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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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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여행정보 기상청 스크랩 대동금남정맥 천호산 미륵산 130216
둔재(윤재연) 추천 0 조회 80 14.10.10 22: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코스 : 금평마을(08:03) - 고내곡재(08:13) - 누황재(09:05) -  천호산(09:41) - 갈매봉 - 문드러미재(10:35) - 호남고속도(10:50) - 쑥고개(11:15) - 1번국도(11:55) - 용화산 헬기장(점심) - 용화산(13:00) - 다듬재(아리랑고개 13:43) - 미륵산(14:27) - 산길 끝(15:18) - 삼기주유소 - 석불사거리(15:35) 

 

 

익산의 대표적인 산들 이어 걷는다. 천호 용화 미륵산. 

 

익산의 최고봉이라는 천호天壺산, 허공 품은 하늘산이란 이름답게 천연기념물 천호동굴이 기슭에 있다. 호남유일의 석회굴이라니 궁금증 자아내지만 종주길에 들릴 형편은 아니다. 곧고 드높은 줄기의 아름다움과 시원한 조망이나 만끽할 따름이다. 정맥길 대신 대각의 남북능선 고스란히 이어서 종주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한데 가파른 동남 사면 시야 트이는 곳곳에선 완주 진안의 명산릉들 현란한 하늘금이 눈길 사로잡는다. 또 금강 만경강 유역 곡창지대를 배후삼아 흔들림 없이 뻗어가는 천연성벽같은 지세는 옛날부터 군사요충으로 대접받았을 만하다.  천호산성은 그 내력의 한 자취라 하겠다.

 

용화산과 미륵산은 마한 백제 문화의 중심에 자리한 유서깊은 땅줄기다. 용화는 곧 미륵의 세계이니, 이름 비록 둘이되 뜻은 한 뿌리에 닿는다. 아리랑고개로 나뉘면서 이어지는 두 산 모두 조망 빼어나다.

는 눈 뜨고 사방 아득히 굽어본다. 고조선 준왕과 백제 무왕, 고구려 유민 안승과 후백제 견훤... 이루지 못한 왕도의 꿈들이 왜 이 금마 땅에서 그토록 장엄하고 처절하게 펼쳐졌던지 비로소 수긍이 간다. 한반도 닮았다는 금마저수지, 바람찬 우제봉에 서서 짙푸른 그 수면 한참을 바라본다. 

미륵과 용화산 또한 정맥산행과 별도로 미륵사지와 금마저수지를 시종점 삼아 잇는다면 나름 알차고 의미있는 코스가 될 듯하다. 헐벗은 사면 진달래 물결로 뒤덮이는 봄날이나 조망좋은 쾌청시절 골라 여유롭게 다시 함 둘러보아도 좋겠다. 

 

미륵산 줄기 잦아드는 연동리에서 대동금남정맥 마루금 잇기는 실질적인 한 단락이 지어진다. 이후 함라산 이를 때까지 마루금은 없는 셈이다. 대간정맥의 대원칙은 산자분수령, 산이 없으면 물길은 흩어진다. 길이 없으니 사방이 길이다. 미륵산 내려서며 굽어보는 느낌은 막막하고 시원스럽다. 곳곳 황톳빛 맨살 드러내는 벌판이 광활하고 아득하게 펼쳐진다.

분지인盆地人인 나에게 지평은 낯설다. 감싸기보다는 트이고 열린 세상, 기둥같은 산이 받쳐주지 않으니 하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는 건 직립짐승 인간들의 몫이다. 숨어 울거나 기대고 일어날 언덕 하나 없는 완강하고 순일한 대지, 한때 왕업의 야망에 동원되기도 했고 식민지 수탈의 현장이기도 했던 붉은 들판. 그 땅 주인을 중심으로 역사가 이루어졌을 때 삶은 풍요로웠고, 누군가의 풍요의 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그 땅의 삶은 피폐해졌다. 마루금 사라진 저 땅 적시며 흘렀던 피와 땀의 길, 지리멸렬 흩어졌다 끝내 다시 모여 서해로 가는 물의 길을 본다. 

