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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경전 명언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고, 부와 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인구 10만명당 24명으로 전년보다 4.9명이나 늘어나면서 지난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 조사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자살이 20∼30대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 경시풍조 등과 함께 경기 침체에 따른 생활고 등이 원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명심보감』에서 공자의 말로 보이는 이 구절은 본래 『논어』에서는 제자인 자하가 전해들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말은 피상적으로 보면 운명론 내지 숙명론적 내용으로 귀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실적 삶을 영위하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신의 의지나 계시로 돌린다면 상당한 부조리가 야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부조리가 현실적 삶에서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합리성을 추구하면서도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때로는 초월자에 대한 의지를 통하여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고자 구원을 바라기도 하며,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면 자포자기하거나 때로는 문제를 자신의 내면으로 승화시켜 경건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인간에게 이러한 종교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면, 종교를 단지 원시시대의 미신과 같은 것으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공자는 ‘천도’와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여 언급을 자제하였지만, 수제자 안연의 죽음에 임하여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라고 탄식하며 통곡하였고, 생명을 위협받는 긴박한 상황에 임해서는 언제나 ‘하늘’을 내세워 현실을 합리화 하였다. 중국의 대표적 유물론자인 후한의 왕충은 인생관에 있어서는 숙명론자였다. 그렇지만 왕충이 주어진 현실을 모두 운명으로 돌리고 자포자기하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 유행하던 참위설을 비롯한 미신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현실적 의지를 관철하고자 노력하였다. 공자의 이 말은 소중한 생명을 일부러 버리거나, 남을 해치면서까지 억지??살기를 도모하며, 부귀를 위해서는 예의염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안빈낙도(安貧樂道)는 단순히 소극적 처세술이 아닌 것이다.
# 출 전 :『논어』「안연」
군자는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으며, 소인은 뇌동하되 화합하지 못한다
사람들 가운데 소인(小人)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인의 성향을 갖고 있다. 유교의 통상적인 관념에 따르면, 소인은 이익 및 이권[利]을 좇는다. 자신에게 이로우면 옳다고 하고 지지하며,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으면 방임하거나 반대한다. 인간의 이런 성향을『논어』에서는 和而不同(화이부동)의 ‘同’으로 말하고 있다.『춘추좌전』소공 20년조에는 ‘同’과 ‘和’의 차이에 관하여, 임금이 좋다고 하면 무조건 좋다고 말하고, 임금이 좋지 않다고 하면 무조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同이고, 임금이 좋다고 하더라도 혹시 좋지 않은 면이 있을 때는 그것을 말하여 검토하거나 시정하게 하고, 임금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혹시 좋은 면이 있거든 그것을 말하여 그 좋지 않은 면을 제거하게 하는 것은 和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의 주견이나 나름의 공정한 기준에 의거하지 않고, 단지 상대방이 강자이기 때문에 아첨하거나 자신에게 이익을 줄 것이기 때문에 동조한다면, 필연적으로 편당을 짓게 되어 사회 전체의 구성원들 가운데 이 무리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결국 다양한 입장의 경합과 공존이 아닌 ‘패거리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不和(불화)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다 그러는데 나 혼자만 고집피울 필요 있을까’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수가 있다. 이 경우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기권의 입장을 제외하면,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의 길을 가게 된다. 하나는 ‘세상이 다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로 흐르는 경우다. 『중용』에서는 이것을 和而不流(화이불류)의 流로 말한다. 이렇게 자신의 기준을 포기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내면으로 강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중용』에서 강함[强]을 자세히 논한 뒤에 “그러므로 군자는 和而不流하나니, 强哉矯(강재교)여!”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라 하겠다. 다른 하나는 사회를 등지거나 사회를 부정하는 경우이다. ‘모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는 개의치 않는 인격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지식인의 피세(避世)나 사회 부정의 태도에는 반대한다. 설사 세상이 아무리 엉망으로 돌아가더라도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和의 정신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 출전 : 『논어』「자로」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하여 인(仁)을 도움 받는다
