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세종 9년 9월16일 최종 종결될 때까지 거의 두 달을 끌었다. ‘
실록’ 자료를 정리하여 간통자의 이름을 모아보면,
거의 40명에 가깝다.
그 중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양반들이다.
총제 정효문(鄭孝文), 상호군 이효량(李孝良), 해주 판관(海州判官)
오안로(吳安老), 전 도사(都事) 이곡(李谷) 등이 제법 고관들이었고
장연 첨절제사(長淵 僉節制使)·사직(司直)·부사직·판관·찰방·현감 등의
벼슬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수공업 기술자인 공장(工匠)으로
수정장(水精匠)· 안자장(鞍子匠)·은장(銀匠)도 있었으니
감동은 신분에 상관없이 애정행각을 벌였던 듯하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읽어 보실만 했었나요
축첩제..부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여필
천지개벽 세상이 발전하고..모든것이 바뀌다보니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를 부르짖고 대통령 출마도 하는데..
권력층 상류계급층에서는
지금 현대보다도 쎅스문화가
더 성행 했었다 싶더군요
맞습니다.
옛날에느 쎅스문화가 지금보다 더 발달했어요.
옛날에는 첩이라는 여자들이 많았지요 우리 아버지친구도 여자 여러명을 두고 사는 사람이 있었고....
나도 어릴적에 [17세에서 20대초반] 연상의 여인 3~4명과 놀아났고 ㅎㅎㅎ 동네아줌들에게 잡아먹힌 거지요.
아무튼 좋기는 참 좋든대요 ㅎㅎ
지금 50대 이후 남자들은로 없었는데
오늘날 같은면
아마도
대부분 성폭력범이나 성추행범 전과자가 되었을 겁니다.
세상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강간범들이 여자을 살해 한적은
요즈음은 꺼떡하면 성폭력후에 살해하는게
뭔가 모르게 합리적이지 않는게 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