 

종점인 석불 사거리. 아름다운 광배와 덧붙여놓은 멍한 불두로 유명한 연동리 석불좌상 있는 곳이다. 오래전 한번쯤 들렀을 것 같기도 한데 별 기억은 없다. 오늘따라 석불사 절집 분위기가 좀 어수선한 듯해 법당 밖에서 흘낏 일별하고 돌아나온다.     

 

 금평 마을에서 고내곡재 가며.

 차에서 내리지말자 다들 총총 내지른다. 앞서가는 저 분들 대부분 산에선 끝내 한번도 보질 못했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 고내곡재에서.

고개 옆엔 '화련선개통기념비'란 단정한 표지 서 있다. 전북 완주군 화산면과 충남 논산군 연무읍을 잇는 길이란 뜻이겠다.  

 

 

 아침빛이 상쾌하고 곱다.

 

 왼쪽이 아마 천호산?

능선길 상태가 좀 그렇다. 덤불 유난히 많은 편이라 조심스럽다.

 

 이런 그럴듯한 솔숲도 있다

 

 굽어본 고내곡제 방향.

너머 보이는 건 연무읍일려나?  돌아올 수 없는 이십대 어느 시절, 땀께나 쏟았던 곳.

 

 숲 사이로 보이는 용화와 미륵산. 당겨본다.

 시설물 있는 곳이 미륵산

 

 누황재 내려서며

 

 줄곧 눈길 가는 방향.

 오른쪽 멀리 보이는 줄기가 아마 익산벌로 사라졌던 마루금 다시 되살아나는 함라산릉일 듯.

 

 당겨본 용화와 미륵

 

 석회석 채광지. 영원히 닫히지 않을 듯 위협적인 아가리 혹은 상처.

그러고 보니 일대에 흔히 보이는 흰 돌덩이는 석회석이 많이 함유된 때문인 듯. 

 

 광산터 벼랑 옆을 거쳐 천호산을 오르다.  

 

 돌아보다

 

                                                       늦가을 어느날 같은...

 지나온 능선 돌아보다.

 사진 왼쪽이 오늘 지나온 능선, 오른쪽은 아마 작봉산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인 듯한데, 미답구간이니 짐작만.

 왼쪽, 전봇대 총총 박힌 길이 누황재 길이다.

 조망 시원스레 트이는 지점에서 서북쪽 돌아보다. 왼쪽은 여산, 가운데 멀리 부여 방향.

 

 서쪽

 

 

 미륵산쪽 어지간히 똑닥댄다. 용화산 왼쪽으로 익산시가지도 보이고.

 거침없이 뻗는 호남고속도로와 1번 국도.

 

 천호산정 가까워지니 잔설이 좀..

 

 이전 구간 능선 돌아보다. 젤 높은 봉우리가 작봉산일라나? 아님 말고...

 

 계곡 쪽으로 탑 두어채 있는 절이 보인다. 백운사?

 

 왼쪽 봉우리가 갈매봉일 듯.

 

 

 저 성축 위가 천호산 정상부. 조망없이 너르고 평평하기만 하다.

주변 나무 좀 확 쳐내어 사방 조망 확보한다면 산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질텐데... 아쉽다.

 

 

 잠시 기분좋은 솔숲길

 천호산정에서 갈매봉까지는 큰 기복없이 걷기 수월한 능선.

 

 길 옆 조망 트이는 곳에서 돌아보다.

 뽈록한 건 천등산, 그 앞으로 미륵산 겹쳐지고 더 오른쪽으로 불명산, 가운데쯤 맨 뒤로 진악산도 보인다.

