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벚나무를 베다
- 김명기
아버지가 산자락 개울가에 집을 짓고
삽자루 같은 묘목을 심은 겹벚나무
허벅지보다 더 굵게 자라는 동안
봄 한철 분홍 솜뭉치처럼 피는 꽃이 보기 좋았다
이십 년 넘는 동안 나무는 다부지게 자랐지만
그런 몸을 불리느라 굵어진 가지가
바람 심한 날이면 지붕을 두드리거나
창문을 긁어댔다 꽃이 좋았던 나무는
날이 갈수록 근심과 함께 커갔다
꽃 지고 물이 올라 이파리가 손바닥만 한
나무를 쳐다보다가 지붕 위로 자란
단단한 나무 중동을 베어내기로 했다
사다리에 올라 톱날을 밀어 넣자 마디를
벌리며 살아내느라 옹골진 삶이
톱날을 쉽게 받지 않았다
꺾이지 않으려 톱날을 물고 버티는 나무를
힘주어 잘라내며 톱날 같던 불온과 불운을 견디던
시절을 생각했다 나무나 사람이나 절정의 순간을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았다
베어낸 나무를 토막 내기 위해
그늘에 며칠 말렸다 진이 빠진 나무는
서서히 눈목이 마르고 잎이 시들었다
그제야 나무는 가만히 톱날을 받았다
한 생이 진다는 것은 악착같이 버티고 견디다
순해지는 일 어느 순간 나도 생의 마지막 톱날을
순순히 받는 날이 올 것이다
- 웹진 시산맥 202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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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삶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게 대부분이겠지요
그러나 단독주택에서 평생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집집마다 사연이 깃든 나무 한두 그루가 있을 것이고
오랜 세월 동안 몸집을 키운 나무의 가지가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겠지요
화자는 겹벚나무를 심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지붕 위로 자란 중동에 톱날을 들이댑니다
아직 절정의 순간인데 그리 쉽게 무너질 리가 없지요
그래도 기어이 베어냈으니 토막 내려면 양지보다 그늘에서 며칠 말려야 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골짝골짝 마다 산등성이 마다 벌초를 하는 발걸음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봉분에 이르기도 전에 우거진 잡목과 잡초 덩굴을 치워 오고갈 길부터 내야 합니다
회전 톱날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초목이라해도
생을 마감하는 것이니만큼 악착같이 버티고 견디려 해도 어쩌지 못하고 눕게 됩니다
마지막이 남아 있는 인간의 삶도 순해지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절정의 순간을 기억하는 일도 멈추게 되는 그런 마지막 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