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회고록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받은 가장 신선한 느낌과 관심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말없이 청와대금고에 넣어 두고 나온 현찰 100억이다. 그리고 이를 발견한 김영삼의 표정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상상되는가?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현찰 100억이 내 금고에 들어앉아 있다!
더구나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벌써 전임 노태우대통령뿐 아니라 전두환 박정희대통령까지, 대판 욕설을 해대고는 기세등등하게 막 청와대에 입장한 순간이다.
못된 늠이 날 유혹하려고 현찰 100억을 갖다놓았구나, 어림없지...
음, 내한테 잘 보이려고 현찰 100억을 몰래 갖다놓았구나!
축하금? 나쁜 늠의 나쁜 돈이니 당장 돌려 줘라.
그때 김영삼의 생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돈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김영삼이 대통령되어 입성하는 첫날,
아무도 몰래 그리고 준다는 말도 없이 노태우가 가만히 놓고 간 현찰 100억이었다.
남의 일이지만 상상할수록 신나고 혀에 감칠맛이 돈다. 아, 현찰 100억이 눈앞에..!
난 선거자금 3,000억 지원보다 이 100억이 훨씬 궁금하고 재미있다.
선거자금 지원이야 이미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이 100억 어떻게 했지요?
난 노태우를 아주 맘에 안 들어 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는 이번에 인정하게 되었다.
군 출신들을 무식하고 천하다 욕하던 양반행세 그 문인들보다, 무인이 100배나 더 품격 있고 지혜롭고 따뜻하다는 사실. 오히려 상늠이 양반행세하고 양반이 상늠으로 손가락질 받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 우리대한민국의 실상이고 수준이구나 하는 사실!
대통령은 일일이 밝힐 수없는 정치자금이 필요하나,
대통령되자마자 기업인들한테 손 내밀면 대통령 체신뿐만 아니라 올바른 통치에도 지장이 된다는 선임자의 배려. 이런 부담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국정운영에 임하라는 무언의 당부... 그럼 이런 전례의 혜택을 입은 김영삼은 후임 대통령에게 어떻게 했을까?
또한 이로서 노태우의 역량은 차치하고 인격만큼은 새로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회고록에 의하면 김영삼이 대통령 당선되고부터는 벌써 기고만장해, 노태우가 만나자해도 거부하고 있었음을 내비치고 있다. 만나고자 한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이 모은 소위 통치자금의 인계인수도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현직대통령이 자신이 만들어 주다시피한 후임 당선자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개인적인 분노는 감추고 신임 대통령이 긴급히 써야 할 100억 정도는 말없이 금고에 넣어 두고 나왔다는 것. 그래 그 이후 소위 문민출신 대통령 혹은 대통령 후보들 중 이런 정도의 그릇이나 되는 인물이 있었나?
오히려 노태우는 자신의 퇴임 날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 날,
면전에서 김영삼에게 큰 모욕을 당했다. 전 정권을 모조리 부인하는 문민시대 운운으로 시작하는 취임사로부터...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것이다.
마치 자신이 대한민국을 새로 개창한 양 그렇게 기세등등 폼 잡고 청와대 입성해서는, 노태우가 말없이 금고에 가득 넣어두고 간 현찰 100억을 발견했을 때의 김영삼 그 심사와 표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