 더 오른쪽으로는 대동금남과 금남정맥도 겹쳐 보인다. 써레, 칠백이고지, 백암, 신선... 왕사, 태평봉수대, 금만, 정도까지 대충 가늠..

 

 맨 왼쪽엔 돌출암봉 운암, 너머로 명도봉, 가장 멀리 흐릿한 운장산, 그 오른쪽으로 서래봉 서방산 등등...

 

 무슨 뜻일까? 봉, 장, 시... 옛 봉수대와 관련 있을 듯.

 

 또다시 진행방향. 왼쪽이 천호산릉 끝 갈매봉

 

 당겨본 용화 미륵산릉. 호남고속도로는 지척

 

 저 봉긋한 산이 뭘까 싶었는데... 봉동읍 뒷산인 봉실산과 옥녀봉?  

 젤 높은 건 서래봉.

 

 천등쪽 다시... 당겨본다.

 천등 왼쪽으로 대둔이 까칠하다.

 

 가운데 멀리... 만덕산?

 좁은 골에 비닐하우스가 참 많기도 하다. 부지런한 동네다.

 

 천호산릉에서 나뉘는 저 줄기가 봉실산까지 이어지는 듯.

 멀리 보이는 큰 저수지는 왕궁저수지?

 

 돌아보는 천호산

 

 천호산 구간 벗어나면 저쪽 조망 보기 힘들 듯하여 또...

 

 산불감시초소 있는 갈매봉에서 갈 길 가늠하다. 사진 한가운데 원수제 저수지.

 왼쪽이 문드러미재, 그 너머 호남고속도로, 또 그 너머... 1번국도 건너 용화산으로 이어지는 줄기까지 한눈에 든다.

 

 다시 서남쪽. 왼쪽 멀리 있을 전주는 아득하게 흐리고 오른쪽 먼 익산은 비교적 선명하다.

 

 갈매봉 내려서는 길은 정맥능선 벗어나 옆줄기 따른다. 바로 앞 줄기가 정맥.

 

                                                   능선길 대신 임도 따라 문드러미에 이른다.

                                                        표지가 인상적이라서리...

  

  문드러미재 지나서 돌아본 갈매봉. 자세히 보면 옆줄기 따라 내려오는 길이 나 있다.

 

 

 또 돌아보다

 

 아래 저수지는 동벌지

 

 문드러미재에서 호남고속도 건너기 전까지 짧은 구간 솔숲이 좋다

 

 생태통로 이용하여 호남고속도 건너간다.  산짐승들 전혀 반기지 않을 짐승노릇이 좀 쑥스럽구만...

 

 799번 도로 지나는 쑥고개는 여산면과 왕궁면 경계.

 시골마을 B/S의 KTX광고가 뜬금없어 재밌다. 

 

 이후 공동묘지 구간 거쳐가며 돌아본 천호산릉.

 

저 분들이 이 탑을 쌓았다.

내가 여기 당도했을 즈음, 탑 다 쌓은 기념 겸 시산제를 막 지내셨다 한다.

음복을 권하신다. 돼지머리 안주에 막걸리 두어잔 들이키니, 은근히 밀려들던 허기와 갈증 일거에 사라진다.

정맥길은 아니지만 이 산줄기따라 탑이 세개 더 있다 자랑하신다. 대단한 공력이다.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탑 작명을 좀 도와달라시는데... 

지나가는 경상도 뜨내기보담 감성좋은 여기 분들 안목이 훨 낫지 않겠냐며 사양했더니,

백련白連이 어떠냐 물으신다. 흰빛의 돌로 쌓았으니 白, 수많은 인연들이 한없이 이어지길 바라며 連. 물론 저 백은 百과도 통한다.       

참 좋은 이름이라 상찬해 드리고 인사 나누고 돌아선다.

 면허기 겸하여 한동안 얼근하다.    

 

 1번국도 건너며.

