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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外編 17篇 秋水篇 第5章(장자 외편 17편 추수편 제5장)
공손룡이公孫龍이 위魏의 공자公子 모牟에게 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왕先王의 도道를 배우고 자라서는 인의仁義의 행위에 밝게 되었습니다. 사물의 동同과 이異를 조화시키거나 돌의 굳은 것과 흰 것을 변별시키고, 세상에서 흔히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고 세상에서 흔히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여 많은 학자들의 지식을 곤혹스럽게 하고 뭇사람들의 변론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장자莊子의 말을 듣고는 멍해진 채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알 수 없군요. 나의 의론議論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나의 지식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요? 지금 나는 입도 벌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공자公子 모牟는 팔뚝을 안석에 기댄 채 한숨을 깊이 쉬고는 하늘을 우러러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저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가. 그 개구리는 동해 바다에 사는 자라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아 즐겁구나. 나는 우물 밖으로 튀어나와서는 우물 난간 위에서 깡충 뛰놀다가 우물 안으로 들어와서는 깨어진 벽돌 끝에서 쉬곤 한다. 물에 들어가서는 두 겨드랑이를 물에 찰싹 붙인 채 턱을 지탱하고 진흙을 찰 때는 발이 빠져 발등까지 잠겨 버리지. 장구벌레와 게와 올챙이를 두루 돌아봄에 나만 한 것이 없다네. 게다가 구덩이 물을 온통 독점하며 우물 안의 즐거움을 내 멋대로 한다는 것, 이 또한 최고일세. 그대도 이따금 와서 들어와 보지 아니하겠는가.’ 동해의 자라는 〈그 말을 듣고 우물 속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왼발이 채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 무릎이 벌써 우물에 꽉 끼여버렸다네. 그래서 망설이다 뒤로 물러나서는 개구리에게 바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네. ‘대저 바다는 천리의 넓이를 가지고도 그 크기를 표현할 수 없고 천 길의 높이로도 그 깊이를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하夏의 우禹임금 때에는 10년 동안에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그래도 바닷물이 더 불어나지는 않았지. 또 은殷의 탕湯임금 때에는 8년 동안에 일곱 번이나 가뭄이 들었지만 그래도 바닷가의 수위水位가 더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네. 시간의 장단長短에 좌우되는 일도 없고 강우량降雨量의 다소多少로 물이 증감增減되지 않는 것, 이것이 또한 동해의 커다란 즐거움이라네.’ 우물 안 개구리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고 너무 당황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네.”
“게다가 〈그대가〉 시是와 비非를 구별할 만한 지력知力도 가지고 있지 못한 주제에 장자莊子의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는 마치 모기에게 산山을 짊어지게 한다거나 노래기에게 황화黃河를 건너게 하는 것과 같아서 감당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네. 게다가 또한 근원적이고根源的이고 영묘靈妙한 철학을 논할 만한 지혜도 없는 주제에 일시적인 이利로움에 자기만족自己滿足하는 자는 저 우물 안의 개구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한 저 장자莊子는 이제 땅속의 황천黃泉에까지 발을 들여놓고 하늘 끝 대황大皇에까지 오르려 하고 있네. 남쪽도 북쪽도 없이 거침없이 사방팔방으로 자기를 해방하여 짐작할 수도 없는 심원深遠한 경지에 침잠沈潛하고, 동쪽도 서쪽도 없이 유현幽玄한 명합冥合의 경지로부터 시작해서 자유무애自由無碍로 소통하는 대도大道로 돌아가는 사람이네. 그런데 자네는 정신없이 자질구레한 지혜 분별로 그를 찾으려 하고 쓸모없는 변론으로 그를 잡으려 하고 있네. 이것은 다만 가느다란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송곳을 땅에 꽂고 대지大地의 깊이를 측량하려는 짓이니 참으로 작은 소견이 아니겠는가. 자네는 어서 돌아가게.
또 자네도 저 수릉壽陵의 젊은이가 〈조趙나라 서울〉 감탄邯鄲에 가서 대도시풍大都市風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겠지. 〈이 젊은이는〉 대도시풍 걸음걸이를 미처 배우기도 전에 또 그 옛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렸으므로 결국에 오직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 이제 그대도 얼른 여기를 떠나지 않으면 〈장자의 철학을 체득體得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대 자신의 지금까지의 지식도 잊어버리고 그대 자신의 학업學業마저도 잃어버리고 말 것일세.”
