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멸/김소연
그녀는 성냥을 한 장 사진의 꼭짓점에 가져다 대었다
불이 붙었다 세 장의 사진을 불 속에 던졌다 열장의 사
진 스무 장의 사진 혼자서 찍은 사진 모두 함께 찍은 사
진 들이 불길 속에서 그녀의 얼굴들이 불길 속에서 일그
러졌다 아기였던 얼굴 청년이었던 얼굴 면사포를 쓴 얼
굴 눈을 감은 얼굴 들이 불길 속에서 잠시 환했다가 금
세 검은 재가 되었다 얼굴이 지워졌을 뿐인데 생애가 사
라지는 것 같군 사라지는 걸 배웅하는 것 같군 불길 같은
이런 기쁨 조용하게 출렁이는 이런 기쁨 정성을 다해 추
락하는 황홀한 기쁨 검정 같은 깨끗한 기쁨 불 속에서는
재가 된 것과 재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 두 가지만 남겨져
있었다 입에는 말이 들어 있지 않았으나 눈에는 불이 담
겨 있었다 주문진의 바다와 노고단의 구름과 비둘기호의
창문 바깥이 차례차례 깨끗하게 타들어갔다 사진에 담아
보았을 리 없는 그녀의 작은 미래가 빨간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그 불씨들마저 꺼졌을 때 완전한 암흑이 찾아왔
다 그녀가 오래 기다려온 장면이었다 그 속에서 그 안을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온기마저 모두 사라질 때까지 혼자
남았다는 것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되었을 때까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남은 성냥을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촉진하는 밤]문학과지성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