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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유진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이장도만큼은 아니었지만 임태풍 도 적지 않게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그는 어지간하면 용유진보다는 이 장도가 상대가 되길 바랐다. 달리 내보낼 만한 사람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나오긴 했지만 이장도 가 용유진을 붙잡고 소근거릴 때는 내심 기대도 했던 것이다. 무공을 비교해 봤을 때 누가 더 높을지는 그도 모른다. 어쩌면 소림사의 진전 을 이은 이장도가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심리적으로는 용유진이 훨씬 껄끄러운 상대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장도가 그냥 물러서고 용유진이 비무장으로 나올 때 그는 급히 생각을 굴려 지금이라도 아무 채주나 내보내고 자신은 다음 순서 로 나올까 고심을 했다. 그러나 용유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을 포기해버렸다. 생각해 보면 용유진의 무공이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장도 보다 높을 이유란 거의 없는 것이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 표국 국주를 하고 있다고 산동성 쪽 채주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리고 북경성 밖에서 쥐잡기 시합을 할 때 본 솜씨, 그때 받은 인상만 가지고 껄끄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임태풍은 희미하게미소를 지으며 용유진을 맞아 나갔다. "북경성 밖에서 하던 승부의 뒤를 이어야겠군." 용유진이 대꾸했다. "그땐 우리 둘 다 진 것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렇군. 승자는 그 녀석이었지. 그런데 그 아이는 어디 갔나?" "아마 곧 총표파자를 찾아갈 겁니다. 그 점에선 제가 졌군요. 그 녀 석이 나보다 총표파자가 좋다고 해서 보내 줬지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임태풍은 그냥 흘려듣고 말앗다. 지금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지 않는가. "그때 검을 쓴 걸로 기억하는데?" 용유진은 양손을 들어 보였다. "마침 검이 없어서요." "좋은 검을 빌려드릴까?" "어떤 보검이 있습니까? 총표파자를 베어 넘길 수 있는 검이 있다면 그걸로 빌리겠습니다만, 녹림맹에도 그런 건 없겠지요?" 임태풍은 싱긋 웃었다. 밉지 않는 놈이다. 입에 발린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놈인 것이다. "없진 않겠지만, 찾기는 어려울 걸세. 그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 은 놈은 안되겠나?" 용유진도 웃었다. "그런 검은 없어도 됩니다. 그리고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 양손 은 검보다도 오래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임태풍은 용유진의 손을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랬겠군. 그럼 검법보다 권법이 더 뛰어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두려워지는군!" 전날 북경성 밖에서는 분명 검법으로 재주를 부리지 않았던가. 그것 도 범상치 않은 재주를. 지금 용유진은 그 범상치 않은 검법보다 권법 이 더 뛰어나다고 하는 것일까? "뛰어난진 몰라도 수련은 더 오래한 게 틀림없지요. 사정을 봐주시 면 배운 권법을 한번 펼쳐 보이겠습니다." 용유진이 자세를 잡았다. 임태풍은 흥미롭게 그 기수식을 관찰했다. 많이 본 듯하나 어딘지 낯선 모습이었다. "그건 삼황포추(三皇포椎)?" 표사들이라면 누구든 연마하는 권법 아닌가. 임태풍은 약간 실망해 서 말했다. "약간 다른 걸 보면 근간은 삼황포추로 하고 변화를 준 모양인데, 그걸로 괜찮겠나? 난 어려서부터 도적이라서 그 권법을 쓰는 표사들과 는 많이 상대해 봤다네." 용유진이 자세를 풀고 말했다. "저도 어려서부터 표사였기 때문에 이 권법을 가장 많이 연습했지요. 그리고 사실을 말씀드리면 이 권법은 추(椎)자를 뺀 삼황포(三皇포)라는 겁니다. 자세는 비슷하지만 알고 계신 것과는 여러모로 다를 겁니다. 익숙하다고 방심하시면 제가 사기를 친 것 같아 죄송스럽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기대해 보기로 하지. 나도 권법으로 상대하겠네. 참, 나도 사기는 치기 싫어 말하는 거네만, 내 권법에선 주먹보다 발이 많이 사 용되는 건 잊지 않았겠지?" 물론 잊지 않았을 것이다. 천마군림보는 한 번밖에 못 봤다고 쉬이 잊혀지는 그런 어중이떠중이 무공이 아니다. 단지 누구도 막상 당해 보 기 전에는 그 위력을 실감하지 못할 뿐. 이 용가 표사가 몇 초나 버틸 지 그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너무 빨리 끝나면 재미없지 않은가. 그런 그의 경고를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용유진은 담담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잊을 리가 없지요. 그럼 한 수 가르침을...." "선수를 양보하지!" 임태풍은 오른손으로 잠삼 자락을 걷어올리고, 한 걸음 크게 내딛어 용유진을 향해 금방이라도 달려가 눌러버리려는 듯한 자세로 그렇게 말했다. 