 당겨보는 천호산

 

 용화산. 봉우리 왼쪽 아래 편평해 보이는 곳이 헬기장 공터.

 

                                                 이후 이런 이정표 총총 보인다. 요즘은 어디나 무슨 길이 유행인갑다.

 용화산정 아래 공터에서 건너본 미륵산쪽.

정상으로 직진 않고 남릉쪽 사면따라 가보니 동네사람 많이 보이는 공터다. 잔디밭에 퍼질러 앉아 점심.

 

 용화산 정상 표지는 정맥길과 남릉 삼거리봉에 있다. 지형도상 용화산은 더 북쪽이다.  

 이 표지 있는 지점이 지형도상 용화산.

용화산릉에서 가장 높을 듯한 지점을 포함, 용화산에서 미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서남사면은 전구간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직사공용화기라면 기관총을 뜻하는 듯한데, 지역민들 이토록 걸음 많은 산 바로 아래가 사격장이라니! 위험하기도 하지만 시끄럽기도 하겠다.

용화가 어떤 곳인가. 미륵의 세계 유토피아다. 허나 사격장 옆구리에 낀 이상향은 잔혹 은유를 넘어 웃지도 못할 희극이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상징적 피안 공간을 차지하고 앉은 군사시설. 이젠 시민들에게 좀 비켜주고 덜 붐비는 곳으로 이사가면 어떨까 싶다.   

 

 미륵산. 브이V자형 산성이 선명하다.

 이어지는 능선 사면 역시 사격장 피탄 가능지역이라 철조망으로 봉쇄되고, 숲은 깨끗이 정리되었다. 유탄에 의한 화재 우려 때문이겠지만 퍽 흉하다.

 용화산릉에서 미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 바위조망처 많으나 주로 철조망 안쪽이니 그 또한 언감생심이다. 

 

 한반도 닮았다는 금마 저수지.

예서 보기엔 허리가 유난히 잘록해 보인다. 위태롭고 불안한 우리 현실만 같다.

 

 헐벗은 능선 너머로 낭산 채석장이 단연 눈에 띈다.

 

 천호산릉과 왼쪽으로 대동금남정맥. 당겨본다.

 대둔산 일부와 월성 바랑이 뒤로 보인다.

 

 용리산릉 너머 지평...

 경상도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라 자주 눈길 간다. 분지인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부여쪽에서 저 모습 바라볼 수 있을 금남정맥 마지막 구간도 불현듯 궁금해진다. 

 

 브이자 산성길 중 오른쪽이 정맥길이다.

 

                                                     용화와 미륵산 잇는 능선은 이렇게 패였다. 군시설 표지 워낙 많으니 첨엔 교통호인가 싶었다.

 

 서남쪽 금마땅.

위만의 반란에 ?긴 기자의 41대손 고조선왕 기준(준왕)은 저 금마에 상륙해 마한의 한 나라 왕이 된다. 건마국乾馬國이다.

건마는 훗날 온조에 의해 병합되어 금마저라 불리며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 문화의 중심지 노릇을 하게 되고, 무왕대에는 잠시 왕도의 영광을 맛보기도 한다.

하늘빛 닮아가는 저 벌판 이어가며 반도의 곡창 김제만경평야가 펼쳐진다. 

 

 잠시 정맥길 버리고 산성 표지따라 가 보니 나타나는 암반에서

 

 암반 오르며 용화산 돌아보다

 

 산성에서

 

                                                    산성에 올라 건너보다. 

 

 산성따라 간다.

성축이 참 깔끔하게 복원되어 있다. 저 돌들도 익산에서 나는 화강암일까?

 

                                                  얌전히 정맥길 따르면 성축 아래로 가게 된다.

 돌아보다

 

 화강석 채석장 규모가 대단하다. 분화구같다.

 

알고보니 익산은 울나라 돌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익산 화강암은 빛깔이 곱고 단단하며 철분 함유량이 적어 오래 변하지 않는다 한다.

