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너는 소리 내어 책을 읽는데 오늘의 대목이 끝나
자 문득, 내가 깨어났다 큰 물줄기가 굽이치는 모양으로 그
러나 매우 느린 속도로 너무 느려 지켜보는 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뜰 때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나를 보네 내가 드디
어 하나의 바위를 마저 넘을 듯 오르는 모습을
그러나 너는 아직 나를 모르고,
책을 덮을 뿐이다 너무 많은 시간이 범벅된 것 같아 이제
그만 책을 덮을 뿐이다 한없이 쉬운 마음으로 귀갓길에 만
난 고양이를 대하는 순정만큼으로 책을 덮을 뿐인데 그 고
양이가 담벼락과 함께 넘던 것 중엔......
나는 너를 지켜보고 너는 여태도 나를 모르고,
자리를 편다 되도록 안락하고 싶은 마음과 잠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마주칠 때 사람들은 보통 어떤 선택을 하는지
마치 내게 묻는 것 같고 잘 시간에 잠을 자기엔 불안한 것들
이 너무 많다고
너는 나를 모른채 가방을 싼다,
평생의 잠을 모조리 개켜서 그 잠들과 도망갈 듯이 몇날
며칠로 시작해...... 그 잠 몽땅을 개킬 때 그 사이로 딸려 들
어가는
작은 하품
작은 잠꼬대와 흥얼거림
선뜻한 호응과 맑고 투명한 선의 용기...... 그리하여 방방
한 가방이 고독과 절박 약간의 피로와 함께 몇권의 책처럼
남았네
읽다만 책은 어디서부터 다시 읽어야 할까?
여전히 나를 모르고,
내가 마침내 야트막한 산 하나를 마저 오르듯 너의 이마
에 닿자
가방이 쏟아진다
너는 퍼뜩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낸다
[탕의 영혼들],창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