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3월 9일) 조선일보 신문 32면에 광고가 하나 실렸다. 조선일보가 한 면을 통으로 내준 '전면 광고'다. "은혜로교회 신옥주 목사님과 성도에 대한 송사를 변론한다"는 제목의 긴 글이다.
광고주인 '은혜로교회'는 사이비종교이고, 신옥주는 교주다. 은혜로교회가 어떤 집단인지 등을 설명하려면 긴 글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가 지난해 'OCCRP(조직범죄와 부패추적 프로젝트)'와 함께 은혜로교회의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문제를 추적한 국제협업 탐사보도로 대체한다.
은혜로교회는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사이비 교리를 전파할 목적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 정기적으로 전면 광고를 싣는다. 뉴스타파는 거대 신문사가 이런 반사회적 이단 교회의 주장을 광고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실어주는 행태도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어제 광고는 이전과는 달리 특이한 점이 있다. 광고 지면에 뉴스타파가 여러 차례 거론됐다. 뉴스타파 소속 기자 두 명의 이름도 실었다.(그 중 한 명은 이 글의 필자이고, 또 다른 기자는 은혜로교회 탐사보도를 함께 진행했던 동료다.)
이 광고는 도입부부터 "진짜 뉴스는 타파하고, 가짜 뉴스 양산하는 뉴스타파 강혜인·이명주 기자"라며 뉴스타파와 뉴스타파 소속 두 기자를 비방했다. 몇 가지 옮기면 아래와 같다.
"뉴스타파가 자신들이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이상과 두 기자가 쓴 기사가 너무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인 정파성과 상업주의를 배격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며 뉴스답지 않은 가짜 뉴스를 타파하고 진짜 뉴스를 위해 뭉쳤다'고 하는데 강혜인·이명주 두 기자가 쓴 기사는 기존 언론들이 썼던 기사를 받아쓰기 하며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의도와 다른 사실들은 은폐했다."
'광고'의 외피를 쓴 이 글에 은혜로교회는 감시, 폭행, 착취 등 인권 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름도 그대로 실었다. 은혜로교회에 속아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로 이주를 했다가 탈출한 사람들이다. 은혜로교회는 이 광고에서 이들을 언급하며 "피지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라며 "이들이 한 거짓말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자세히 밝힐 것"이라고 썼다.
은혜로교회의 이 광고 글은 같은 날 동아일보 26면에도 전면 광고로 나란히 실렸다.
2023년 3월 9일자로 실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면 광고
아무리 광고라지만
광고는 언론사의 주요 재원이다. 신문사는 광고주에게 지면을 내주고 방송사는 방송 시간을 내준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언론사 재원 조달 방식이 근년 들어 무너지고 있다. 한국 언론사 광고에는 현재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 '기사'라는 포장지로 쌓여있지만 사실은 광고인 '기사형 광고', 돈만 받으면 아무 내용이나 실어주는 데서 비롯되는 가짜 광고 등, 뉴스타파는 그간 한국 언론사의 광고 문제를 여러 차례 다뤄왔다.
은혜로교회가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주기적으로 게재하는 전면 광고는 특히 더 문제가 많다. 은혜로교회의 교주인 신옥주 목사는 범죄자다. 그는 신도들에 대한 특수 폭행, 특수 감금,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7년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지난해 7월 뉴스타파와 OCCRP가 은혜로교회 문제를 보도한 이후, 피지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은혜로교회를 조사하고 있다. 은혜로교회가 피지에 정착할 때부터 지난해 말까지 집권했던 정권이 선거에서 패배했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은혜로교회 조사가 시작됐다. 이전 정권은 은혜로교회와 유착하고, 각종 사업을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은혜로교회가 이번 광고에서 실명을 적시하며 '거짓말쟁이'로 매도한 사람들은 전 신도이자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피해를 언론 매체에 용기 있게 털어놓은 사람들이다. 이른바 '타작마당',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내몰린 극심한 노동 등이 모두 이들 피해자들이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것이다. 그런데 광고라는 외피를 쓰고 은혜로교회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 한국 주요 일간지에 버젓이 실린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광고 요금표에 따르면 기타 미지정면 컬러 15단(전면) 광고 요금은 6,660만 원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범죄를 옹호하는 집단에 한 페이지의 지면을 내어주고, 약 6000만 원을 번 것이다.
아무리 광고라지만 그래도 언론사를 표방한다면 적어도 범죄로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난 사이비 종교 집단을 옹호하고, 그 범죄의 피해자를 비방하는 내용은 걸러낼 정도의 시스템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동아일보 광고국에 물었다. 대화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기자 : 그 광고에 이름이 적힌 기자인데요. (중략) 내용에 대해서는 검토를 안 하시는 건가요?
● 동아일보 관계자 : 그 기사가 방송에 나간 것은 맞잖아요. 뉴스타파에 은혜로교회가 보도된 것은 사실이잖아요. (중략) 저희가 일일이 내용을 다 검증할 수는 없잖아요.
○ 기자 : 그런데 여기에 피해자들 이름도 다 들어가 있는데요.
● 동아일보 관계자 : (중략) 은혜로교회 쪽하고 좀 잘 풀어보셔야 될 것 같아요.
○ 기자 : 피해를 입으신 분들 성함이 다 나오니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 동아일보 관계자 : 그건 저희가 자세히 못 봤는데 다음에 또 광고가 의뢰 들어오면 메모를 해놨다가 광고주 쪽에 어필을 하겠습니다.
조선일보 광고부서인 AD본부에 연락하자 '광화문 광고 지사'로 전화를 연결해줬다. 광화문 광고 지사 담당자는 "내용을 확인하고 AD본부에서 최종 확인을 한다"면서 "지사에서 보통 광고 내용을 확인하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이번 주 내용은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AD본부에서는 "광고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첫댓글 언론으로써의 부끄러움을 알까..
최소한의 양심과 자존심은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정말 속상하고 화가나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