미륵산 아래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시원'이다. 그것은 화려한 다층 전각 형태의 목탑양식을 최고로 발전시킨 백제인의 안목과 솜씨가 익산의 최고품질 화강석을 만나 성취해낸 경지다. 그 경지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의 소박한 감성에 닿아 또 하나의 걸출한 조형미로 구현되었다. 불국사 석가탑을 만든 이는 다름 아닌 백제인 아사달이었다. 탑의 나라 통일신라가 가능했던 바탕에는 탑의 예술가 백제인이 있었던 것.

   

 용화산 너머 운장을 위시한 진안 완주의 산릉들도 볼맛나고...

 저 산자락 도시는 전주겠다.

 

 미륵산 정상부

 

 조망봉에서 돌아보다. 채석장은 단연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대둔산 오른쪽, 천호산릉 뒤로 천등산도 빼꼼하고 더 오른쪽으로는 두 금남정맥이 시원스레 뻗어간다.  

 당겨본 대둔과 월성 바랑산. 그러니까 왼쪽 멀리 보이는 줄기가 금남정맥이렷다.

 맨 왼쪽은... 설마 계룡? 향적?

 

 맨 뒤로 운장에서 북으로 금남과 대동금남의 줄기.

태평봉수대와 칠백이고지, 써레봉 등등이 가늠된다.

 

 운장의 오른쪽 산릉들도 가늠해 본다.

 서래봉 좌우 완주산군들이 뚜렷하고, 사진 맨 오른쪽 흐릿한 건 만덕산인 듯

 

 만덕 고덕 모악산. 흐리긴 하지만...

 가운데 고덕 오른쪽 더 멀리 보이는 건 호남정맥 경각산일 듯.

 

 시설물 있는 봉우리쪽으로 암릉이 좋다. 바쁜 정맥종주길만 아님 잠시 다녀오는 건데...

 

 육봉인 정상부

 

 정상에서 돌아보다

 

 등지기 전에 다시 함 더...

 

 태극기 휘날리는 정상부. 엄청 질척인다.

 근교산 주말이라 등산객들 아주 많다. 

 

 정맥길따라 바로 내려서지 않고 툭 트이는 남쪽 조망을 찾아 능선따라 더 진행해 본다.

 과연 조망바위 있다. 돌아본다.

 

 하산릉과 오늘의 종점 삼기면 석불사거리를 눈여겨본다.

 

멀리 보이는 줄기가 함라산릉일 듯한데 이 미륵산에서 저 산릉 사이엔 마루금이 없다. 산줄기 물줄기 모두 흩어지는 지평이다.

저 벌판 굽어보며 불현듯 느끼는 건, 산줄기는 이어지는 게 아니라 솟아날 따름이라는 것. 

어떤 이는 대동금남 마루금이 물길에 의해 끊기는 것이 일제의 무분별한 수리사업 탓인양 주장하기도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안쓰러운 얘기다.

끊김없이 이어지는 마루금이란 애당초 가상이다. 땅에 대해 잘 추상된 어떤 관념일 뿐이다. 이론상으로는 지구상의 모든 대륙마다 대양에서 대양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주된 마루금과 거기서 분기하는 무수한 지맥들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과연 그러할까? 사막과 분지, 속수무책 벌판은 대체 어쩔 것인가?

막막한 저 발판 앞에서 '부단한 마루금'이란 관념의 정체가 가차없이 드러나며 산자분수령 원칙은 무력해진다.

솟아났다 사라지는 산줄기, 어쩌면 그건 대간정맥꾼의 성서 산경표가 재해석되며 비판적으로 이해한 지질학의 귀환이나 반격이 아닐까...?       

 

사진 가운데, 지붕 하얀 커다란 건물 앞쪽이 석불 사거리.

 

 익산과 전주.

