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1584년경, 영국인 탐험가 월터 롤리는 지금의 미국 플로리다주 북구 해안을 탐사하던 중 영국인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땅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 당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별명을 따 버지니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왜 버지니아냐고요? 엘리자베스 1세는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선언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 이 당시 버지니아에는 특정한 경계가 없었기에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플로리다에 이르는 지역을 대부분 버지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의 버지니아주와는 위치가 다르니 기억해 두세요.
(29)
그럼 현재 미국인들이 자기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첫 북미 대륙 정착민’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들은 바로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 항구를 출발해 약 65일 뒤 지금의 보스턴 부근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인이랍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뉴욕이 있는 허드슨강을 목적지로 영국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현재 보스턴 지역인 플리머스였습니다. 목직지가 달라졌으나 플리머스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을 ‘새로운 영국’이라는 뜻의 뉴잉글랜드(New England)라고 이름 짓고 일단 살아보기로 합니다.
(33)
질병과 굶주림으로 힘들었던 청교도들은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 들까요? 그래서 다음 해인 1621년, 옥수수를 수확한 청교도들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원주민들에게 칠면조 등을 잡아서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시작이라고 미국인들은 주장합니다. 아주 아름다운 미덕으로 포장해 매년 11월 4번째 목요일이 되면 전국적으로 칠면조를 잡아 가족끼리 기도를 하며 그날의 아름다운 미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대부분이 아는 미국 추수감사절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 후, 청교도 정착민들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원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합니다. 왜 갑자기 은인들을 학살했느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점차 영국에서 사람들은 밀려 들어오고, 땅은 부족했습니다. 제임스타운의 경우와 똑같이 자신들이 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과 충돌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을 도운 원주민들은 왐파노아그족(Wampanoag)이란 부족이었는데 1675년, 중무장한 영국인들에게 거의 몰살당해요.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숨기고 싶어 하는 건국 초기의 흑역사이니까요.
(50)
카르티에가 프랑스령이라 선언한 지역이 바로 지금의 퀘백 지방입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영어를 쓰지만 퀘벡에서는 아직도 프랑스어를 씁니다. 퀘백의 중심 도시 몬트리올에는 중앙 광장이 있는데요. 바로 ‘자크 카르티에 광장’입니다. 프랑스어가 쓰인다는 걸 잘 알 수 있지요. 카르티에가 그 동네 원주민에게 이곳의 이름을 물었더니 원주민은 ‘카나다, 카나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카르티에는 그곳의 이름을 카나다로 알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곳 원주민 말로 ‘마을’이란 뜻이었거든요. 결국 그 카나다가 나라 이름인 캐나다(Canada)가 되었답니다.
(70-71)
1790년 본격적으로 이 늪지대에 새 수도 건설이 시작됩니다. 이제 새 수도의 이름을 정할 시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워싱턴’이란 이름을 일단 붙이고 그 뒤에 D.C.란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합니다. 여기서 D.C.는 District of Columbia의 준말인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콜롬비아 특별구’라는 뜻입니다. 콜롬비아는 당시 유럽 대륙에서 미국을 부르는 또 하나의 별명이었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콜럼버스의 땅’이란 뜻이었지요. 결국 미국 수도 이름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이 들어간 워싱턴 D.C.로 정해집니다.
(113)
1817년엔 노예해방론자들이 아예 흑인 노예 수만 명을 배에 태워 다시 그들의 고향인 서아프리카로 돌려 보냅니다. 이들에 의해 미국을 탈출한 수만 명의 흑인 노예들은 서아프리카에 새로운 나라를 만듭니다. 이것이 1822년 서아프리카에 설립되어 1947년에 독립한 ‘라이베리아(Liberia)’에요. 라이베리아의 국기를 보면 미국 성조기와 아주 비슷한데요. 자기들을 탈출시키고 고향 아프리카에 그들만의 나라를 만들어 준 미국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답니다.