일반적인 권법에서 대적하는 자세의 기본은 상대의 공격을 쉬이 흘 릴 수 있고, 언제든지 반격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궁보(弓步)나 비정 비팔(非丁非八)같이 엉거주춤한 보법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자세는 마치 아랫사람을 꾸짖으려는 주인의 모습 처럼, 혹은 고대의 전장에서 장수가 청룡도를 휘두르며 출진을 하듯 기 세등등했고, 물러선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세였다. 그런데도 조금도 거칠어 보이지 않는 것은 천마군림보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것 은 천마군림보가 마교교주만의 무공으로 만들어졌고 전해졌다는 탄생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마교의 교주는 그 자신의 절세 무공을 소유하면서 동시에 한 종교의 교주, 수많은 교도를 심령상으로 감복시킬 것을 요구받는, 그야말로 신의 대리인이고 인간 중의 최고 위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제왕보다도 더 제왕같고, 어떤 은자보다도 더 신비스러울 필요가 있다. 천마군림보는 그러한 마교의 교주다운 기품과 파괴력을 상징하는 무공, 아니 무공이라기 보다 오히려 제왕의 행동방식을 구현 한 것이고, 그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천마군림보를 펼치게 되면 사람을 위축시키는 가공할 기세 가 발휘되는데, 이것은 보는 자로 하여금 굴종하고픈 마음이 절로 생기 게 하는 강렬한 억압과 위엄, 그리고 마교교주로서 길러진 심성의 근본 에 내재한 파천(破天)의 의지를 발산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소림의 무상신공, 혹은 그보다 한 차원 위의 금강부동신공과 일맥상통하는 면 이 있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 힘을 발취할 수 있다는 것 과 그 힘이 육체를 넘어선 어떤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두 무공은 전혀 다르면서도 한 부류라고 할 수 있었다. 임태풍은 그렇게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이미 공격을 가한 셈이었다. 그러니 선수를 양보한다는 것은 기실 정당한 처사였던 것이다. 이 공격 에 대해 용가표사는 어떻게 반응을 보일까. 유감스럽게도 용유진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내심을 잘 감추고 있는 것일까? 임태풍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여태 그가 누군가와 대적할 때 처음부터 천마군리보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 오늘의 예외는 그만큼 이번 일전이 중요하다는 그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천마군림 보에 압도당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더구나 일개 표사가 그런다는 것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지금 그 건방진 용가 표사는 가벼운 비무라도 하는 것처럼 주먹을 쥐며 뼈마디 부딪는 소리까지 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미소 를 흘리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전 예전부터 이 소리를 좋아했지요. 이제 한판 해보자는 신호 같거 든요. 양보해 주셨으니 사양 않고 갑니다!" 마지막 말은 고함으로 터져나왔다. 그러나 용유진의 양주먹은 바로 공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한쪽 발을 크게 들어 다른 발 옆에 모으고, 주먹을 모아 포권을 했다. 그리고는 마치 춤을 추듯이 팔을 크 게 휘둘러 원을 그렸다가 가슴 앞에 모으고,다른 판 역시 한 바퀴 휘 둘러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렇게 발도 땅바닥을 끍듯이 원을 그리며 옮 겨서는 서는 방향을 바꾸었다. 이게 기수식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거창한 동작으로 기수식을 펼치는 것이 표사들의 권법, 삼황 포추의 특징이긴 했다. 위세를 떨쳐 강함을 보이고, 상대로 하여금 부 복함을 알고 스스로 물러서게 하기 위한 것이 삼황포추의 첫째 목적, 실제로 손발을 휘둘러 싸워 이기는 것은 하는 수 없을 때 하는 행위이 기 때문이었다. 이걸 강호인들은 표사들의 허풍 몸짓이라고 비웃어 말 하고 있었다. 한편 다른 면을 보면 무림인들이라고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울 기회가 가장 많은 것이 표사였다.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늘상 싸움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기회도 많지 않았다. 관부의 눈을 피한 결투나 공식적인 비무대회, 혹은 그런 것 전부를 돌보지 않고 붙어 싸우는 세력싸움이나 벌어져야 칼끝에 목숨을 거는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무림인인데, 그런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반면 표사는 표행 중에 반드시 몇 번의 싸움을 겪게 된다. 