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5:1-6 아름다운 열매
(요 15:1) |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
요즘 시장이나 어디를 가든지 제철을 맞은 과실은 단연 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포도가 한 여름내 더위와 싸워서 이제는 성숙되었을 뿐만 아니라 완숙되어 먹을 수 있게 잘 익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이와 같이 성숙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하셨는데 이 가지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나 가지는 찍어서 불에 던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3:10) 그러므로 아름답고 좋은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맺힌 실과라고 모두 다 성숙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아무리 세찬 비바람이 불어도, 태산과 같은 환난이 닥쳐도, 성난 파도와 같은 시련이 닥쳐도,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맺혀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러면 이와 같이 성숙한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꽃이 피는 계절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야 합니다.
모든 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하여 꽃을 피웁니다. 어떤 것은 보잘것없는 꽃이 피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아름답게, 그리고 화려하게, 피는 것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꽃을 피우는 것은 모두다 열매를 맺기 위한 1단계 작업입니다. 꽃이 피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무화과라는 과실은 꽃이 없이 열매를 맺는다고 하여 무화과지만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꽃 자체가 열매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이 보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꽃이 피되 제철에 피어야 합니다. 모든 꽃들은 피는 시기가 있습니다.
마25장의 열 처녀 비유 중에 미련한 다섯 처녀는 마땅히 기름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고후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구원의 날에 구원을 얻기 위하여 은혜를 받을 만한 때에 반드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눅12:56절 말씀에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기와 때를 잘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고 하였습니다.
(롬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때와 시기를 잘 맞춰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믿음, 그것이 바로 신앙의 아름다운 꽃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의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잎도 무성해야 합니다.
마21:18절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그 나무가 말라죽은 사건이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3:6-9절 말씀에는 3년이나 기다려도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했을 때 내리신 책망입니다. 나무에는 적당한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야 합니다. 식물들은 잎사귀를 통해서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숨을 쉬며 공기를 마십니다. 그래서 잎사귀가 없는 나무는 곧 고사되고 맙니다.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려면 잎사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잎사귀의 활동이 활발해야 그 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히려면 활발하게 움직이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곧 활발한 믿음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열심히 또 부지런히 움직이는 활동적인 신앙을 말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또 열심히 봉사도 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호흡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될 수가 있습니다.<아 멘!>
3.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잎이 무성하다고 해서 다 된 것도 아닙니다. 결실이 되어야 합니다. 꽃만 피었다가 결실을 하지 못하고 마는 꽃도 많이 있습니다. 잎이 무성하지만 결실이 없어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나무도 있습니다.
과실나무를 심는 목적은 과실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열매가 없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 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기 좋고 아름다운 화려한 꽃도 있어야 하고, 무성한 잎사귀와 같은 활동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앙의 결실입니다. 신앙의 결실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함은 바로 신앙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의 생활 속에서 행함으로 나타나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마7:20-21)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4. 벌레가 먹지 말아야 합니다.
한 개의 과실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방제작업을 해서 결실된 과실에 벌래가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벌래가 먹어서 흠이 생기면 상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싼값에 팔리든지 아니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들의 신앙에 흠을 내려고 끊임없이 우리들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사탄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의 믿음에 흠집이 생기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빌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게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을 흠이 없이 잘 보존하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못된 것은 고치고 더러워진 것은 씻어내고 사탄의 벌레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방제를 하여야 합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을 때에 가라지를 뿌립니다.
(마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심령이 잠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24:42-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5. 온갖 시련과 환난을 이겨내야 아름다운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과실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받아야 하며 여름날의 비바람을 다 견뎌내야 비로소 가을에 아름다운 열매로서 수확을 하게 됩니다.
봄내 여름내 온갖 비바람과 시련을 겪어내지 못하면 아름다운 열매가 될 수 없듯이 우리들의 신앙도 일생동안 사는 동안에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환난과 고통과 시험과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고전3:13-15절 말씀에는 공적 심판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그러므로 성도들이 끊임없이 당해야 하는 고난은 바로 믿음을 연단 시켜 성숙된 믿음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욥은 언갖 고난과 시련을 다 이기고 고백하기를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고 하였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이제는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 져야 합니다. 언제까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순진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의 믿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강하고 담대해 져야 합니다. 태풍이 불어도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는 과실과 같이 어떠한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