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빌라델비아 교회(계 3:7-13)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가운데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힘없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큰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주님의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작은 능력”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고난 속에서 충성한 교회”였다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으로 끝까지 견딘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던 불안정한 도시였습니다. 주후 17년 대지진이 있었는데, 그 이후, 시민들은 건물들이 무너질까봐 늘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아예 도시를 떠나, 들판에서 천막을 치고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성도들에게, 주님은 “너희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 살지만, 나는 너희를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성전의 기둥으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끝까지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여기서 “진실”이라는 말은 단순히 “거짓이 아니다”라는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 “참되고 신실한 그 자체”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과 진실”이라는 말은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을 가리킬 때 사용되던 말인데, 이 “거룩과 진실”이라는 말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거룩하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알든 모르든, 드러난 죄이건, 감추어진 죄이건간에, 우리 모두에게는 죄와 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가 전혀 없으십니다.
로마에서 파송된 본디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죄를 찾지 못하고,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다”(눅 23:4)고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대제사장마저 예수님을 죽이고자 죄를 찾았으나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에게서, 어떻게 죄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훗날, 사도 요한은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계 19:11)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은 거짓이 전혀 없는 진실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진실하신 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죄 가운데에서 탄식하다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주님에게 죄가 있다면, 주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시기에, 흠이나 점도 하나 없이 완전무결하시기에, 거룩하시고 진실하시기에, 우리의 더러운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영원히 덮어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자기를 가리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22:22절을 보면,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부터 등장하고 있는 이 “다윗의 열쇠”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다윗의 열쇠”는 왕궁 살림을 총괄하는 청지기에게 주어진 권세의 상징이었습니다.
다윗 왕가의 창고와 문을 열고 닫는 절대적이고 막강한 권한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는 내탕고를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입니다.
왕이 아무리 재물에 욕심이 많다고 해도, 직접 내탕고 문을 열고 닫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내탕고 열쇠를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왕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지 않겠습니까?
어디 궁궐뿐이겠습니까? 일반 가정집에서도, “곡간 열쇠”가 중요한 힘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곡간 열쇠를 언제 넘겨줍니까? 완전하게 믿을 수 있을 때이거나, 시어머니에게 힘이 없어졌을 때, 곡간 열쇠를 넘겨주게 됩니다. 죄우지간, 곡간 열쇠를 넘겨준다는 것은 단순히 집안 창고 문을 여는 열쇠를 물려주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은 집안의 가장 큰 권력이자, 안살림의 주도권을 공식적으로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곡간 열쇠는 절대적이고 막강한 권력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청지기로서, 구원의 문을 열고 닫는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셨다고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주님께서 은혜의 문을 여닫으시는 권세를 홀로 가지셨습니다. 아무도, 그 권세를 빼앗거나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문을 닫을 수 없고, 주님께서 닫아 놓으신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주권을 상징하며, 성도의 구원과 인도하심이 사람의 손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유대인 회당에서 쫓겨나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처지에 있었기에,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바로 주님”이라는 선언은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닫아버린 문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여신 문은 아무도 닫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열린 문”이라는 말은 “문이 이미 열려 있고, 계속 열려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한 번 열렸다가 닫힐 수 있는 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문을 여신 후에, 영원히 열려 있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지리적으로, 빌라델비아는 서쪽 지중해에서 동쪽 내륙 고원지대로 뻗어나가는 길에 자리잡고 있어서, 서쪽에 위치한 그리스의 헬라 문화와 언어를 내륙 고원지대로 전파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 빌라델비아를 통해 상인들과 나그네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동쪽으로 나아갔습니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에 가게 되면, 거대한 한옥 기와 지붕 형태의 톨케이트를 통과해야 하고, 그리고, 시내로 향하게 되면, ‘호남제일문’이라고 쓰여진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호남제일문’이란 호남의 첫 번째 관문이라는 뜻입니다. 전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 두 건축물을 연달아 지나치게 되기 때문에, 이 문들을 보며, ‘아, 드디어 전주에 도착했구나!’ 하는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문들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닫혀 있지 않습니다. 그 문들을 통하여, 전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당시, 동쪽 지중해에서 서쪽 내륙 고원지대로, 서쪽 내륙 고원지대에서 동쪽 지중해로 가려면, 이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 도시를 관통하는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남쪽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오려면, 판문점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판문점은 항상 닫혀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오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 판문점이 항상 열려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루 빨리 판문점이 열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활짝 열어 놓으신 문으로 들어가야만, 구원을 받고, 그 안에 있는 은혜와 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능력”이란 말은 교회 재정도, 교인 수도,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 않았던 빌라델비아의 교회의 형편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주님은 건물의 크기나 능력의 크기로 교회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교회의 크기나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능력으로도 신실했다는 사실 자체를 아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큰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저절로 신실한 것이 아니요, 작은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무능한 교회인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교회 크기가 아니라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사람의 능력이나 교회 규모에 비례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작은 무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큰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작은 능력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신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윌리엄 캐리”는 18세기 인도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었음으로, 학벌도, 재물도 없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큰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시도하라.”는 좌우명을 붙들고, 인도 선교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작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큰 능력에 비해, 우리에게 작은 능력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하루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신실하게 감당함으로,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9-11절 말씀입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는데, 그들 중 일부가 성도들을 회당에서 몰아내고, 박해에 앞장섰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사탄의 회당”이라 부르시며, 그들이 혈통상 유대인이라 자처하지만,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임을 늘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성도를 환난에서 완전히 격리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그 환난 가운데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주님께서 직접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성도에게, 그를 힘들게 하는 세상의 환난과 시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환난과 시험 한복판에서도 결코 넘어지지 않도록, 주님께서 직접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니, 얼마나 큰 은혜요 복입니까?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흔들림이 없는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빌라델비아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도시였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주후 17년, 이 지역에 소아시아 열두 성을 무너뜨린 대지진이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대지진이 있고 난 후에도, 여진이 그치지 않아, 많은 주민들이 성 안에 살기를 두려워하여, 성 밖 들판에 나가, 천막을 치고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흔들리는 신전 기둥들, 무너지는 건물들 속에서 살아가던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는 이 약속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가슴에 깊이 사무쳤을 것입니다.
그들은 흔들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처소를 약속받았습니다.
로마 신전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된 성도는 영원히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흔들리며 살던 나그네와 같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에서는 결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기둥으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당했던 이들이 하늘나라 성전에서는 가장 견고한 기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 위에 세 가지 이름을 기록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 둘째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셋째는 “나의 새 이름”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을 새기는 것은 소유권을 나타내는 행위였습니다.
세 가지 이름이 새겨진다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께 속하고, 하늘의 도성에 속하고,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로 영원히 확정된다는 뜻입니다.
이 약속은 단지 미래의 소망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성도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재정도, 교인 수도,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을 붙들고, 작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주님은 그들 앞에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여셨고, 흔들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성전의 기둥이 되는 복을 그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작은 능력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고,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감으로,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기둥과 같은 견고하도 든든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신 아버지 하나님,
다윗의 열쇠를 쥐고 계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세상의 그 어떤 손도 닫을 수 없는 은혜의 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작음을 압니다. 가진 것이 넉넉하지 못함을 압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작은 능력이라도 끝까지 붙들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게 하옵소서.
사탄의 시험과 세상의 환난이 몰려올 때마다,
인내의 말씀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시험의 때에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흔들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결코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성전 기둥으로 세워 주옵소서.
우리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기록하여 주옵소서.
거룩하고 진실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