공손룡公孫龍은 열린 입이 닫혀지지도 않고 올라간 혀를 내려오게 하지도 못한 채 이윽고 뒤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公孫龍 問於魏牟 曰 龍少學先王之道 長而明仁義之行
合同異離堅白 然不然可不可 困百家之知 窮衆口之辯
(공손룡이 문어위모하야 왈 용이 소학선왕지도하고 장이명인의지행하야
합동이하며 이견백하며 연불연하며 가불가하야 곤백가지지하며 궁중구지변하야서)
공손룡이公孫龍이 위魏의 공자公子 모牟에게 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왕先王의 도道를 배우고 자라서는 인의仁義의 행위에 밝게 되었습니다.
사물의 동同과 이異를 조화시키거나 돌의 굳은 것과 흰 것을 변별시키고, 세상에서 흔히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고 세상에서 흔히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여 많은 학자들의 지식을 곤혹스럽게 하고 뭇사람들의 변론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 공손룡公孫龍 : 조趙의 평원군平原君에게 벼슬한 학자. 혜시惠施와 함께 중국 고대 명가名家(논리학파)의 대표적인 인물.
☞ 위모魏牟 : 장자의 고국故國인 송宋에 인접한 위魏나라의 공자公子이다. 위공자魏公子 모牟라고 일컬었는데 위나라가 중산中山을 벌득伐得해서 모牟를 여기에 책봉冊封하였기 때문에 중산공자中山公子 모牟라고도 불리웠음.
☞ 소학선왕지도少學先王之道 : 어려서부터 선왕先王의 도道를 배움.
☞ 장이명인의지행長而明仁義之行 : 유가儒家의 이론理論을 배운 것을 나타내는 것.
☞ 합동이合同異 이견백離堅白 : ‘합동이合同異’는 다른 것을 합해서 하나로 조화하는 궤변술詭辯術이고 ‘이견백離堅白’은 같은 것을 변별해서 다르다고 하는 궤변술인데, 예를 들어, “단단하고 흰 돌[堅白石]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라고 하는 것이 堅과 白을 분리시키는 궤변이다.
☞ 연불연然不然 가불가可不可 : 〈세상에서 흔히〉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불연不然)을 그렇다고 하고(연然), 세상에서 흔히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함. 〈제물론齊物論〉편 제4장‧〈천지天地〉편 제9장에 기출旣出.
吾自以爲至達已 今吾聞莊子之言 汒焉異之 不知
論之不及與 知之弗若與 今吾無所開吾喙 敢問其方
(오자이위지달이라니 금오문장자지언하고 망언이지하노니 부지케라
논지불급여잇가 지지불약여잇가 금오무소개오훼로소니 감문기방하노이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장자莊子의 말을 듣고는 멍해진 채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알 수 없군요.
나의 의론議論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나의 지식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요? 지금 나는 입도 벌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망언이지汒焉異之 : 멍해진 채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뜻. 망汒은 망茫과 통용, 아득하다, 멀다는 뜻.
公子牟 隱机大息 仰天而笑 曰
子獨不聞夫埳井之鼃乎 謂東海之鱉曰
(공자모 은궤대식하고 앙천이소하야 왈
자독불문부감정지와호아 위동해지별왈)
공자公子 모牟는 팔뚝을 안석에 기댄 채 한숨을 깊이 쉬고는 하늘을 우러러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저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가. 그 개구리는 동해 바다에 사는 자라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아 즐겁구나. 나는 우물 밖으로 튀어나와서는 우물 난간 위에서 깡충 뛰놀다가 우물 안으로 들어와서는 깨어진 벽돌 끝에서 쉬곤 한다.
☞ 감정지와埳井之鼃 : 감埳은 ‘구멍처럼 움푹 파인 땅, 또는 구멍, 우물의 뜻’. 감埳자는 본래 감坎(구덩이 감)과 같은 글자. 와鼃는 와蛙의 고자古字임.
☞ 별鱉 : 자라. 별鼈로도 쓰여지고 있다.
吾樂與 吾跳梁乎井幹之上 入休乎缺甃之崖
赴水則接腋持頤 蹶泥則沒足滅跗 還虷蟹與科斗 莫吾能若也
且夫擅一壑之水 而跨跱埳井之樂 此亦至矣 夫子奚不時來 入觀乎
(오악여인뎌 오는 조량호정간지상하다가 입휴호결추지애하야
부수즉접액지이하고 궐니즉몰족멸부하노니 선간해여과두에 막오능약야하니라
차부천일학지수하야 이과치함정지락이 차역지의니 부자는 해불시래하야 입관호오)
물에 들어가서는 두 겨드랑이를 물에 찰싹 붙인 채 턱을 지탱하고 진흙을 찰 때는 발이 빠져 발등까지 잠겨 버리지. 장구벌레와 게와 올챙이를 두루 돌아봄에 나만 한 것이 없다네.