“친구가 일가친척보다 낫다”는 우리 속담이 있고, “친구가 다정하면 천리 길도 멀지 않다”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자면 자연히 친구가 생기게 되고 친구끼리 서로 정을 주고받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간다. 진실로 서로 위해 주는 친구가 있다면 천리 길이 아니라 멀고 먼 인생의 여정도 어렵지 않게 지나가게 된다. 마음을 주고받는 진실된 친구야말로 참으로 보배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친구를 심우(心友), 즉 마음으로 사귀는 친구라 한다. 또는 주역에서는 금란지계(金蘭之契)라고 하여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금(金)을 끊고,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굳건함이 금을 끊을 수 있으며, 두 사람의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다운 말은 향기로운 난초와 같다는 비유이다. 그러나 친구란 사귀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 누구나 경험하는 바이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허락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친구와 술은 묵을수록 좋다”거나,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고 했다. 조선시대 도의지교(道義之交: 도의로 친구를 사귐)의 대표적인 경우는 율곡(栗谷: 李珥의 호)과 우계(牛溪: 成渾의 호), 그리고 백사(白沙: 李恒福의 호)와 한음(漢陰: 李德馨의 호)이라 할 수 있다. 율곡과 우계는 학문으로 맺어진 친구로, 두 분 사이에 오고간 토론은 우리나라 성리학(性理學)의 발달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백사와 한음은 학문도 학문이지만 정치적으로 그 우의(友誼)가 크게 빛나고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우리 역사상 미증유의 국난(國難)에 임해서 두 분의 우정 어린 협력이야말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더할 수 없는 공헌을 했다. 가까울수록, 오래 사귈수록 공경하는 그 마음가짐과 몸가짐이야 말로 좋은 친구와 평생 우정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리고 친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충고를 해서 바로잡아 줘야 하는 것이 도리지만, 두 세 번 충고해도 듣지 않으면 끊어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부모형제의 잘못은 끝까지 막아야 할 의무가 자기에게 있지만, 친구는 그렇지 않아 듣지 않으면 끊어 버려야 한다. 부모형제는 피로써 맺어져 있기 때문에 무한책임(無限責任)이 자기에게 있지만, 친구는 의리(義理)로 맺어진 사이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유한책임(有限責任)이다. 그래서 충고도 적당히 해야 한다. 낱낱이 들추어서 간여할 처지도 아니다. 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금 섬김에 있어 자주 간(諫)하면 욕을 당하게 되고, 벗을 사귐에 있어 자주 충고(忠告)하면 소원해 진다”
[輔(보) : 돕다] # 출전 :『논어』「안연」
군자는 사람을 기르기 위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전국시대 약소국인 등나라는 강대국인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등나라 군주인 문공(文公)에게는 고민이 많다. 주변의 큰 나라를 섬겨도 전란을 피할 길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마침 맹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맹자는 옛날 주(周)나라 초창기 태왕(太王)이 이민족의 압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나라를 이민족에게 주고 떠났던 예를 들면서 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나라의 영토인 토지라는 것은 그 목적이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인데 그 토지 때문에 전쟁을 해서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태왕의 이러한 행동에 감복한 백성들이 왕을 따라 함께 기(岐) 땅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가 등나라 ??貶“?이야기해 준 대처방법이 지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허탈한 무대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적이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강대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침략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전혀 근거 없는 대책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차라리 나라를 과감하게 강대국에 넘겨주고 자기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처럼 강대국에게 나라를 넘겨 버린다는 것은 현대의 국가 개념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내용이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정치 혹은 국가 통치에서 우선시되어야할 점인가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국민의 안전과 복리가 최우선 목적인데도 오히려 그 수단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여 그 때문에 역으로 원래의 목적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맹자의 언급은 냉정하면서도 진솔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 출전 : 『맹자』, 「양혜왕」
문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한다
자로가 공자를 수행하여 위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위나라 정치를 담당한다면 무엇부터 하시겠는가 물었다. 공자는 名(명분, 명칭)부터 바로잡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자로가 한숨을 쉬면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이에 공자는 자로를 질책하면서, “명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문화)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문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한다”는 말은 오늘의 우리나라 법제도와 문화에 비추어 볼 때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형벌 시행과 그것의 근거가 되는 법보다는 인간의 자발성과 그 근거가 되는 문화의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법 전문가라 하더라도 객관적 법률에만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심지어 사람의 생명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률적 판단에도 법 전문가의 문화의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 법 전문가의 양성과정과 제도를 본다면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사실 해방 후 도입된 서구 중심의 법제도는 우리의 문화와 괴리감이 없을 수 없었다. 현재 활동중인 대통령산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는 로스쿨 및 국민사법참여제 도입, 고법상고부 설치, 법조일원화, 법조윤리 제고방안 등에 관련된 개혁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지난 50년간 유지되어온 사법제도를 근간부터 바꾸는 것들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법제도와 문화가 열악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관예우’니 ‘고시낭인’ 등의 용어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대다수 국민들이 사법부와 법제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유쾌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정치지도자들이 즐겨 쓰는 ’법과 원칙‘이라는 말 자체 또한 국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객관적인 법이 사람보다 우선할 수 없다. 유교에서도 형벌과 그 근거가 되는 법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다만 법지상주의에 대해서 경계할 뿐이다.
