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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잡초가 자라는 이유...
한 농부가 무더운 여름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밭에서 잡초를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은 왜 이런 쓸모없는 잡초를 만든 것일까? ”
“이 잡초들만 없으면 오늘 이렇게 더운 날 땀 흘리지 않아도 되고 밭도 깨끗할텐데... ”
때 마침 근처를 지나던 동네 노인 한 분이 그 말을 듣고는 농부를 타일렀습니다.
“여보게, 그 잡초도 그 나름의 소중한 책임을 띠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네!
잡초는 비가 많이 내릴 때는 흙이 내려가지 않도록 막아주고,
너무 건조한 날에는 먼지나 바람에 의한 피해를 막아주고 있네.
또한 진흙땅에 튼튼한 뿌리를 뻗어 흙을 갈아주기도 하지...
만일 그 잡초들이 없었다면 자네가 땅을 고르려 해도 흙먼지만 일어나고,
비에 흙이 씻겨 내려 이 땅은 아무 쓸모가 없이 되었을 거야.
자네가 귀찮게 여긴 그 잡초가 자네의 밭을 지켜준 일등 공신이라네...”
세상에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이 세상에 보내진 것입니다.
비록 그 영혼은 보이지 않지만, 꽃은 꽃의 모양과 향기의 옷을 입고,
잡초는 잡초 모양의 옷을 입고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들의 좁은 생각이 그렇게 느낄 뿐,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각각의 쓰임새와 의미로 세상을 빛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이건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 가치를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것은
이제 내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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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 8월을 보내며... ! ’
글 :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8월이 가는 한 달의 맺음 날이다.
여름의 끝 날이라는 생각도 든다.
6,7,8월은 여름이라는 관념으로는...
그 무더운 더위, 그토록 많은 비의 내림,
8월의 한 달은 참 길었다.
내내 밝아오지 않는 생의 시간들처럼 ...
어둠이 내리고 아픔이 머물기도, 절망이 오고 희망이 멀어지기도,
고독이 밀려오고 슬픔이 찾아오기도 했다.
8월은 그렇게 머물다 우리 곁을 떠난다.
살아가는 인생의 한 단면처럼...
8월은 다시 돌아오고, 생의 시련도 다시 맞이해야 하더라도
오늘 8월을 보낸다.
우리는 때때로
그렇게 과거의 것들을, 지나가는 것들을 보내야 한다.
기쁨과 고마움도, 고통과 비탄도 함께 ...
우리가 보내고 흘러가게 하는 것들이 어둠, 시련이라면 좋다.
상처, 미움이면 좋다. 힘듦, 어려움이면 좋다.
슬픔, 고통이라면 더 좋다.
그 모든 부정의 것들이라면 더욱 좋다.
그렇게 보낼 수 있는 것들이라면...
보내고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들이 과거 속에 묻혀 있고,
우리들 삶의 발전, 성장에 걸림이라면
우리는 과거의 것들을 보내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의 시간들도 보내야 한다.
아무 것, 어느 것도 남기지 않은 채 …….
무엇도, 무슨 사연도 저장해두지 않고 ...
때때로 우리는 많은 것들 앞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언제 어느 날들에 만나고 겪었던 것들에서 놓아 보내지 않고,
흘러가게 하지 않으며, 용서하지 않은 채
고통과 아픔의 눈물을 꼭꼭 간직한다.
비탄과 찬탈의 기억을 내내 저장해둔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에서 다시 보내는 8월의 맺음 날,
나는 나에게 속하고 내가 지녀온 많은 것들을 보내야 함을 생각한다.
그토록 내가 가지고 쌓여온 이날까지 지녀온 비우고 버리며 떠나보내야 할
그 모든 부정의 유형, 무형한 것들,
그 모든 존재의 어둠, 고통, 아픔,
그 모든 살고 지녀온 힘듦, 어려움들도 ...
이제는 지금은 보내야 한다. 흘러가게 해야 한다.
‘굿 바이(Good-bye)!’라고 말해야 한다.
‘어제여, 안녕!’ 을 말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고, 새 삶은 새 마음을 지녀야 하며,
새 영은 새 육신으로 가져야 하고, 새 빛은 새 생활로 옮겨가야 한다.’
나는 이아침에 떠나가는 8월을 보내며 새로운 꿈을 꾼다.
그것은 보내는 이의 꿈, 새로운 것들에 대한 꿈,
새 마음, 영, 삶에 대한 꿈이다.
문득 오늘 아침 말씀이 나의 아침 창가에 다가와
내 작은 마음 곁에 앉아있다.
‘깨어 있으라.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고,
그 때와 그 시각은 누구도 알 수 없으나,
그 날 그 시간은 꼭 다가오리니 ...‘
8월이 간다. 8월이 떠나간다.
어둠 버리고 기쁨을 위해, 절망 버리고 희망을 위해,
슬픔 버리고 평화를 위해 한 계절이 떠난다.
인생의 한 날들이 떠난다.
삶의 한 절망들도 떠난다.
