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장편소설인 '성녀와 마녀'.
사실 '성녀와 마녀'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딱 봐도 착한 '성녀'와 나쁘고 유혹적인 '마녀'의 모습을
이분법 적으로 구성한 그런 소설이 아닐까 상상했었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니 역시나 박경리 작가님은
그런 단순한 이분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보다 여성의 솔직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을 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책의 표지에 '성녀와 마녀 사이에 낀 자네는 정말 보잘것 없는 필부로구나' 라는 소개글 처럼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하남자의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내는 그런 이야기었다.
형숙과 수영은 원래 연인이었으나 수영의 부친인 안박사가 수영에게 형숙은 지독한 요부의 피를 타고났다며
둘의 사이를 반대하고 이를 들은 형숙이 화가나서 수영을 차버린다.
여기서 안박사가 지가 형숙의 어머니에게 놀아났던 과거를 말하면서 책임전가 하는것도 웃겼는데
본인의 과오는 생각 안 하고 형숙의 어머니가 요부였으니 형숙도 마녀일것이다 라는 급전개도 황당했다.
그리고 수영은 헤어진 뒤 아버지가 점찍어놨던 하란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 과정도 굉장히 폭력적이었고
수영의 하남자스러운 발악, 결혼하고나서도 형숙과의 만남에 목을 메는 모습이 하남자의 표본이었다.
수영의 여동생인 수미의 약혼자인 허세준은 본인의 약혼녀를 인형이라 부르며 하란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말할때마다 하란의 흰 목덜미 운운 하는게 정말 남자들의 시선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더러웠다.
결국 제목인 '성녀와 마녀'는 철저히 남자들의 시선이다. 여자를 사람이 아닌 성녀 또는 마녀로 나눠서
둘다 타자화 시키며 비난하는 하남자들의 시선들의 집합이었다.
만약 시대상이 현대였다면, 형숙과 하란이 가부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다른 전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