[興(흥) : 일어나다. 錯(조) : 두다.] # 출전 : 『논어』「자로」
여러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며, 여러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사람들은 군중 심리에 휩쓸릴 때가 있다. 어느 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나쁜 사람인 줄 알고, 또 “좋은 사람이야!” 말하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만다. 좋고 나쁨에 대한 아무런 기준도 없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仁)을 이룩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 나의 입장에서 남을 싫어하거나 좋아할 것이 아니라, 이치상으로 따져볼 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좋은 것은 우리가 좋아하고 나쁜 것은 싫어해서 좋은 것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 남을 좋아하고 미워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사랑을 기준으로 올바로 좋아하고 미워하여야 한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미워하더라도 내가 반드시 살펴보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 착하지 못한 것 같지만 뜻은 취할만한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로 공자는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남을 좋아하거나 미워할 수 있다.”(『논어』「이인」 3장)고 하였다. 보통사람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경우에는 우리가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나의 개인 감정에 가려진 것이 있을 수도 있다. 자공이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묻자, 공자는 “안 된다.” 하고, 이어서 “고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라고 묻자, 공자는 “안 된다. 고을 사람 중에 선한 자가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자가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논어』「자로」 24장)고 하였다. 어디까지나 기준은 仁이다. 때로는 타자편에 서보면서 좋고 나쁨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코드가 같다든가, 또는 학연, 지연 그리고 혈연을 사람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이 크게 참고해야 할 말씀이다.
[惡(오) : 미워하다.] # 출전 : 『논어』「위령공」 27장
나라의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다투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중국 고대 전국시대에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치국의 방법을 두고 주고 받은 대화가 맹자 첫머리에 나와 있다. 아마 편저자가 맹자 전편의 사상을 대변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처음에 실은 것 같은데, 오늘날 독자도 읽어보면 수긍이 간다. 당시는 전국시대여서 부국강병이 제후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러므로 양혜왕도 기금을 만들고 예를 갖추어 천하의 현자들을 초빙하였다. 좋은 방책을 자문 받기 위해??눼? 맹자는 당시 세상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양 혜왕은 처음이라 잘 몰랐으므로 한가닥 희망을 갖고 만나러 갔다. 왕은 당시 제후임에도 천자가 칭하는 왕이라는 칭호를 참칭하고 있었다. 그의 욕심이 여기에 이미 드러나 있는데, 실은 양 혜왕 뿐이 아니었다. 왕은 물론 부국강병의 정책을 물었다. 이에 대해 맹자는 나라는 도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왕이 이익을 좋아한다면 그 아래 사람들도 다 그러하고, 나중에는 일반 백성들도 부를 탐낸다고 하였다. 나아가 맹자는 그렇게 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재물을 다투다 하극상이 일어나고 결국 나라가 망한다고 경고하였다. 천자의 부의 10분의 1이 제후(또는 대부)이며, 제후의 부의 10분의 1이 가신인데, 서로 부를 다투면 대부가 천자를, 가신이 제후를 죽인다고 하였다. 상하가 이익을 다툰다? 봉건 왕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가 왕조라고 하면 중국왕조나 조선왕조를 연상하기 때문에 그러한데, 당시 전국시대에는 그러했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는 이익 다툼이 전국시대와 비교해 어떠할까? 자본주의 생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자본가와 노동자가 첨예하게 이익을 두고 대립하는 사회로 알고 있다. 그 의사 표시 방법이나 이익 쟁취 방식은 그야말로 정치적이고, 폭력적이다. 노사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단체의 이기주의적 다툼도 마찬가지다. 맹자의 이익은 오늘날 불로소득에 가깝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부동산 투기와 탈세로 하나씩 추락하는 것을 본다. 사회지도층만 그럴까? 서민이 불노소득을 얻으면 노동의욕을 잃는다. 곧 전국민으로 퍼져간다. 이것이 현대판 상하교정리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나 자본주의는 건전한 부의 축적이 죄가 아니다. 정부가 통치철학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입법활동을 통하여 국민이 건전한 자본주의적 생산활동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오늘날의 민본정치다. IMF나 부동산 투기가 결국 선량한 국민에게 부담이 가는 것을 우리가 보아왔지 않은가. 경제적 부담 뿐이 아니라 윤리의식도 파괴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交(교) : 서로. 征(정) : 가져간다.] # 출전 : 『맹자』「양혜왕 상」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지어내는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적다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남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그것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며, 얼굴빛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말과 얼굴빛의 이런 기본적인 기능을 무시하고, 말을 화려하게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지어내??남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을 과장되게 하다보면 거짓을 말하게 되며, 얼굴빛을 남에게 좋게 보이려고 노력하면 결국은 아첨하게 된다. 이처럼 거짓과 아첨을 일삼는 사람은 어진 사람일 수 없다. 