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 성기완
누워 있는 인형이 사람같아 보이는 것은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고
누워 있는 사람이 시체같아 보이는 것은
눈을 감고 있어서다
실로 그는 자고 있다
죽음은 문밖의 잠이고
잠은 문을 열지 않은 죽음이다
기억할 수 있는 꿈은 생활의 거울이고
기억할 수 없는 꿈은 죽음의 그림자다
흩어지는 구름에서 찰랑이는 소리가 나는 것은
몸과 마음이 삶과 죽음처럼
믿음과 배반이 사랑과 증오처럼
노력과 방탕이 뼈와 살처럼
오해와 이해가 피고름처럼
욕설과 교성이 타이어와 콘돔처럼
이것과 저것이 모든것과 nothing처럼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 수갑을 차고 동행하는 형사와 죄수의 운명은
장가방과 아랑드롱의 그것처럼 결국 같아진다
사람의 옷은 동물의 거죽보다 단연코 보잘 것 없다
다다다 단연코
강아지에게 시달린 양인형은 진짜 양처럼 온순하다
인기척을 느끼고 개가 벌떡 일어나면
공기는 그 냄새를 맡고 도망질을 친다
공기는 고양이처럼 쉬고 있었던 거다
개가 연방 드센 기세로 어둠을 향해 짖는 이유는
달아난 공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됨됨이와 관계 없이 시인인 이유는
니가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니가
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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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 시인
1967년 서울 출생
1994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
『유리 이야기』
『당신의 텍스트』
『ㄹ』,
산문집
『장밋빛 도살장 풍경』
『모듈』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로 네 장의 앨범을 발표,
솔로 앨범 <나무가 되는 법> <당신의 노래>.
2012년 현재 소리보관 프로젝트인 ‘서울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SSAP)'를 이끌고 있으며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사운드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