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에녹처럼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창세기 5장
나는 어제 나의 묵상에 쓰기를 성경 구절 가운데 가장 슬픈 구절이 나에게는 욥기 23장 8절과 9절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하나님의 부재"의 경험이 나에게는 가장 두려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위의 두 구절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 있으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장 10절 말씀이다)
하나님이 나를 돌아 보지 않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가?
그것이 딱히 내가 저지른 어떠한 죄 때문이 아니라 한다면
하나님이 나를 돌아 보지 않으시는 것 같은 그 시간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순금"(정금) 같이 단련하시는 시간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요즘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단련(?)을 받고 있는 시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어제는 3월 31일.. 당연히 한 달 동안 들어온 헌금과 사역에 나간 지출 내역을 정산 하는 날이다.
지난 달에 들어온 헌금은 거의 1억 2천만 원이고 사역에 나간 돈 역시 거의 1억 2천만 원이다.
어제 하루 전 까지 사실 마이너스 800만원 가량 된 것 같은데 31일 마지막 날 하나님이 또 이렇게 채워 주셨다.
누군가 열심히 오병 이어의 재정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신다고 생각된다! 기도 해 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 감사!
하나님의 재정이요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저절로 믿어지게 된다.
내가 8월에 있을 청년들 컨퍼런스에 1억 1천만 원을 모아야 하는 까닭에 내가 내린 결정이 하나 있다.
내가 후원하던 단체나 개인들의 후원비를 줄인 것이다. 반으로 줄인 곳도 있고 100% 다 줄인 곳도 있다.
8월까지 그렇게 긴축(?) 계획을 했는데 "광에서 인심이 난다"고 사실 나랑 직접 관계가 없는 사역들은 내가 받는 헌금이 모자라면 우선 순위로 도와 줄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고 갔는지.. 그리고 망설였는지..
더 이상 재정 후원을 못하겠다는 편지를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몇 분에게 보내고 나니
나를 누님이라고 부르는 목사님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문자가 왔다. (줄여서 올린다) *** 사랑하는 누님요
오늘 묵상처럼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이 있다면 주님의 부재가 항상 첫 번째이고
두 번째 누님이 보내주신 기도 글을 보면서 마지막 글에서 슬픈 마음이 생겨졌습니다 ㅠㅠ
( 귀한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그대들인데 죄송한 마음 함께 드립니다. ㅠㅠ )
사실 저에게는 누님에게 받은 후원과 사랑이 살아오면서 다음 세대 사역을 시작하고 29년 동안 누군가에 받아 본 가장 큰 사랑이고 후원이고 마음이었는데 (생략)
그런데 그런 누님이 죄송한 마음을 동상에게 준다는 말이 마음이 많이 슬퍼졌습니다 ㅠㅠ
우리 주님도 그러시겠구나 ㅠㅠ 늘 주님도 생명까지 우리에게 주면서도 미안해 하시는 마음 ㅠㅠ 누님이 죄송한 게 아니라 우리가 죄송해야 하는데 주님이 아닌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하는데 ㅠㅠ
*** 다른 분들도 다 그동안 후원해 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글을 보내왔다.
내가 일단 이번 8월 컨퍼런스만 하고 나면 다시 다 복귀하고 싶은 후원들이다.
나는 이번에 이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연단시키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동안 매달 200만 원씩 나에게 개인 후원을 하시던 분이 두 달 전 부터 이유를 말 하지 않고 후원을 끊으셨다. 딱히 이유를 물어 볼 수도 없고 ㅎㅎㅎ 이건 사역비가 아니라 일명 내가 말하는 "품위 유지비"인지라 내가 정말 자유하게 쓸 수 있는 헌금이라 내가 내 월급을 다 사역비로 100%를 넣어도 이렇게 들어오는 개인 후원비로 나의 생활비를 잘 감당할 수 있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갖게 되는 나의 마음..
사실 나는 이 분이 섭섭한 게 아니라 혹시.. 사업에 무슨 힘든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걱정(?)이 앞선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상황의 자리..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의 후원을 더 이상 이전처럼 해 주지 못한다고 말을 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이 자리..
하나님은 지금 나의 어느 부분을 연단시키고 있으신 건가?
결론은 아주 명확해서 일단은 감사를 드린다.
이 연단 후에는 내가 "정금"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재정에 대해서 정말로 다양한 훈련을 시키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선하신 이유가 분명 있음을 알기에 감사 감사 감~~~~~~~~~~~~~사!!
주님! 도대체 저에게 얼마나 큰 재정을 맡기시려고 이렇게도 다양한(?) 재정 훈련을 시키시는감유?? ㅎㅎ
창 세 기 5 장
23 -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ltogether, Enoch lived 365 years.
이 구절에 나오는 그는 누구인가? 에녹이다.
그는 이 땅에서 죽지 않고 하나님 곁으로 간 사람으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Enoch walked with God; then he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away.
창세기 5장에는 태어나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나열 되어 있다.
"죽었더라"라는 말이 모두 8번 나온다.
태어 났으니 죽는 것이 당연한데 에녹은 그 당연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살아 있는 그대로 데리고 가셨다. 하나님 계신 곳으로..
이전에 어느 설교 들은 기억으로 "하나님이 에녹과 동행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에녹! 너의 집 보다 내 집이 가까우니 오늘 그냥 나의 집에 가자꾸나!" 이렇게 해서 데리고 가셨을 거라고 한다.
"동행"이라고 하는 것! 너무 아름다운 말 같다.
사랑하는 이와의 동행도 아름다운데 하나님과의 동행을 상상해 보면 우와!!
우리 모두 에녹과 같이 이 땅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막바로 하나님의 집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다 있지 않은가?
주님 재림 하시는 그 날!! ㅎㅎ 우리는 휴거 된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녹은 성경에 "죽었더라"라는 표현이 없고 365세를 "살았더라" 이렇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지금 이렇게 에녹처럼 "살았더라"의 표현에 맞는 사람들인 것이죠?
우리는 매일 "살고"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에녹처럼 "살았더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죽는다 해도 "부활"이 있으니 그리스도인들은 다 영원히 살아갈 사람들인 것이 사실인데
오늘 하루 저도 에녹처럼 "살았더라"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과의 신실한 동행이 바로 매일 매일 "참되게 살고 있는 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생각을 갖고 사는 그런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빛의 생각을 가지고 빛 가운데 걸어가는 저의 삶이 되도록 도와 주옵소서!
남편이 차를 판다고 내어 놓았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가격에 차를 팔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차를 팔아도 남편은 또 차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
어제도 키스왈리 열공했는데 오늘도 열공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공부한 것을 그래도 잘 기억하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심이 팍 팍 느껴져서 감사 감사 감~~~~~~~~~~~~~~~사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