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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면역질환 치료제는 긍정 마인드(肯定 Mind Control)…
라울 뒤피(Dufy, Raoul, 1877~1953), ‘영국 함대의 르아브르 방문’,
1925년, 수채화, 르아브르 현대미술관 앙드레 말로(MuMa) 소장.
바다가 있는 노르망디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푸른색 바다를 많이 그린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1877~1953년). 그는 ‘기쁨의 화가’ ‘색채의 화가’로 불린다. 삶의 기쁨을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가난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 때부터 돈을 벌어야 했던 뒤피는 15세부터 미술 학교에 다니며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다. 처음에는 인상주의에 심취했다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작품에 빠지면서, 원색을 대담하게 사용하고, 거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야수파 화가로 살았다. 밝고 경쾌한 음악적인 화풍으로 평생 삶이 주는 행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말년에는 그림에 검은색을 자주 썼다. 류머티즘 관절염에 시달리기 시작한 이후다. 뒤피는 혹독한 통증을 견디면서도 대지와 바다, 자연에 대한 찬가, 들판에서 노동하는 풍경 등을 그렸다.
뒤퓌가 앓은 류머티즘 관절염(Rheumatoid arthritis)은 자기 면역세포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관절 내 활막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국내 류머티즘 인자 양성인 환자는 14만명에 이른다. 주로 50~60대 여성에게 생긴다.
방소영 한양대구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주로 큰 관절보다는 손과 발 등 작은 관절에 염증이 발생하는데, 폐, 혈관 등 다양한 곳에 염증이 생길 수 있다”며 “처음 시작은 손의 관절통이 많은데, 손가락 중간 마디와 손바닥 부위를 잘 침범하여 주먹을 꽉 쥘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뒤피도 같은 이유로 붓을 손에 쥐기 힘들어했다.
치료는 단순히 통증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 활성도를 줄여서 관절의 구조적인 손상을 막는 데 있다. 방소영 교수는 “발병 초기에 빨리 진단하고 질병 활성도와 예후를 고려하여 적극적인 약물 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최근 다양한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어 류머티즘 관절염은 더 이상 불치의 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뒤피는 “내 눈은 못난 것을 지우게 되어 있다”고 했다. 실제 자가면역질환에서 긍정과 낙천은 질병 극복에 도움을 준다. 암울할수록 세상을 밝게 그린 뒤피는 결국 ‘기쁜 그림’만 남기고 떠났다.
라울 뒤피(Dufy, Raoul, 1877~1953) 자화상.
✵ 라울 뒤피(Dufy, Raoul, 1877~1953) 화가는 1877년 6월 3일 프랑스 르아브르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 커피 수입점 종업원으로 가계를 도우며 밤에는 미술학교에 다녔다. 1900년 시에서 장학금을 받아 파리의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L.보나르 문하에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하였다. 처음에는 인상파풍의 그림을 그리다가 1905년 H.마티스의 작품에서 계시를 받고 야수파(포비슴)운동에 가담, 강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대담하게 단순화된 표현을 전개하였다. 1908년경부터는 사진과 입체파(큐비즘)의 경향에 이끌려 감화를 받고, 1913년경부터 입체파에 근거를 두면서도 점차 독자적인 작풍을 이룩하였다. 1911년경부터 장식미술에도 진출, 폴푸아레 의상실에서 직물염색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이 일은 그의 특색인 밝은 색채와 경쾌한 구도에의 기호를 한층 살렸다고 할 수 있다.
1922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을 여행한 후, 자유분방한 선과 명쾌한 색채성을 합성한 장식적 양식을 확립하여, 유화 외에 수채화에도 뛰어나 부동의 명성을 획득하였다. 작품에는 해안의 산책길·경마장·악회·요트경기 등을 다룬 것이 많다. 이들은 단순화된 소묘와 대담한 색채의 조화 속에서 현실과 환상, 프랑스적 매혹과 우아성을 강하게 표현하여 보는 이에게 유쾌한 생의 기쁨을 준다.
주요 작품에는 《트루빌의 포스터 Les affliches a Trouville Posters at Trouville》(1906), 《창이 열린 실내 Intérieur à la fenêtre ouverte》(1928), 《도빌 경마장, 출발 Race Track at Deauville, The Start》(1929), 《카우스의 보트 경주 Regatta at Cowes》(1934), 《전기 요정 La Fée Electricité》(1937), 《화가의 작업실 The Painter's Studio》(1949) 등이 있다.
라울 뒤피(Dufy, Raoul, 1877~1953), ‘도빌의 예시장’, 1930년, 캔버스에 유채, 54x130cm.
라울 뒤피(Dufy, Raoul, 1877~1953), ‘니스 부둣가 산책로의 카지노 앞을 지나는 두 대의 마차’.
라울 뒤피(Dufy, Raoul, 1877~1953), ‘에밀리엔 뒤피의 초상’
라울 뒤피(Dufy, Raoul, 1877~1953), ‘전기의 요정’.
라울 뒤피(Dufy, Raoul, 1877~1953), ‘깃발을 장식한 배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자화상.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야수파 운동의 지도자인 20세기 프랑스 화가로 주요 작품은 <저녁 식탁>과 <열린 창>과 <삶의 기쁨>. 중산층 집안 출신으로 법률 사무소 서기를 지내다가 변호사를 포기하고 미술 공부를 시작했는데 화가가 되기 위해 줄리앙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초기에는 인상파 풍의그림을 그렸으며 이후 야수파 운동을 이끌었고 평생 동안 색채의 표현력을 추구했다. 그의 소재는 주로 실내풍경이나 구상적 형태였으며, 그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는 지중해 특유의 활기를 담고 있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왕의 슬픔(La Tristesse du roi)’,
1952년, 과슈를 칠한 색종이 콜라주, 292×386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Paris.