주로 상 대하는 자들이 도적들이다 보니 말보다는 주먹,주먹보다는 무기로 해 결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삼황포추는 한편 으로는 극도로 위세를 부리는 권법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극히 실전 적인 권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도 웬만한 수준에서나 통하는 것, 임태풍과 천마군리보에 대항해 삼황포추를, 비록 그것이 변화되어 추자 하나를 뺀 권법이라고 해도 결국 삼류에 불과한 권법을 춤추듯 시전하고 있으 니 좌중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임태풍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점점 더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용유진의 동작에서 가공할 압력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을 옮기고, 손을 휘두르는 그 간단한 동작에서 상상도 못할 힘이 느 껴지고 있는 것이다. 천마군림보에도 윙압당하지 않는다는 것, 가장이든 아니든 감히 그 의 앞에서 여유를 부린다는 것, 이 두 가지 이유로 약간은 분노했던 그 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번엔 반대의 이유로 고조되 기 시작했다. 적은 정말 강하가. 허세가 아니라 진짜 여유라면 그도 대충 상대해 선 안 될 것이다. 그보다도.....! '오랜만에 상대해 볼 만한 적을 만난 것인가?' 오랫동안 느껴 보지 못하던 기분이었다. 녹림도 총표파자가 된 이후 잠들어 있던 투사의 피가 깨어난 것이다. '제대로 한번 싸워 주지.' 이때, 이 용유진이 입을 열었다. "제일 초식입니다." 말과 함께 가슴 앞에 모았던 그의 손이 하늘로 뻗쳐갔다가 수직으로 공간을 갈랐다. 수도(手刀), 손날을 도끼처럼 사용하여 임태풍의 정수리 를 가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거리는 아직도 일 장은 떨어 져 있었다. 직접 손날이 닿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실제의 도끼날보 다도 백 배 날카롭고 거대한 경기(勁氣)가 그 일을 수행했다. 천둥소리가 터지고, 보이지 않는 번개가 칼이 되어 공간을 두 개로 완전히 갈라버리는 듯한 느낌을 좌중의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었다. 용유진을, 그보다느 삼황포을 우습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한순간 모두 낯빛을 파랗게 물들인 채 말을 잊었다. 임태풍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금이 저려서 피할 수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애초부터 용유진의 공격이 그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피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과연 용유진의 공격은 그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대신 그의 발 바로 앞까지 지진이 났을 때나 만들어질 듯한 거대한 균열이 만들어져 있었 다. 임태풍은 그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고 혀를 찼다. "대단하군. 이 무공의 이름이 뭔가?" 용유진은 자세를 풀지 않고 대답했다. "천황개산(天皇開山)이라는 거죠.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아니, 대단했네. 이 정도 위력인 줄 모르고 그냥 있었으면 아마 내 가 두 쪽이 났겠지." "겸손의 말씀을." "난 겸손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그건 그렇고..., 싸우면서 이 렇게 말만 많으면 보느 사람들이 심심해 하겠지? 이대로 시간을 보내 다간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도 생길 것 같고...." 그느 손을 들어 이마에 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구석에서부 터 먹구름이 일기 시작해서 점차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눈이 올 모양인데. 산에서 눈을 만나면 매우 유쾌하지 않다네. 얼른 하산하는 게 좋지. 그 전에 결판을 내세나."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필요가 없었다. 임태풍은 한 발을 옮겼다. 비스듬히 옆쪽으로, 그러나 분명히 앞을 향해서 옮겨 딛었다. 천마군림 보에는 후퇴라는 것이 없었다. 때를 맞춰 아련히 멀리서부터 천둥소리 가 울려퍼졌다. 마치 그의 발이 그 소리를 만들어낸 것처럼. 용유진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혹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단순히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조밀하면서도 강인한 거미 줄에 걸린 것처럼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힘이 그의 발에는 있었다. 그는 다시 한 걸음을 옮겨 딛었다. 용유진은 그것을 보면서도 움직 이지 않고 있었다. 그와 용유진을 둘러싼 대지가 갑자기 얼어붙은 것 같았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운이 그들을 둘러싸고 얼음의 공을 만든 것 같았다.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던 바람마저 그대로 얼어붙어서 예 리하면서도 섬세한 얼음 줄기들로 굳어버린 듯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피부가 따가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몸서리를 쳤다. 주변을 질식시킬 듯한 무거운 기운과 소름을 절로 돋게 만드는 진한 살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 살기에 반응해서 살갗이 저 절로 터져나가는 듯했다. |
첫댓글 잘밨어요
감사합니다
ㅈㄷㄱ~~~~~```````
감사해요~^^
즐독입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