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구의 시대정신 전통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나무와 철을 손에 쥐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담은 목가구, 현대적으로 변주한 전통을 입은 예술가구의 뿌리는 다른 듯 닮아 있다.
김동귀 소목장 | 가구 짜던 소목장으로 평생을 산 외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의 세월을 곁에서 보며 자랐으니, 어쩌면 저는 필연적으로 나무 만지며 살아갈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단청 문양을 찾아 심산유곡을 헤매고, 골동품 가게를 이 잡듯이 뒤졌죠. 기술적으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외삼촌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고요. 그러고도 한계가 느껴져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해 체계적으로 목칠공예 공부를 했어요. 1990년엔 지리산 자락에 공방을 차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엔 공방이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후학 양성을 위한 공간으로 이 공방을 활용했습니다. 홍익대 근무하시던 박형철교수님이 지리산 문화상품개발을 위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와 제가 속한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목가구디자인 강의를 10여 년간 이곳에서 했지요.
박보미 디자이너 | 저는 어려서부터 철이라는 소재에 익숙했어요. 건축 일을 하셨던 할아버지, 손수 집을 지으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공사장 근처를 기웃거렸죠. 깊게 파인 땅에 거친 철골구조물이 들어서 높이를 더해갈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는데, 건물을 가로지른 규칙적인 격자구조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어요. 사실 처음부터 ‘전통’을 이야기하고자 한 건 아니었어요. 금속공예의 연장선에서 가구를 만들다 보니, 우리 옛 가구의 단아하고도 독창적인 매력에 주목하게 됐지요. 한국 전통가구 중 사방탁자는 비좁은 공간에서도 시각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우수한 비례미를 보여주는 가구인데요. 저는 선의 겹쳐짐 효과로 풍부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사방이 뚫린 형태로 공간 어디에서나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했어요. 여닫이문에 부착된 둥그레 경첩은 한쪽 문을 열면 반달이 되고 닫으면 보름달이 되는데, 보름달은 예로부터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세상을 기약하는 기원의 대상이었다고 해요. 외국인들은 이렇듯 한국 전통가구에 숨어 있는 스토리들을 무척 흥미로워하더군요.
실용과 예술 사이, 전통과 현대의 융합 차갑고 딱딱한 철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나무는 참으로 대조적인 소재다. 나무든 철이든, 가구를 만드는 일은 구상부터 마무리까지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김동귀 소목장 | 초기 작품은 은행나무, 먹감나무, 소태나무 등을 이용해 1차 집성문양 회장을 부착했어요. 지금은 원목의 질감을 살려 염색집석목(색동목)을 이용해 4차 집성문양 회장을 전통가구의 표면 문양에 입힙니다. 염색집석목은 제가 개발한 기법인데요. 나무에 열과 습도를 주어 곡선으로 만든 뒤 원하는 단면 모양이 나오도록 잘라 자연스러운 나이테 모양을 뽑고, 각각 다른 색상의 패턴을 넣어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인 흑, 백, 청, 적, 황의 기본색을 염색해 4차의 집성과정을 통해 만듭니다.
박보미 디자이너 | 전통 기법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면 가슴 뻐근한 사명감 같은 게 느껴져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제 작업도 시간과의 싸움이죠. 네다섯 시간 의자에 앉아 일어나지 않을 때도 많은데, 영감이 떠오르면 스케치를 하고 CAD 프로그램으로 각각의 프레임 길이를 산출합니다. 격자로 된 와이어 메쉬를 디자인에 맞게 커팅하고 나면 용접 과정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 작업에만 열흘 정도의 시간이 걸리죠. 가로줄 여러 개를 놓은 뒤 세로줄을 넣어 아르곤 용접을 하다 보면 손등으로 불꽃이 튀는 일도 다반사죠. 이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면 격자 구조의 사각형 하나하나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점차 입체감을 가지고 가구의 형태를 띱니다.
한국 전통가구의 무한한 가능성 좋은 가구를 두고 ‘음양(陰陽)의 화합’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재질의 목재가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데, 완벽한 한 몸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거기다 그 나무의 수명까지 헤아려보면 100년, 1000년 단위로 넘어간다.
김동귀 소목장 | 좋은 나무는 쉬 갈라지지 않고 고유의 문양, 즉 나뭇결이 자연스럽게 잘 나타나 있어요. 목공예에 쓸만한 재목은 4~500년은 돼야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조선시대에 심어놓은 나무가 재목이 되는데, 요즘은 그런 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워요. 쓸만한 재료가 고갈됐다면, 그 환경에 맞는 기법을 개발해야죠. 문갑, 사방탁자, 반닫이 같은 세간도 그 옛날 한옥 구조에 들어섰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할 테고요. 나무를 잡은 지 40여 년이 지나니, 작업에 필요한 부분만 보이던 게 어느샌가 나무 전체가 보이게 되고, 서서히 숲이 보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전통가구를 재현하는 틈틈이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기법 연구와 소재 개발에 몰두하고 있어요. 다양한 작업과 가공을 통해 산업에 접목하면 목공예도 얼마든지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창 목상감을 연구할 땐,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어요. 선험자로서 후배들이 시행착오 없이 전통을 계승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박보미 디자이너 | 철은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했던 대학 시절부터 가장 낯익은 소재였어요. 그렇지만 늘 같은 모습만 보여주었다면 지금까지 철을 소재로 한 작업을 해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동안 철은 물론이고 철과 스판덱스 혹은 에쉬를 이용한 다양한 작업을 해왔어요. 단 하나, 가구를 통한 일상과의 소통만큼은 놓치지 않는 공통된 주제죠. 제가 지향하는 ‘예술가구’는 ‘일상 속 예술품’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갤러리 안에서나 감상할 수 있었던 수동적인 개념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만지고 쓰며 느낄 수 있는 예술품이죠. 제가 디자인한 가구가 한국의 전통미를 감성적으로 전파하는 ‘일상 속에 쓰임이 있는 예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1987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동귀 소목장은 서울, 독일, 일본, 중국, 브라질 등 국내외에서 전시회를 열어왔다. 박보미 디자이너 또한 다양한 국제디자인전시회에 유니크한 K-가구를 선보이며 유연한 소통을 펼치고 있다. 시간을 초월한 한국의 고전미를 나무와 철 안에 담는 이들의 손끝에서, 한국 전통가구는 실용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심미적인 가치를 충족하며 일상 속 예술로 확장하고 있다.
글‧윤진아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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