이 작품은 마티스가 죽기 2년 전에 제작된 작품이다. 색종이 그림의 기념비적인 대작으로 마티스의 자유분방함 색채 감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원색의 화려함과 경쾌한 단순성으로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이 작품 안에 표현된 인물은 렘브란트가 그린 '사울 앞에서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의 수금을 켜는 다윗 왕이고 바로 마티스 자신이기도 하다. 6개의 꽃이 피어있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다윗왕은 실제로도 수금 연주가 뛰어나 사울 왕의 광기마저 다스릴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웅크린 모습은 건강 악화로 휠체어의 도움을 받는 자신의 마지막 자화상이었던 것.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이카루스(Icare)’,
1946년, 과슈를 칠한 색종이 콜라주, 43.4×34.1cm, Scottish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Edinburgh.
마티스는 말년에 색종이를 이용해 형태를 단순화한 작품을 여러점 남겼는데 이카루스도 그 작품 중 하나다. 이카루스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미로에 갇힌 이카루스는 동굴을 빠져나와 깃털로 만들어진 날개를 밀랍으로 고정하여 탈출한다. 그러나 비행의 즐거움으로 과욕을 부렸고 높이 날아 태양 가까이에 간 이카루스는 결국 밀랍이 녹아 추락한다. 마티스는 이 추락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의 파란색 배경은 하늘을, 사람의 형태를 한 검은색은 이카루스를, 가슴의 빨간 점은 동경심을 가진 인간의 심장을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노란색 별 무늬는 날개의 깃털로 보인다. 한편, 이카루스로 보이는 추락하는 검은 사람은 사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공군 비행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말년에 마티스는 지독한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손에 붓을 쥐기조차 힘들어지자 그는 손에다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렸다. 나중에는 이것도 쉽지 않자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붙이는 콜라주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색종이 작업을 하면서 “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런 색종이 콜라주 작품을 하나의 '조각'같다고 느낀 듯하다. 조각가가 나무나 돌을 다듬고 깎듯, 종이에 과슈를 바르고 색종이를 잘라 붙이는 행위가 마치 조각의 과정과 흡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루마니아 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La Blouse Roumaine)’,
1940년, 캔버스에 유채, 92×73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Paris.
마티스는 여인의 초상화를 여러점 남겼는데 이 그림처럼 인물을 그릴 때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색채 표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그림에서도 머리 모양과 이목구비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입체감은 사라지고 평면적인 느낌이 강한 것이 특징. 또한 화려한 색채 표현도 두드러져 보인다. 특히 여인의 흰색 블라우스 위에 그려진 무늬는 아라베스크 문양을 연상시키는데, 아라베스크 문양은 덩굴 식물의 부드러운 곡선과 기하학적 무늬가 조화를 이룬 패턴을 말한다. 이 문양은 주로 이슬람 사원의 벽면이나 공예품에서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마티스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아라베스크 문양의 옷감과 카펫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여인이 입고 있는 블라우스에 새겨진 무늬도 이러한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식물 모티프와 기하학적 문양이 어우러진 옷의 무늬는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모자를 쓴 여인(La femme au chapeau)’,
1905년, 캔버스에 유채, 80.65×59.69cm,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이 작품은 절제된 붓질을 보여주던 초기 작업과는 달리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한 마티스의 변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 부자연스러운 색상과 거친 붓질, 마치 완성 단계가 아닌 것 같은 이 작품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작품의 모델은 마티스의 아내다. 참고로 마티스의 아내는 이 작품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는데 한껏 꾸민 화사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푸른색 계열로 거칠게 그려졌으니 많이 속상하셨을 듯.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삶의 기쁨(Le bonheur de vivre)’,
1906년, 캔버스에 유채, 176.5×240.7cm, Barnes Foundation, Philadelphia.
앙리 마티스가 이 작품을 그릴 때 "내가 꿈꾸는 미술이란 정신 노동자들이 아무런 걱정, 근심없이 편안하게 머리를 누일 수 있는 안락의자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폭발적인 색채를 거침없이 휘둘러 마치 포악함 짐승같다는 의미로 '야수파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지만 그의 야수파적 흥분은 오래 가지 못했고 마티스의 붓이 한결 부드러워졌을 때 '삶의 기쁨'이라는 이 작품이 나왔다. 폭발적인 색채를 지나 평온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이 그림을 마티스 본인은 '정신을 위한 안락한 의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춤(Dance)’,
1910년, 캔버스에 유채, 260×390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이 작품을 그리면서 마티스는 "세 가지 색이면 충분하다. 하늘을 칠할 파란색, 인물을 칠할 붉은색, 그리고 동산을 칠할 초록색이면 충분하다. 사상과 섬세한 감수성을 단순화시킴으로 우리는 고요를 추구할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유일한 이상은 '조화'다."라고 말했다. 캔버스에 그려진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는 둥근 모양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형성된다. 한편, 쫙 뻗은 두 사람의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지점에는 마티스가 불어넣은 역동적인 긴장감이 감돈다. 선, 색채, 형태의 혁명적 적용을 달성한 이 그림은 20세기 회화의 중요한 운동이라 할 수 있는 표현주의와 추상주의의 씨앗을 뿌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조선일보 2024년 04월 25(목) 〈名作 속 醫學(김철중 영상의학과 전문의, 논설위원 겸임, 의학전문 기자·안상현 기자)〉, 인터넷 교보문고,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