자의 형편 아시고 공급한 손길에 놀랐다.
어떻게 나눌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예배 후 남전도회가 올린 케이크에 불을 켰다.
성탄 축하 송을 불렀다.
폭죽을 터뜨렸다.
쌓은 선물은 차례대로 제비 뽑았다.
전에 없는 선물로 기쁨을 맛봤다.
큰 선물 뽑으면 꼭 필요한 분에게 드렸다.
떡국 맛도 기가 막혔다.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먹었다.
견과류 든 떡 맛도 최고였다.
30년 한 교회, 한 목사님 섬겼지만 가장 풍성했음을 드러냈다.
투병 중인 분들이 마음 쓰였다.
아내와 선물을 챙겨 두 병원을 찾았다.
‘워매, 또 오시네! 나 다리 아픈 께 시리 나눠 먹으면 좋겠네..’
배달부 노릇하고 감사 인사를 받았다.
관절 구부리는 재활치료로 애린 다리에
잠 못 이룬 할머니를 안수 기도하고 나섰다.
모진 삶을 경험한 어른이라 속에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나 간 생일 초대를 차일피일 미뤘다.
성탄절 저녁 약속은 거절할 수 없었다.
중간에 남 목사님 부부가 끼어들어 일을 키웠다.
배알도 걷고 저녁 먹자는 거였다.
병원 심방하고 그대로 황 목사님 차를 탔다.
잠깐 졸다 깨었는데 망덕 포구 카페테라스였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편한 사람으로 마음 지핀 수제 대추차를 마셨다.
섬진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바알도 수변 길을 걸었다.
망덕 산에 절(배알)하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명소였다.
윤동주의 시를 품은 별 헤는 다리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치유의 공간으로 황금빛 석양 노을에서 한 해의 끝자락을 봤다.
한 겨울바람이 속살을 파고들었다.
돌아앉은 산은 외로웠다.
내 민낯은 개척자에게 괜찮았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지만 일상의 행복이 넘쳤다.
책 중의 책은 산책이라 다음 날 쓸 글이 팔딱거렸다.
‘사랑하는 예진아 범진아! 말보다 글, 글보다 시,
시보다 그림 한 장이 사람을 움직이는 예술이요, 도구다.
아침마다 동시 읊고 천자문 쓰는 일 정말 귀하다.
인증해 보낸 숙제는 생각을 키운 연습이고 훈련이다.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종합 선물 세트와 같다.
무엇이든 늘 질문하고 깊게 생각하면 사고력이 왕성해진다.
곧 깨닫게 될 거야..’
산그늘 질 때 자동차를 돌렸다.
밤바다가 걸어왔다.
디너 굴비 정식 전문점으로 귀한 손님 대접하는 식당이었다.
밥값이 내 차지 같은데 양복 입었다고 식사 기도를 시켰다.
먹는 즐거움이 걷는 일보다 컸다.
지난한 사역의 흔적을 돌이켰다.
오해와 갈등 후 화해하고 하나 된 일..
일희일비의 과거를 소환시켰다.
‘왜, 그때 한마디 않고 계셨냐?
그래, 저만 나쁜 사람 되었지요?’
신랄하게 파헤쳐 드러내도 쓸어 담았다.
넉살 좋은 사모님이 ‘오빠! 잘 먹었어요’ 인사에 머리 둘 곳을 찾았다,
그냥 헤어짐은 아쉬워 야경 새길 카페로 올랐다.
뜨거운 아메리카 커피가 식도록 옛정을 나눴다.
육십 넘어 바닷가 마을에 개척하고 꿋꿋이 섬긴 모습은 감동이었다.
한방 진료, 칼갈이, 미용 봉사와 식사 대접, 떡살 선물, 단감 나눔..
동네 어른들이 생전 처음 경험한 바라
때가 차면 거두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8시 약속이 9시를 넘겼다.
아낌없는 헌신에 감동되어 작은 손으로 모은 성탄 헌금을 말없이 보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내 쓸 돈 막내가 채우게 하셨다.
발열 내복과 플롯을 택배로 보내 열었다.
손녀에게 플롯 전하러 갈 때 눈시울이 뜨거웠다.
막내 초등 때 플롯 연주 위해 악기를 원했지만 형편이 어려웠다.
절박함으로 보훈 문예 작품 공모전에 수필을 냈다.
첫 응모에 입상하여 상금 50만 원을 탔다.
그때 구입한 악기를 손녀가 물려받을 줄은 몰랐다.
늘 빈 주머니지만 고비마다 보이지 않은 손이 토닥여 감사할 따름이다.
2024. 12. 28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