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가득 피워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의 괴로운 숙고 끝에 나는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부디 내 거절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를 빕니다. 나는 이미 낡은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몰고 오는 야생 수목이 뿜어내는 신선한 산소를 머금은 공기에 놀라 내 폐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지도 모르죠. 나를 가만 놔두세요. 더 정직하게 말하죠.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 깨고, 혼자 술마시는 저 일 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것이죠. 나는 오로지 어둠 속에서 일 인분의 비밀과 일 인분의 침묵으로 내 사유를 살찌워왔어요. 내게 고갈과 메마름은 이미 생의 충분조건이죠. 나는 사막 모래에 묻혀 일체의 수분을 빼앗긴 채 말라가는 죽은 전갈이죠. 내 물병자리 생은 이제 일 인분의 고독과 일 인분의 평화, 일 인분의 자유를 나의 자연으로 받아들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거기 당신의 자리에 서 있으면 됩니다.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밤하늘에 쏟아지던 유성우(流星雨)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