게다가 구덩이 물을 온통 독점하며 우물 안의 즐거움을 내 멋대로 한다는 것, 이 또한 최고일세. 그대도 이따금 와서 들어와 보지 아니하겠는가.’
☞ 역주15 吾樂與 : 아! 나는 즐겁구나. 樂은 ≪經典釋文≫에 “音은 락이다[音洛].”라고 함. 與는 감탄 助字.
☞ 부수赴水 : 물속으로 뛰어든다는 뜻.
☞ 접액지이接腋持頤 : 접액接腋은 두 겨드랑이를 물에 착 붙인다는 뜻이고 지이持頤는 턱을 지탱한다, 턱을 물 위에 올려놓는다는 뜻.
☞ 궐니즉몰족멸부蹶泥則沒足滅跗 : 궐니蹶泥의 궐蹶은 ‘발로 걷어찬다’는 뜻. 넘어진다는 뜻은 아님. 몰沒과 멸滅은 둘 다 ‘빠진다’, ‘잠겨 버린다’는 뜻이고 부跗는 발등.
☞ 선간해여과두還虷蟹與科斗 : 선還은 ‘선旋’과 같은 음으로 ‘고시顧視’ 즉 한 바퀴 빙 둘러 두루 돌아본다는 뜻. 간虷은 우물 속에 있는 적충赤蟲이며, 일명 연蜎(장구벌레 연)이라 함. 곧 장구벌레. 해蟹는 게, 과두科斗는 과두蝌蚪와 같으며 올챙이라는 뜻.
☞ 막오능약야莫吾能若也 : 능히 나와 같은 자가 없다, 나에게 미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뜻. ‘능히 나와 같다[능약오能若吾]’가 부정否定될 때 ‘먹능약오莫能若吾’의 어순으로 하지 않고 ‘막오능약莫吾能若’으로 오吾자의 자리가 부정사 바로 다음으로 이동하는 것은 오吾자가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 천일학지수擅一壑之水 : 구덩이 안의 물을 독점함. 천擅은 멋대로 함, 독점함이고, 일학지수一壑之水는 한 구렁 안의 물, 한 웅덩이, 한 골짜기 안의 물인데 여기서는 우물 안의 물을 말함.
☞ 과치跨跱 : 나 혼자만의 전유물로 한다는 뜻. 과跨는 올라탄다, 차지한다는 뜻이고 치跱는 우뚝 서다, 특출特出하다의 뜻.
☞ 차역지의此亦至矣 : 지至는 지극함, 최고.
東海之鱉 左足未入 而右膝已縶矣 於是逡巡而却 告之海 曰
夫千里之遠 不足以擧其大 千仞之高 不足以極其深
(동해지별 좌족을 미입하야서 이우슬이칩의어늘 어시에 준순이각하야 고지해하야 왈
부천리지원으로 부족이거기대며 천인지고로 부족이극기심이니)
동해의 자라는 〈그 말을 듣고 우물 속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왼발이 채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 무릎이 벌써 우물에 꽉 끼여버렸다네. 그래서 망설이다 뒤로 물러나서는 개구리에게 바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네.
‘대저 바다는 천리의 넓이를 가지고도 그 크기를 표현할 수 없고 천 길의 높이로도 그 깊이를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 우슬이칩右膝已縶 : 칩縶은 묶는다, 붙잡는다, 고삐, 굴레 등의 뜻을 가진 글자. 이칩已縶은 이미 꽉 끼여버려 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이 속박됨을 말한다.
☞ 준순이각逡巡而却 : 준순逡巡은 첩운疊韻(두 글자 이상으로 된 한자 낱말의 각 글자가 같은 운으로 됨)의 말로 망설이는 모양. 가기는 하나 나아가지 않는 모양.
☞ 부족이극기심不足以極其深 : 극極은 다할 극. 여기서는 완전히 다 표현해 낸다는 뜻.
禹之時十年 九潦而水弗爲加益 湯之時八年 七旱而崖不爲加損
夫不爲頃久推移 不以多少進退者 此亦東海之大樂也
於是埳井之鼃聞之 適適然驚 規規然自失也
(우지시에 십년에 구료로대 이수불위가익이며 탕지시에 팔년에 칠한이로대 이애불위가손하니
부불위경구하야 추이하며 불이다소로 진퇴자는 차역동해지대락야니라
어시에 함정지와문지하고 적적연경하야 규규연자실야하니라)
하夏의 우禹임금 때에는 10년 동안에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그래도 바닷물이 더 불어나지는 않았지. 또 은殷의 탕湯임금 때에는 8년 동안에 일곱 번이나 가뭄이 들었지만 그래도 바닷가의 수위水位가 더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네.
