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벤처 투자액이 1조 6500억가량 될 정도로 국내 스타트업 열기가 뜨겁다. 2030 세대가 뛰어드는 IT기반 창업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결혼·임신·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의 창업도 늘고 있다. 지난해 창업자 128만명 중 46%인 59만여명이 여성이다. 경력단절을 딛고 창업에 성공한 여성 CEO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김서화 아크 글로벌 파트너스 대표
김서화(39·사진) 아크 글로벌 파트너스(Arcgp) 대표는 독일 유러피안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솔그룹에서 10여년간 해외 사업 발굴과 인수합병 업무를 했다. 6세, 7세 연년생 자매를 낳고 육아를 하다 보니 회사를 떠나게 됐다. 경력단절을 아쉬워하던 참에 해외에서 김 대표를 찾는 경우도 잦아지면서 회사를 차렸다.
올봄 예정됐던 전기차 레이싱 포뮬러E 챔피언십의 국내 유치를 중개했고 한국 대회 총괄로 있다. 해외 스포츠 선수의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락네이션(Roc Nation)의 국내 비즈니스도 맡고 있다. 수출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도 돕는다.
이런 김 대표가 최근 주방세제, 살균소독제 브랜드 ‘왓아릴리프’ 런칭했다. 아토피로 고통스러워하는 큰 딸을 위해 유기농 음식, 자연 치유 등 갖가지 노력을 기울렸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그러다 설거지하고 그릇에 남은 잔류 세제를 1년에 최대 소주 컵 2잔 분량을 먹게 된다 기사에 눈이 번쩍했다. 직접 천연 주방세제를 만들었고, 지인들의 반응이 좋아 본격적인 사업을 결심했다.
그는 "먹어도 무해한 성분을 찾으려고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자료를 모두 뒤졌다"며 "식물성 야자유를 계면 활성제로 쓰고, 식기에 기름기가 헹궈지는 수준까지 제품력을 끌어올리는데 6개월가량이 걸렸다"고 했다. 또 "아이의 아토피 증상이 나아지는 걸 보고 확신을 하게 됐다"며 "보건복지부에서 인증받은 1종 주방세제로 과일, 채소를 씻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살균소독제 역시 먹어도 무해한 식품첨가물로 만들어 안전성에 신경을 썼다. 두 제품은 싱가포르, 홍콩의 기업과 수출 얘기가 오가고 있다. 김 대표는 "왓아릴리프를 통해 K팝, K뷰티에 이어 K리빙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깐깐한 한국 엄마를 사로잡은 제품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영주 에이치아이피 브랜즈 대표
강영주(38·사진) 에이치아이피 브랜즈(HIP brands) 대표의 얼굴이 올 초 에비뉴엘 잠실점 지하 1층, 명동 영플라자 외벽 대형 스크린에 비쳤다. 강 대표가 기획과 마케팅을 한 뷰티 브랜드 ‘어도어블랑’의 하이엔드 편집숍 입점 세리머니였다. 또 다른 브랜드 더포션스도 올리브 영과 일본 유명 편집숍 로프트(Loft)에입점을 했다.
강 대표는 4세, 6세 남매를 유치원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워킹맘으로 엄마들의 마음을 잘 읽는다. 뷰티, 육아 키워드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확장 중이다. 그는 "워킹맘들은 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스킨케어가 힘들다"며 "최근 내놓은 크림 타입의 수면 팩이 히트친 이유는 간편하고 효과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제외하고 세계 곳곳을 다녔다. 건성 피부 트러블을 완화하려고 그 나라에서 좋다는 화장품을 써봐야 직성이 풀렸다. 자연스럽게 글로벌 화장품 트렌드가 보였고 퇴사하고 뷰티 관련 회사로 옮겨 화장품 마케팅, 브랜드 런칭, 제품 디자인 실무를 했다. 하지만 출산하면서 경력이 끊겼다.
남매 사진을 올리던 인스타그램에서 뜻밖의 기회를 찾아왔다. 소위 인플루언서로 관심이 쏟아졌고, 제품 추천, 공동구매, 라이브방송 등을 통해 소비자의 니즈를 속속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그는 "해외 출장을 가면, 거래처에서 화장품을 만들지 않고 수입만 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앞으로 뷰티제품 수출을 많이 하고 싶다. 어도어블랑 등이 세계적인 셀럽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경제은 비아드젠 대표
경제은(36·사진) 비아드젠 대표는 영국 런던에서 패션홍보를 전공한 뒤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고 연고가 없는 일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출산 후 국내로 돌아와 일본에서 운영했던 인터넷 쇼핑몰 경험과 전공을 살려 아동복을 직접 만들고 쇼핑몰과 매장을 내면서 본격적인 사업을 2013년 시작했다.
3년 전부터는 여성복 쇼핑몰 비아드젠을 운영한다. 경 대표는 "엄마들은 아이 위주로 소비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는 편"이라며 "엄마들도 제대로 갖춰져 입을 수 있는 옷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유통마진으로 판매가가 높아지는 매장이나 백화점 진출을 하지 않는다.
쇼핑몰 회원 수를 2만명까지 늘린 비결로 린앤롱(lean & long)을 키워드로 꼽았다. 경 대표는 "키가 커 보이고, 날씬해 보이는 옷을 집중적으로 만든다"며 "구매자들이 핏에 만족도가 높고 사이즈를 최대 6개까지 다양하게 제작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선 "올 하반기를 겨냥해 이탈리아나 프랑스 원단으로 만든 제품군도 구축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