그렇다면 말을 완곡하게 하고 표정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모두 거짓과 아첨이 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억지로 꾸미고 지어낸 것인가 하는 것이다. 평소에 인격을 수양하여, 노력하지 않고도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라면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즉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말을 완곡하게 하고 표정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라면 교언영색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인격수양이지, 말과 얼굴빛을 듣기 좋고 보기 좋게 꾸미고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공자의 이 말은 매우 짤막하지만, 조선시대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으니, 대인관계, 군신관계, 언론정책 등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교언영색 하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직언정색(直言正色), 즉 말을 곧게 하고 얼굴빛을 엄정하게 하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친구에게는 언제나 충고를 해야 하고, 임금에게는 직간(直諫)을 해야 하고, 여론 형성에서는 말을 에두르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야 하였다. 또 상대가 잘못을 할 때는 언제나 정색을 하고 바른 말을 해야 했다. 이 한마디 말은 조선조가 500여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고, 동시에 유교를 대표하는 신념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 우리는 화술을 배우고, 표정을 관리하면서 상대에게 호감을 사는 법을 연구하지만, 자신의 인격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겉치레에 빠져들기 쉬운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巧(교) : 교묘하다, 기교. 令(영) : 좋다, 명령. 鮮(선) : 드물다, 곱다.] # 출전 :『논어』「학이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 의심이 날 리 없다. 터득하고 이해가 되어 있으니 판단도 올바르게 선다. 무슨 일이고 맞닥뜨리는 대로 척척 해결해 나간다. 어진 사람은 근심 걱정이 없다. 태어난 성품 그대로 이 세상을 살면서 도덕 규범을 지키고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데 근심이며 걱정이 끼어 들 리 없다. 언제나 떳떳한 삶을 당당하게 살아간다.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박력과 패기로 세상의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용기는 육체적인 용맹, 혈기에서 나오는 뚝심이나 배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마음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정정당당함이고 의???바탕으로 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혜도 있어야 하고 선한 면도 있어야 하고, 그것이 뒷받침이 돼서 용기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선하지 못하면서 지혜만 있다면 한갓 권모술수(權謀術數)나 덕이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고, 선하지 못하면서 용기만 휘두른다면 한낱 저돌적인 사람으로만 남의 눈에 비치게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바탕에는 어진 기품이 깔려 있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지혜가 있다는 것은 기계문명의 발달에 의존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흔히 ‘머리가 잘 도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이야말로 기계와 더불어 현대를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의 소지자인 것이다.
[惑(혹) : 의심되다, 미혹하다. 憂(우) : 걱정하다. 懼(구) : 두려워하다.] # 출전 :『논어』「자한」
선비가 도리에 뜻을 두고서도 나쁜 옷이나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어 의논할 사람이 못된다
공자는 어떤 일이든 큰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외부적인 조건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야 된다고 말한다. 만약 큰 도리에 뜻을 두고 있다는 선비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누추하다거나 먹는 음식이 좋지 못하다고 부끄러워한다면 이것은 진정 큰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이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사람과 함께 삶의 도리에 대해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에게 가장 크게 생각되는 혹은 가장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나머지 다른 문제는 사소한 것이 된다. 학창 시절을 보내는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는 큰 목표 앞에 자신의 얼굴 등의 외모나 옷차림 그리고 남보다 얼마나 좋은 음식을 먹고 있느냐 하는 외부적인 조건은 모두 사소한 것일 수 있다는 가르침이라 할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이처럼 자신이 큰 뜻을 품었다고 해서 주변의 모든 조건을 무시해버리고 지내?璲?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일의 성격에 따라서는 자신을 외부에 알리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경우도 있고 외형적인 품위 유지가 생존에 필요한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이 하는 일의 성패여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얼마나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얼마나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가에 달려있다. 실상 외형이 그럴 듯하게 보인다면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눈을 줄 수 있겠지만 자세하게 접근해보았을 때 깊이가 없고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상대는 금방 나에 대해 별 볼일 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외부적인 조건이란 그야말로 조건의 하나일 뿐 결정적인 요소일 수는 없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도리에 대해 좀더 마음을 쓰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 할 것이다.