시간의 장단長短에 좌우되는 일도 없고 강우량降雨量의 다소多少로 물이 증감增減되지 않는 것, 이것이 또한 동해의 커다란 즐거움이라네.’
우물 안 개구리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고 너무 당황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네.”
☞ 애불위가손崖不爲加損 : 애崖는 바닷가, 해안海岸의 수위水位. 위爲는 ‘때문에’의 뜻이고, 가손加損은 더 손損함. 수위水位가 아래로 내려간다는 뜻이다.
☞ 불위경구추이不爲頃久推移 : 시간의 장단에 좌우되는 일이 없음. 경구頃久는 짧은 시간과 긴 시간. 아주 짧은 순간을 말하는 숙어로는 경각頃刻이란 말이 있다.
☞ 불이다소진퇴자不以多少進退者 : 진퇴進退는 물의 增減을 말한다.
☞ 적적연適適然 : 적적適適은 놀라 두려워하는 모양.
☞ 규규연자실야規規然自失也 : 너무 당황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적적適適과 규규規規는 모두 깜짝 놀라 얼이 빠진 모양. 자실自失은 제정신을 잃어버림, 넋이 나감이다.
且夫知不知是非之竟 而猶欲觀於莊子之言
是猶使蚊負山 商蚷馳河也 必不勝任矣
且夫知不知論極妙之言 而自適一時之利者 是非埳井之鼃與
(차부지부지시비지경이오 이유욕관어장자지언이면
시유사문으로 부산이며 상거로 치하야라 필불승임의리라
차부지부지논극묘지언이오 이자적일시지리자는 시는 비함정지와여아)
“게다가 〈그대가〉 시是와 비非를 구별할 만한 지력知力도 가지고 있지 못한 주제에 장자莊子의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는 마치 모기에게 산山을 짊어지게 한다거나 노래기에게 황화黃河를 건너게 하는 것과 같아서 감당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네.
게다가 또한 근원적이고根源的이고 영묘靈妙한 철학을 논할 만한 지혜도 없는 주제에 일시적인 이利로움에 자기만족自己滿足하는 자는 저 우물 안의 개구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 지부지시비지경知不知是非之竟 : 〈그대가〉 시是와 비非를 구별할 만한 지력知力도 가지고 있지 못함. 경竟은 경계境界.
☞ 유욕관어장자지언猶欲觀於莊子之言 : 관觀은 본다, 이해한다는 뜻.
☞ 상거商蚷 : 노래기. 벌레 이름이며 북연北燕에서는 마현馬蚿이라 한다.
☞ 지부지논극묘지언知不知論極妙之言 : 극묘極妙한 철학을 논할 만한 지혜가 없다는 뜻. 극極은 극원적인 것, 묘妙는 영묘靈妙함.
☞ 자적일시지리자自適一時之利者 : 일시적인 이로움에 자기만족하는 자.
☞ 비함정지와여非埳井之鼃與 : 우물 안 개구리와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뜻.
且彼方跐黃泉而登大皇 無南無北 奭然四解 淪於不測
無東無西 始於玄冥 反於大通
(차피방자황천이등태황이라 무남무북하며 석연사해하야 륜어불측이라
무동무서하며 시어현명하야 반어대통이어늘)
또한 저 장자莊子는 이제 땅속의 황천黃泉에까지 발을 들여놓고 하늘 끝 대황大皇에까지 오르려 하고 있네. 남쪽도 북쪽도 없이 거침없이 사방팔방으로 자기를 해방하여 짐작할 수도 없는 심원深遠한 경지에 침잠沈潛하고,
동쪽도 서쪽도 없이 유현幽玄한 명합冥合의 경지로부터 시작해서 자유무애自由無碍로 소통하는 대도大道로 돌아가는 사람이네.
☞ 피방자황천彼方跐黃泉 : 피彼는 여기서는 장자莊子를 가리킴. 방方은 바야흐로, 이제. 자跐, 답蹋, 도蹈, 리履는 모두 ‘밟는다’는 뜻.
☞ 등태황登大皇 : 태황大皇은 천공天空, 태공大空. 태황이 천공天空을 의미함은 ‘황皇’이 광光과 통하기 때문.
☞ 석연사해奭然四解 : 석연奭然은 석연釋然과 같으며 소산消散(흩어지고 사라지고 하여 없어짐)하는 모양이고, 사해四解는 사방으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음.
