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이근석]
내가 네게 꽃을 사 가면 웃기겠지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너무 많은 이야길 쏟다
하던 이야기 멈출 때
벌어지는 전개들
너는 창밖 조용한 새에 대해 집중하고 있어
고개를 돌리고
내가 말하는데도, 너는
한 번을 천천히 늘이면
너의 긴 한 번이 된다
아주 긴 한 번의 새가 된다
내 말은 나의 공간
그것은 너의 긴 새에 대해
조금 관여할 뿐이지만
그 새가
긴 창공을 시작하려 전
나는 네게 말하는 사람이 된다
말하는 얼굴이 된다
깜빡 졸다 깨었는데
앞사람 군장에 머리를 박고 유격장에 끌려가는 장면이 하나
분필이 졸고 있는 내 이마를 맞춘 후 정적 된 교실의 장면이 하나
그것들이 서로 자리바꿈한다면
또 이런 말
좀비가 마당에 피어나고 있다*
천천히 걸어오는 좀비가 나라면
감염된 내가 네 앞에 나타나
금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다면
그때, 네 얼굴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된다
빈
흰
너의 얼굴에서
새가 날아오른다
* 요르고스 란티모스 <송곳니>.
- 월간 현대시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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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이근석]
joo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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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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