[恥(치) : 부끄럽다. 與(여) : 하께, 더불어. 議(의) : 의론하다.] #출전 :『논어』「이인」
의롭지 못한 부귀는 내게 있어서 뜬구름 같도다
이 구절은 공자가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스스로 말씀하신 것으로, 거친 보리밥에 물을 마시고 베개마저도 없어서 자신의 팔을 베고 누었는데도 여전히 즐겁다는 것에 이어 나온 말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이런 가난한 삶을 즐기는 것인가?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즐길 만한 것이 못된다. 공?湄?사람일진댄, 결코 그런 삶을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도 가난 속에도 즐거움은 있다고 하였지, 가난이 즐겁다고는 하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난은 우리의 삶을 불편하고 힘들게 하며, 부귀는 편리하고 윤택하게 한다. 그래서 누구나 가난은 싫어하고 부귀는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부귀가 주는 편리함과 윤택함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가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서 이런 것을 본다. 상업적인 예술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마다하고 순수예술을 추구한다. 이들은 가난이 주는 고단함 속에서도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꿈꾼다.
공자도 이런 예술가들처럼 가난 속에서도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공자는 정의롭지 못한 부귀를 뜬구름 같이 여긴다고 하였으니, 의로운 부귀는 뜬구름이 아닐 것이다. 뜬구름인가 아닌가의 기준은 정의이다. 정의는 가난 속에도 있고, 부귀 속에도 있다. 그렇다. 공자는 이것을 즐긴 것이다. 바로 안빈낙도(安貧樂道)다.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도(道)를 즐긴다. 예술은 대상이 있어 즐길 것이 있지만, 도(道)는 그런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닌데 무엇을 즐길까? 이는 가난하더라도 항상 옳은 일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부귀를 얻기 위해 남을 속이거나 억울하게 하는 짓은 불안하고 불편해서 차마할 수 없다. 뜬구름을 잡기위해 나의 신조를 버릴 수 없다. 가난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정의를 버릴 수 없다. 의롭지 못한 부귀는 너무 불안하고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다. 차라리 마음 편한 것이 낫다. 그렇다고 가난한 공자와 예술가를 무능하다고 욕하지 마라. 본래 가는 길이 다른 것을......
[且(차) : 또. 浮(부) : 뜬 구름.] # 출전 :『논어』「술이」
오직 술만은 양을 제한함이 없었으되 언행이 어지러운 데에는 이르지 아니하셨다
공자는 어떤 음식도 다 양을 정해놓고 그 정량을 넘지 아니하였으나, 오직 술만은 예외였으니 참으로 애주가였던 듯하다. 그러나 언행(言行)이 어지러운 데에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그 절제함이 또한 자연스러운 경지에 이르렀던 듯하다. 한문에 비교적 익숙한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이 마지막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마음껏먹지 않으면 난동을 부린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술은 예로부터 그에 대한 찬반이 극명하였다. 술은 대체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통시켜 함께 어울리게 하는 기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문호인 도연명(陶淵明)이 술을 망우물(忘憂物)이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시적으로 근심을 잊게 해주기도 한다. 또한 이백(李白)을 주선(酒仙)이라 하였으니 술은 문학 창작의 원동력이 됨도 알겠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술의 순기능적 역할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성왕(聖王)으로 꼽히는 우(禹) 임금은 의적(儀狄)이 만든 술을 먹어보고, "후세에 반드시 이 술로써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하고서 드디어 의적을 멀리하고 맛있는 술을 끊었으며, 끝내는 "선한 말을 좋아하고 맛있는 술을 미워하는 데(好善言而惡旨酒)"에 이르렀다. 그리고 퇴계(退溪)는 〈주계(酒戒)〉에서 "아아, 술이여 / 사람에게 재앙을 끼치는 게 혹심하네 / 장을 썩게 하여 병을 일으키며 / 본성을 혼미하게 하여 덕을 잃게 하네.(嗟哉麴糱, 禍人之酷. 腐腸生疾, 迷性失德.)"하여 술을 엄히 경계하였다. 이상은 술의 역기능적 측면을 간파하고 삼간 것이라 하겠다. 어쨌든, 술을 마시되 언행이 어지러운 데 이르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요즘처럼 새롭게 출발과 만남이 어우러지는 신학기는 술을 마실 기회가 많다. 술로 인한 탈이 나지 않도록 즐기되 지나침이 없는 절제의 미덕을 지니는 것도 새로운 출발점에서 되새겨볼 점이다.