☞ 반어대통反於大通 : 반反은 돌아간다는 뜻이고 대통大通은 모든 것을 자유로이 막힘없이 소통시키는 큰 도道의 작용을 말한다.
子乃規規然而求之以察 索之以辯
是直用管闚天 用錐指地也 不亦小乎 子往矣
(자내규규연이구지이찰하며 색지이면하나니
시는 직용관규천이며 용추지지야니 불역소호아 자는 왕의어다)
그런데 자네는 정신없이 자질구레한 지혜 분별로 그를 찾으려 하고 쓸모없는 변론으로 그를 잡으려 하고 있네.
이것은 다만 가느다란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송곳을 땅에 꽂고 대지大地의 깊이를 측량하려는 짓이니 참으로 작은 소견이 아니겠는가. 자네는 어서 돌아가게.
☞ 규규연이구지이찰規規然而求之以察 : 규규연規規然은 놀라고 당황해서 정신없는 모양. 이찰以察의 찰察은 작은 지혜 분별의 분석을 말하며, 구지求之는 그를(장자莊子를) 찾으려 함이다.
☞ 직용관규천是直用管闚天 용추지지야用錐指地也 : 직直은 다만. 용관用管은 ‘대롱을 씀’, ‘대롱구멍을 통하여’의 뜻이고 규천闚天은 하늘을 엿봄이다. ‘관견管見(좁은 소견)’이라는 성어成語의 출전出典. 추錐는 송곳이고 지지指地는 땅을 가리킨다는 뜻이니 ‘용추지지用錐指地’, 줄여서 ‘추지錐指’는 일반적으로 “송곳으로 땅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통설이나, 여기서는 ‘지지指地’를 “땅의 얕고 깊음을 측량한다.”는 뜻으로 해석. 이곳의 문장 또한 ‘추지錐指’라는 성어成語의 출전出典.
且子獨不聞 夫壽陵餘子之 學行於邯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
今子不去 將忘子之故 失子之業
(차자독불문 부수능여자지 학행어한단여아
미득국능하야 우실기고행의오 직포복이귀이니라
금자불거하면 장망자지고하며 실자지업이라하야늘)
또 자네도 저 수릉壽陵의 젊은이가 〈조趙나라 서울〉 감탄邯鄲에 가서 대도시풍大都市風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겠지.
〈이 젊은이는〉 대도시풍 걸음걸이를 미처 배우기도 전에 또 그 옛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렸으므로 결국에 오직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
이제 그대도 얼른 여기를 떠나지 않으면 〈장자의 철학을 체득體得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대 자신의 지금까지의 지식도 잊어버리고 그대 자신의 학업學業마저도 잃어버리고 말 것일세.”
☞ 수능여자壽陵餘子 : 수능壽陵의 젊은이. 수능壽陵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하북성何北省 북부北部)의 도읍 이름. 여자餘子는 아직 성년成年이 되지 않은 젊은이.
☞ 학행어한단學行於邯鄲 : 행行은 보步의 뜻이니 걸음걸이. 한단邯鄲은 조趙나라(산서성山西省)의 서울로 당시 가장 번화하였던 대도시大都市. 이 故事에서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면 원래 자기가 지녔던 좋은 점까지도 잃게 된다는 뜻의 ‘한단지보邯鄲之步’, ‘한단학보邯鄲學步’란 성어成語가 생겨났다.
☞ 여與 : 또 자네도 홀로 ……을 듣지 아니하였는가. “또 자네도 ……을 들은 적이 있겠지.”의 뜻. 여與는 조자助字.
☞ 국능國能 : 한단邯鄲 국도國都 안에서 통용되는 걸음걸이.
☞ 고행故行 : 수릉壽陵에서 지낼 때의 옛 걸음걸이를 말함.
☞ 장망자지고실자지업將忘子之故失子之業 : 망자지고忘子之故의 자子는 ‘그대’, 고故는 지금까지의 그대 자신의 지식. 실자지업失子之業의 업業은 그대 자신의 지금까지의 학업學業. 공자公子 모牟(위모魏牟)가 안석에 기대어 한숨을 깊이 쉬고 하늘을 우러러 웃으면서 공손룡公孫龍에게 한 긴 말이 여기서 끝난다.
公孫龍 口呿而不合 舌擧而不下 乃逸而走
(공손룡이 구거이불합하며 설거이불하하야 내일이주하니라)
공손룡公孫龍은 열린 입이 닫혀지지도 않고 올라간 혀를 내려오게 하지도 못한 채 이윽고 뒤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