(137)
미국 백인들은 수족을 학살한 것도 모자라 더욱 잔인한 일을 벌입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가보면 러시모어산이 있는데, 그 산에 역대 미국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이 크게 조각되어 있어요. 관광지로도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중서부 단체 여행 중 꼭 방문하는 미국의 성지거든요. 그런데 그 백인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러시모어산은 바로 수족의 터전이었고 그 산은 수족의 성지(聖地)였던 것입니다. 백인들이 자신들에게 덤비고 얼굴을 새겨 넣은 겁니다. 수족의 입장에선 부족의 성스럽고 상징적인 산에 백인 정복자 네 명의 얼굴이 새겨진 것이지요. 이건 마치 광화문 광장에 이토 히로부미 동상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수족에게 치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70)
러시아 역사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시작할 시대는 로마노프 황족이 군림하던 ‘로마노프 황조’시대랍니다. 로마노프는 조선을 다스렸던 전주 이씨와 같이 당시 러시아를 다스리던 왕족의 이름이랍니다. 유럽 변두리 국가였던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유럽사에 당당한 주요 국가로 등장한 시기도 이 로마노프 황조 때였어요. 이 로마노프 황조, 우리와도 관계가 깊어요. 고종이 수도 서울 안에서 도망간 러시아 외교 공관은 로마노프 황조의 외교 공관이었고, 한반도 주도권을 놓고 일본과 대판 싸운 러일전쟁도 로마노프 황조 때 일어났답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으로 쫄딱 망한, 즉 러시아 역사의 마지막 황조 또한 로마노프 황조입니다.
(182-183)
여기서 잠깐만, 여러분 혹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아시나요? 아주 간단히 깊어 볼게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일단 자본주의는 나빠요. 그래서 사회가 궁극적으로 모두가 똑같이 평등하게 나누면서 사는 공산주의로 바뀌어야 해요. 그런데 공산주의로 바꾸는 것이 힘들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잖아요. 이 과정에서 잠시 노동자, 농민에 의한 강력한 ‘독재’를 토애 더 빠르게 공산주의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 ‘노동자, 농민에 의한 불가피한 독재 과정’을 사회주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독재 과정인 사회주의를 잠시 견디면 누구나 평등한 공산주의가 온다고 믿었어요. 즉, ‘자본주의 à 사회주의 à 공산주의’ 순서로 세상이 변하리라 생각했습니다.
(227)
밥그릇 안에서 구더기가 나오자 수병들은 격분했습니다. ‘아니! 밥이라도 제대로 줘야 싸우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라는 불만을 장교들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장교들이 한 대답은 ‘그냥 구더기 건져 내고 조용히 먹어’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더욱 격분한 수병들은 장교를 죽이고 배를 접수합니다. 바로 ‘전함 포템킨 봉기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영화를 하나 추천해 드릴게요. 러시아 ‘천재 영화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만든 러시아 영화 <전함 포템킨>입니다. 전함 포템킨 반란 사건 20주년을 기념해 1925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인류 영화사에 엄청난 영향을 준 영화랍니다. 이 영화를 보시면 당시 러시아 혁명이 어떻게 시작됐고 전함 포템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229)
그리고 이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은 역사적인 조직 하나를 탄생시켰습니다. 당시 러시아 노동자들은 전국적인 총파업을 지휘하기 위해 총지휘부를 만들었어요. 그 지휘부는 러시아어로 ‘노동자의 희회’란 뜻인 ‘소비에트(Soviet)’라고 불리게 됩니다. 당시 노동자들도 몰랐을 겁니다. 이 소비에트가 나중에 소비에트 혁명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이라는 나라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질 줄을요.
(235)
쇼스타코비치가 1957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11번>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곡 연주에 한 시간이 넘을 정도로 장대하고 거대한 음악 작품입니다. 여섯 개의 혁명가를 인용한 것 또한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의 악장마다 ‘궁전 앞 광장’, ‘1월 9일’, ‘추도’, ‘경종’ 등 피의 일요일 사건의 순서를 나타내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1악장은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기 전 민중의 모습, 2악장은 학살 장면, 3악장은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4악장은 비극을 딛고 일어나 전진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이 낯설고 멀게 만 느껴진다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