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우리라고 불렀던
마지막 시간이 끝났다
수천 명이 은닉해 살 수 있는
거대한 건물의 뒷문으로
우리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빠져나왔다
모여서 담배를 피웠다
하얀 신발 코에 검은 재가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붉은 입술로부터 희디흰 연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보고 있었다
자판기에서
우유 버튼을 눌러
종이컵을 손에 쥐었다 비로소 따뜻했지만
찰랑거리는 컵 속에서
수천 명이 은닉해 절규하는
거대한 건물이 비쳤다
우리는 입술을 오므리고서
그 희디흰 물을
한 모금씩 마셨다
있잖아,
나는 포유류의 젖이 왜 흰색인지 이제야 이해가 되려고 해
라고 누군가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종이컵을
손안에서 구기며
이제야 첫 끼를 때웠네,
라는 혼잣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없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 찬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그날을 떠올리며
허연 우유 속을 유영하며 지냈다
여자 하나가 등을 보이고 돌아앉은 순간이었지만
그 여자의 아기는 가장 살고 싶어 한 순간이었다
수천 개의 심장이
제각각 출렁이고
수천 개의 맥박이
제각각 요동치는
누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이 건물에 은닉해 있다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수천 개의 창문이 꽉꽉 닫힌
거대한 건물의 아주 자그마한 처마 아래에서
유월이 오면
꼭 만나자는 약속 대신에
나는 쪼그리고 앉아 희디흰 목화솜을 벌려
씨를 꺼내 땅에 묻었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면서
[ I에게 ], 아침달, 2022(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