[量(양) : 분량, 헤아리다. 及(급) : 이르다.亂(난) : 어지럽다.] # 출전 : 『논어』「향당」
군자는 나를 탓하고, 소인은 남을 탓한다
인생의 우등생으로서 군자는 항상 먼저 나를 돌이켜 보는 자세를 견지한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졸장부나 소인배는 남에게서 문제를 발견하려 애를 쓴다. 때로는 잘 한 일은 자기 탓이고 못한 일은 조상 탓으로 돌리는 일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태도는 이 세상의 주체로서 나를 저버리는 것이다. 공자가 살던 때야말로 난세였다. 그는 난세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돌리는 풍토를 아쉬웠했기에 ‘내 탓’을 말했던 것이다. “구저기(求諸己)”는 “구지어기(求之於己)”로서 “之”는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우리 앞에 닥친 중대한 현안이자 문제점들이다. 곧 좋은 사회로 가는 데 있어 장애물이다. 이른바 “도”가 실현되지 않는 문제점을 나 자신으로부터 찾아 세상을 즐겁게 하려는 노력을 다하는 것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나 자신을 위한 어떤 문제의 근원도 나에게 있고, 내 앞의 여러 일도 역시 우선 내가 있으므로 존재한다는 책임의식은 한국의 오늘에 새삼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공자가 “내 탓이오” 말할 것을 우리에게 요청하였다면, 같은 흐름에서 맹자는 “반구저기(反求諸己)”를 말하여 “나를 반성하여 문제를 찾으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달리 생각해 보건대, 군자는 인류가 할 여정에 능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자기 자신을 꾸짖어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소인은 이 세상에 어떤 비전의 제시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달리 자기의 이름을 이룩하는데, 정신없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남만 책망한다. 군자와 소인은 반비례하여 존재한다. 군자가 많아져서 교양인으로서 온 세상 사람들이 즐겁게 오순도순 사는 때가 온다면 그것이 공자가 바라는 세상이고 우리가 희망하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諸(저): ‘에서’라는 뜻으로 지어(之於)가 축약된 말이다] # 출전 : 『논어』
남이 한번으로 잘하면 나는 백 번을, 남이 열 번으로 잘하면 나는 천 번이라도 도전한다
최근(3.10)에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2006년 세계주니어 피겨스케이팅선수권 대회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김연아가 그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은 그이가 딴 메달의 색깔이나 일본 선수(아사다 마오)를 이긴 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덩달아서 우리도 결과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한 분야에서든지 잘 하게 되는 것 또는 최고가 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김연아는 7살 때부터 스케이팅을 시작했고 지금 하루에 8시간 연습하여 새벽 1시에 일정을 끝낸다.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고 더 나은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 트리플 악셀(Triple axel, 세 바퀴 반 공중 회전) 등을 익혀야 한다. 이제까지의 길도 쉽지 않아 그만두고자 했을 것이고 앞으로는 내려갈 수 없는 위치 때문에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피겨스??鉗첩맛?아니라 야구의 멋진 수비, 농구의 신들린 듯한 슛, 축구의 환상적인 돌파를 보면 흥분한다. 차분하게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자신의 현 상황을 더 낫게 만들려고 할 때 무엇에 의존해야 할까?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 공동체의 공정한 기회 제공 등이 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이것이 잘 갖추어질 때보다 그렇지 않는 때가 더 많다. 어디에 기댈까? 이 때만큼 범죄의 유혹을 강하게 느껴질 때도 없을 것이다. 또 나약한 인간으로서 절대자에게 기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먹여주는 상태에 놓일 수 없다. 밥이라면 내가 씹어서 넘겨야 한다. 우리는 헌신적인 노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는 좋은 선천적 후천적 조건에 있어서 한 번 만에 성공을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다른 조건이지만 같은 사람이기에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할 수 있으려면 희망에 기대기만 하고 절망에 울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깨진 무릎을 일으켜 세워서 다시 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때 100과 1000은 기계적으로 횟수를 채우는 숫자가 아니라 앞서 실패한 것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되는 영구적인 자기 교정의 횟수를 말하는 것이다.
