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예수님은 부활이시요(에바다)
요한복음 11장:25-2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가르켜서 “나는 부활이다, 나는 생명이다”라고 하신다.
그리고 14장6절에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부활의 생명인 것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것을 우리는 믿고 그 말씀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활동시기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유대인들중에는 사두개인과 바리세인들이 있었다. 바리세파를 보면 교리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활을 주신다는 것을 믿었다. 사두개파들은 부활과 심판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파에서는 제사장들이 많이 세워졌다.
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말씀의 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여야 하는데 사두개파 제사장들은 스스로 제사장 자리에 섰거나 자기들만의 규칙안에서 제사장 직을 수행하여 왔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을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고 화려함이나 웅장함의 예배를 추구하면서 그리 할때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하면서 다원주의 길로 걸어갔다. 이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예수님 활동시기에도 이러했다면 지금 이 마지막 시대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고 그 재림을 앞둔 우리 교회들은 예수님 안에서의 믿음을 정검해보아야 한다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마지막 날에는 부활과 심판이 있다 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만 믿고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우리 안에 부활의 생명이 역동하고 있는지를 잘 면밀히 보아야 한다.
성경에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첫째로, 누가복음 8장40절 이하의 내용, 야이로의 회당장 딸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
둘째로,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의 시체를 예수님이 다시 살리는 사건.
셋째로,요한복음의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볼수가 있다.
예수님은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다 말씀하시면서 나를 믿는 자도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부활의 진리를 설명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거듭 말씀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은 인류 구속의 대역사로 이루어 지게 된다
첫째, 우리는 교리적으로 또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한다
둘째,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우리는 부활의 증인들이 될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은 신앙인의 생명이다.
나는 부활이요 (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부활을 받는다. 악인들은 심판의 부활을 받게 된다.
우리는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죽은후에 부활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말씀을 믿고 이 땅에서도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 생명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사건으로만 끝났다면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부활이라는 소명을 가질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설명할 때 부활의 승리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첫째, 마귀에게 이기는 것.
이 세상은 영적 전쟁터이다. 마귀와 그리스도와의 싸움터 이다
둘째, 부활사건은 사망으로부터 이긴 것이다.
믿는 자에게 사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 안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은 살아서 하나님가 함께 천국의 낙원에 거하게 되고 나중에 영광스르운 부활을 받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셋째, 부활의 승리는 죄에 대한 승리이다.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긴다. 육신으로는 이 마귀를 이길수가 없다.
무엇으로 마귀와 싸워 승리할수 있는가,
먼저 내 속에서 일어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악한 마음,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남을 짓밟고 이기려는 악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기속에 있는 것 악한 것들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말씀속에 진리가 있다.
말씀을 모르면 무엇에 속고 있는지를 모르고 실체가 없는 신앙인이 되어 살아가게 된다
진리를 사모하는 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사망으로부터 이겨야 한다. 절망은 사망을 낳는다. 우리는 사망으로부터 이겨내야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진리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가야 한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죄’ 로 부터의 승리이다
아담이 죄를 짓기전에는 죽음이 없었다. 아담의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스스로 선악과를 먹어도 판단하고 그 죄를 정당화 하였음으로 죄가 생겼고 죽음이 따랐다.
죄를 이길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뿐이다.
고린도전서 15장20절-21절 말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부터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성경에서 부활의 첫 열매를 ‘예수 그리스도’ 이시라고 말씀한다
첫 열매가 있으면 둘째 열매, 셋째 열매도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3절-24절에 그 설명이 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때라”
우리는 말씀대로 행하고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감으로써 복음의 첫 열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
요한복음 1장1절-3절, 14절
1.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의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일서 1장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성경말씀 로고스에는 세가지 뜻이 있다.
첫째, 우주와 자연 만물의 이치, 우주만물이 그냥 돌아가는 것이 나니라 누군가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께 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는다.
요한복음을 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로고스 이며 우주의 근본 이치 이라고 밝힌다
그분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우리에게 이 우주의 이치를 가르쳐 주셨다.
요한복음1장을 시작할때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고 시작한다.
14절에서는“ 이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는데 오신 그분이 예수님이다” 기록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람, 인간으로만 보지 않는다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으로 입고 오셨기 때문이다.
15장7절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 안에 거하여 야 한다. 그 안에 있으면서 구하여야 응답이 이루어진다. 내가 주님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며 함께 사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영, 성령과 함께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
창세기15장5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끌고 나가셔서 하늘을 보여주시면서 저 하늘의 별을 네가 셀수 있느냐,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으리라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창세기12장부터는 아브람을 부르시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 가나안 땅으로 가라 명하신다
평생을 일궈놓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면 축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13장에도 아브라함에게 땅 사면을 다 보라 네 자손이 저 티끌과 같이 번성한다고 말씀을 주신다. 가장 작고 힘었던 아브라함에 족속에게 이토록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노라 위대한 약속을 주신다.
그런데 약속과 달리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야 약속의 후손 이삭을 받게 된다
그런데 22장에 보면 100세에 받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올라가 제사로 드려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신묘망측하다
약속은 하늘의 별처럼, 사면의 땅의 티끌처럼 많은 자손을 줘서 큰 민족을 이루리라 하셨는데 겨우겨우 100세에 아들 이삭을 주시고는 그 아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어린 이삭을 내게 바쳐라고 걷어가시는 것은 도대체 설명이 되는가?
이 약속을 26장에 이삭에게도 같은 내용의 약속을 하신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다. 우리는 이 본문을 영적인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이삭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형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약속의 자손이 생기지 않자 아브람의 아내 사라가 자기 몸종 하갈을 들여보내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 두형제는 서로를 괴롭히는 원수가 되어 불행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크고 원대한 약속은 이루어졌는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야곱도, 그 자손 요셉도 죽고 야곱과 그 자손들이 애굽 고센땅에 정착하면서 결국 이방나라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번성해져서 그 땅에 가득하였다고 기록한다
출애굽기에 보면 히브리인들 아기들을 다 찾아서 죽이라는 애굽왕의 명령도 있었다
그만큼 애굽족속보다 이스라엘 족속이 더 빨리 많이 번성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의 큰 번성은 애북땅에서 이루어졌다고 볼수가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들이 생각하기에 더디게 온다
그 약속을 우리는 인내하고 기다려야 만 한다
신약성경의 첫 구절이 마태복음 1장1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한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
구약성경의 첫 시작은 창세기1장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