익산의 옛이름은 이리.  참혹한 폭발사고 났던 바로 그 곳이다.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이리란 지명은 어쩔 수 없이 그 때 그 순간을 환기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당겨본 전주쪽.

완주나 완산은 전주의 옛 이름이니, 완주의 뭇 산들이 저 도시를 굽어보고 있다.  

 

 한가운데 멀리 흐릿한 모악산

 금마저수지 옆 저 곳은 무얼까? 공공 시설이나 군부대같기도 하다.

 

 썩 아쉬운 사진이다. 미륵사지 전경을 놓쳐버렸다.

사진 왼쪽, 박스같은 건물이 미륵사지 서탑 복원현장이다. 동탑은 포착되지 못했다. 바쁜 마음에 깜빡하기도 했고, 전망 가장 좋은 바위에 몇 사람 앉아 있어 어정쩡하게 옆으로 기웃거린 탓이기도 하다. 미륵산에서 굽어보는 미륵사지 전경 놓쳤으니, 나중에 미륵산 다시 찾을 핑계 하나 만든 셈일까...

 

미륵사는 백제 무왕이 지었다. 

미륵사는 특별한 절이었다. 통상적인 백제절을 3개나 합쳐놓은 구조와 규모였다. 절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다(172m x 148m).

필생의 인연으로 엮은 운명의 연인 선화공주와 함께 무왕은 미륵세상을 꿈꾸었던 걸까? 선화의 아비(?) 진평왕 또한 불국토 신라를 꿈꾸었다. 허나 권력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거북하고 수상쩍다. 그 곳은 권력이 가닿을 곳이 아니다. 언제나 민초들의 해방과 자유의 꿈이어야 했다.

꿈의 영역마저 침범하고 오염시킬 때 권력은 독선이 된다. 꿈의 뇌관은 끝내 제거되고 '미륵'은 지배의 수사로 전락한다.  

미륵산 등지고 서서 드넓은 금마벌판 굽어보며 무왕이 꿈꾼 건 무엇이었을까? 성찰없는 권력이 곧잘 추구하곤 하는 오직 하나로 단결된 강한 나라였을까?

무왕대에 잠시 빛났던 백제 부흥의 꿈... 무왕의 아들 의자왕대에 이르러 백제는 멸망한다.

그가 꿈꾸었던 미륵세상은 결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지 않으므로 미륵이다. 모든 구현된 유토피아는 허상이거나 권력일 따름이니.

 

미륵사지 가 본지 참 오래다. 복원 중인 서탑, 비스듬히 허물어진 그 모습 돌아오면 다시 함 보고 싶다.

미륵사지는 폐사지다. 그러나 오는 길에 지나치며 본 미륵사지는 더 이상 폐사지가 아니다. 백제문화를 효율적으로 가르치고 싶은 교육공간처럼 보인다.

웬지 거부감 든다. 지나치게 단장하고 꾸며 논 폐사지에선 덧없는 역사의 시간이 증발해 버리고 현세의 욕심만 가득해진다.

둘도 없는 저러한 시공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느끼게 해 주면 더 좋을 텐데...    

 

 하산길, 산소 너머 굽어본 모습. 사진 한가운데가 석불 사거리.

 마루금 사라진 흙빛 벌판 너머 멀리, 대동금남 이어지는 함라산릉.

 

하산길은 지역민들 산책로.

 돌아본 미륵산.

가운데 소나무 가린 곳이 정상, 오른쪽 봉우리가 전망 찾아 다녀온 지점.

 

 저 집 뒷쪽이 실질적인 마루금이 끝나는 곳.

이후 석불사거리까지는 그냥 지도 참고하여 길 찾아가는 노릇일 뿐 마루금 잇는 취지는 없다.

    

 마루금 사라진 지평엔 다른 풍경이 있다.

 

 

 

 

 굳이 마루금 이으려면 저런 둔덕을 따라가야 할지도 모르나...

 

 마지막으로 돌아본 미륵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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