[人(인): 남(친구, 경쟁자), 能(능): 잘하다(can), 百(백): 백 번을 되풀이하다(repeat)] # 출전 : 「중용」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나의 지식을 이룬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원래 문구는 “치지는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의 교육지침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기본인 수신(修身)과 그 아래 조건으로 제시된 성의∙정심의 가장 기초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성실히 하려는 자는 반드시 격물치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뜻(마음)을 성실히 하면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되면 수신이 된다는 것이다. 주자는 성리학을 정립하면서 이 『대학』을 특별히 중시했는데, 그것은 당시 전통사상인 유교와 대항 관계에 있던 불교∙도교 및 노장사상을 극복할 방법이 이 『대학』 속에 있고, 그 핵심이 바로 이 격물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유교의 경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바로 종교적 행위에 가깝기 때문에 군주나 신하들 모두 수신이 중요한 행위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격물치지가 왜 수신의 조건이 될까? 공자가 일찍이 ‘배우는 일’을 중시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뿐만 아니라 공자 사상 하면 우리는 ‘사랑[仁]’을 떠올린다. 그런데 공자는 학문의 정신에 입?▤臼?인을 말하면서 반드시 ‘지식’[知]을 말하였다. 즉 지-인 병행을 강조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자기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당시 사람들에게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 공자는 인을 말하면서 여느 종교의 사랑과는 조금 다르게 말하였는데, 그 증거가 관중이라는 인물의 평에 잘 나타나 있다. 무조건 사랑이나 조그만 의리 보다 천하나 백성을 위해서 큰 의리를 취하려는 남성다운 지혜와 용기도 인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주자 성리학에서도 이 정신을 계승, 발전시켰는데, 그것이 이 격물치지다. 주자학은 초목과 짐승의 이름까지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오늘날로 말하면 과학적 지식까지도 포괄했다. 그러나 유교가 도덕학이었으므로 윤리적 가치판단과 역사적 평가, 또는 오늘날의 법률적 판결과 같은 인간사에 국한되었다. 이것이 동아시아가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중요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오늘날 우수한 인재들이 고시를 통하여 정치와 법률적 판단을 내리지만, 해방 60년에 수신-치국이 여전히 부족하다. 어려운 법률용어가 민본정치를 막고 있다. 우리는 격물치지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格(격) : 탐구하다. 致(치) : 이루다.] # 출전 : 『대학』
사람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이 구절은 공자가 어떤 사람의 행위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방법을 언급하면서 한 말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하는 행동을 살펴보고,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 지를 잘 살펴보며, 그 사람이 그 행동에 대해 마음 편하게 여기는 지를 잘 관찰한다면 사람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공자는 우선 어떤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는 지 살펴보아야 하며, 다음으로 그 사람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행동을 바라보는 것보다 이유를 살피는 것은 좀 더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혹 외견상 나타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람을 파악하고자 할 때 관찰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공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편안하게 여기는 지를 살펴야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한 행동과 그 행동의 동기가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행동에 대해 스스로 즐거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처럼 세 단계를 거쳐 한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게 된다면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감추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공자의 판단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접하게 되고 그 때마다 그 사람에 대해 나름대로 어떤 판단을 내리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정확하게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 해도 가끔 우리는 사람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공자가 이야기하는 세 번째 항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이 구절은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해 평가를 내릴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자기 스스로 어떤 일에 대해 정말 즐거워하고 있는지를 본다면 그 일을 행하는 자신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알려준다. 이 때문에 이 글은 항상 자신의 일에 대해 적극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는 자세를 강조하는 말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焉(언): 어찌. 廋(수): 감추다. 哉(재): 문미의 어기사] # 출전 : 『논어』「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