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영덕발전연구회 성료
고향 영덕의 지속적인 발전을 연구하는 영덕발전연구회(회장 박영호)는 제3회 연구회세미나를 2021년 7월 8일(목) 15시부터 18시까지 가졌다.
먼저 개회사를 박영호 회장이 했다. 1회와 2회에 이어서 이번 세미나에서 괴시마을과 장사리 전투 및 문산호 개관에 대해 발표회를 가지게 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진 축사에서 김남일 경상북도 전 본부장은 지역학 발전연구회를 가동한 군은 영덕군이 유일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수산물가공수출이 1위인 곳이 영덕이다. 양구군은 박수근 미술관으로 인기이다. 영덕의 인물자원을 잘 활용하자고 했다. 이희범 경북 재단 대표는 자신도 재령이씨 후손이라고 밝히고 영해지방은 예로부터 유학이 성한 곳으로 괴시마을의 민속마을 지정을 축하하는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하병두 군의회의장과 남후식 재경영덕군 향우회장도 축사를 제출했다.
김인현 총무이사의 사회로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김포대학 명예교수인 남석순 교수는 괴시마을 영양남씨의 후손인 점을 강조했다. 그는 괴시마을이 제8호 국가민속문화재(민속마을)로 지정된 경과를 소상히 알렸다. 영해는 목은 이색선생과 나옹대사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영양남씨는 통일신라시대 당나라 사신이었던 김충(남민)이 755년 축산항에 표류하여 영덕지방 주변에 기거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의 문인이었던 남정방공이 수안김씨가 살던 괴시에 장가를 들면서 괴시리와 인연을 맺게되었다 실제로는 그의 손자인 남두원공이 1630년부터 괴시마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16채의 한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날개집 사랑채와 뜰집(□ 미음자형태)과 양통집(겹집)의 건축형태가 가치가 있다. 정승과 판서는 배출하지 못했지만 반가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왔다. 3.18 영해만세운동에도 4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마을은 웃마, 아랫마, 중마골로 구성된다. 척사대회(윷놀이)가 유명하다. 16문화재와 물소와 서당, 괴호서숙이 있다. 이색선생의 외가가 괴시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기념관이 괴시마을에 함께한다는 점도 괴시마을의 장점이다. 괴시민속마을과 관어대, 창수인량, 축산항을 영덕북부지방의 관광지로 개발 남부의 강구지역과 같이 가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400년 전통과 함께 젊은 층들에게 다가가는 컨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을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다.
두 번째 발표는 유병추 장사전투 유격동지회 회장이 해주었다. 90노구를 이끌고 고려대 발표장에서 노병은 61년 전의 1950년 장사리 전투리를 회상하면서 발표를 했다. 대구 대건중 5학년일 때 구국의 마음으로 군대에 지원을 해서 유격대에 들어갔다. 자신을 포함한 718명의 학도병을 실은 문산호가 1950.9.15. 새벽 장사리에 상륙하려했지만 문산호가 좌초되어 1중대원 거의모두가 바다에서 전사했다. 선원들이 바다를 헤엄쳐 밧줄을 육지에 걸고 나서 문산호로부터 학도병들이 상륙에 성공했다. 자신이 속한 2중대는 상륙에 성공하여 전투를 했다. 3일간 장사지방의 고지를 지키는 중에 철수명령이 떨어져 조치원함을 타고 철수했다. 철수과정에도 50여명의 학도병을 두고 오는 슬픈 일이 있었다. 장사상륙작전을 미끼로 적의 관심을 동해에 묶어두었기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이에 큰 의미를 두어야한다. 그 후 유격동지회가 결성되어 1980년대부터 활동했다. 자신은 6대 회장이다. 현재 15명 정도의 참전 학도병이 살아있지만 모두 연로하다. 유격동지회의 제안과 기금마련을 영덕군이 받아들여 문산호가 건립되어 하루에 2000명 정도가 관람을 하고있어서 다행이다. 동해의 구국의 성지로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영덕군의 양대축인 영덕고등과 영해고등 교장선생님이 초대되어 학교소개와 진학성적에 대하여 설명했다. 김진훈 영덕고 교장선생님은 영덕고는 2014년 인문계로 전환되었고, 현재 9학급으로 운영중이고 10년 정도는 60명 3학급이 운영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1983년 만든 축구부가 유명한데 타시도에서 학생이 유입된다. 최근 3년간 서울대, 고려대등 명문대학에도 꾸준히 2-3명 합격을 한다고 소개했다. 김기활 영해고 교장선생님은 영해고는 현재 9학급이다. 3학급 최소인원이 47명의 학생이어야하는 바, 올해는 49명의 학생을 겨우 받았을 정도로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관내 중학교 졸업생들이 타지역으로 가지 않도록 부탁했다. 동창회의 장학금 지급이 학생유치에 도움이 되었다. 영해고도 최근 3년간 고려대, 한양대등 명문대학에 꾸준히 2-3명씩 합격하는데 올해는 조금 성적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교장선생님들은 반드시 도시로 학생을 보내지 않아도 입시제도가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영덕의 고등학교에 진학시켜줄 것을 학부모님들에게 부탁드렸다. 학생들이 내신성적에만 치중하는데 각 대학의 최종수능성적 유지에 초점을 두도록 교육시키겠다. 김인현 총무와 박영호 회장은 영덕출향인들이 만든 영덕학사가 서울 사직동에 건립되어 아주 저렴하게 운영되고있어서 영덕에서 고등을 졸업하면 서울에 오면 이렇게 안전하게 저렴하게 대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고향의 선배들이 만들어두었다고 소개했다.
참석자들은 지역의 고등학교를 명문으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인구소멸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에 동의하면서 이에 동참하자는 의견들을 제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영호 회장(영덕발전연구회), 류병추 회장(장사리전투 유격동지회), 김남일 본부장(경북도 환동해사업본부), 남정수 전 감사원교육원장, 문영기 교수(강원대), 남석순 교수(김포대), 김중태 전 통일부기획실장, 임충빈 원로, 서석조 조합장(영해농협), 김인현 교수(고려대), 박영한 교수(교통대), 김병수 교수(목원대), 김종길 교수, 박문태 문화해설사, 박춘택 대표(영해동학혁명기념사업회), 권태주 사장(천리미향), 권진용 원로, 김기활 교장(영해고), 김진훈 교장(영덕고), 서영수 상임이사(영덕문화관광재단), 김명욱 소장(영덕로하스), 백언정 원장(영덕여고졸업), 이범교 소장(DB손해보험 영해영업소), 이상훈 출향인, 한정숙 출향인, 남갑진 출향인등 40명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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