나는 오늘 8월의 맺음 날에 보내고 흘러가야 할 것들을,
떠나고 떠나게 해야 할 것들을 보내면서 곧 높아갈 하늘을 본다.
이내 풍요로울 땅을 꿈꾼다.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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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8주일
2019. 8. 4
루카 12, 13~21
♠ 복음 공부 : 부와 가난 (재물에 대한 가르침)
☞ 길잡이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루카 복음에만 실린 특수자료로 실은 비유가 아니라, 예화다. 탐욕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로 재물은 죽음 앞에서 무력한 것이고, 부자는 자신의 재물로 인생을 즐길 계획을 세우지만, 이 예화 끝(21절)에다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이러하다’ 를 덧붙임으로써 자신이 이 예화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밝힌다. 하느님 앞에 부유하지 못한 자는 남에게 베풀지 모르는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을 뜻하며, 루카는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행위를 강조하고 행복선언의 첫머리에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 이라고 선포하신다.
* 13~21절 : 유산상속 문제로 다투는 형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형제간의 유산상속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율사들이 민사소송의 판결권을 갖고 있었으며, 또한 율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율법을 근거로 시비를 가려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이 재물로 인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에 관심이 있을 뿐 재산 문제에 개입할 생각이 없으셨다. 분쟁의 재물보다 형제간의 사랑이 훨씬 중요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이에 재물을 쌓아 두려는 부자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예화를 들어, 부유한 사람은 오직 자신을 위해 모아두는 데만 관심을 쏟을 뿐 재물이 나눔을 위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부자의 욕심은 곧 닥쳐올 죽음 앞에 헛될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예수님께서 ‘탐욕’을 경계하라고 하신다. 재물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명을 보장해 주리라 믿고 집착함으로써 하느님과 대적하는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오랫동안 우상은 힘을 발휘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 더’라는 속삭임이 점점 남의 주머니나 입에는 멀어지고 만족을 모른 체 배고픈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그레고리우스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사회교리 일부로 요약하고자 한다. “최고 심판관께서 당신 왼쪽에 세우시고 꾸짖으시는 염소를 보며 나는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단죄 받아 왼쪽에 선 것은 강도짓이나 독성, 불륜이나 다른 금지된 일들을 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인격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희생제물이 아니라, 오늘날 짓밟히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통해 연민의 마음, 자비를 그분께 드립시다.”
♠ 대화 방향 : ① 내가 애착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② 나의 장례식을 상상해 봅시다. 내게 소중했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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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9주일
2019. 8. 11
루카 12, 32~48
♠ 복음 공부 : 종말을 대비하라.
* 32절 : 마태오복음에 없는 것으로 보아 문맥과 상관없이 루카가 ‘너희 아버지’와 ‘나라’가 나오기 때문에 이곳에 배치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상경 시에는 열 두 제자와 몇몇 부인만이 그분을 따른 ‘작은 양떼‘ 에 지나지 않았다. 종교정치 지도자들도 예수님을 불순자로 간주했기 때문에 두려운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주겠다고 약속하시는데, 인간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물질로 인해 걱정하지 말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 하느님 나라를 위해 애쓰라고 강조하신다.
* 33~34절 : 마태6.19-21에 병행문이 있는 것으로 보면, 금령과 명령이 병행을 이루는데, 이는 귀한 제물을 땅에다 모으지 말고 하늘에다 모으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대한 가르침이다. 루카는 소유에 대한 전적인 포기와 올바른 사용을 강조한다. 34절은 그리스 문헌에 자주 나오는 격언으로, 재물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는 만큼 하늘나라에서 받을 복이 쌓인다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점은 루카가 강조하는 주제다.
* 35~48절 : 종말에 관한 세 가지 비유;
(1)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35-38절)’는 루카에만 나오는 말씀으로, 마르코 13.34-36절에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 비유와 흡사하다. 여기서는 상황이 혼인잔치로 설정되었는데, 혼인잔치는 종말에 펼쳐질 하느님나라의 잔치를, ‘주인은 (퀴리오스)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유다인들은 혼인잔치를 밤에 거행한다. 따라서 종들은 문을 열어주기 위해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린 종을 본다면 주인은 기뻐하며 오히려 자신이 종인 것처럼 띠를 두르고 기꺼이 그 종의 시중을 들 것이라 하신다. 봉사하는 주인의 모습은 최후만찬 식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의 모습과 같다. 종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자신을 기다려준 종들에게 시중을 들기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주인이 있을까요? 아우구스띠누스 성인은 절제로 허리띠를 매고 선행으로 등불을 밝히는 것이 주님을 맞이해야 할 일이라 말한다. 38절은 행복선언으로 ’주인이 밤중이나 새벽에 오더라도 깨어있는 종들은 행복하다‘는 뜻으로 ’하느님 나라가 언제 도래할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이다.
(2) ‘도둑이 불시에 들어온다는 이야기(39-40절)’는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1테살 5.2 ; 2베드3.10 ; 묵시3.3) 말씀을 반영한다. 예기치 않은 시간에 오실 사람의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늘 대비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41-48절)의 비유’는 교회 지도자들의 성실성을 촉구하는 훈계로 한 종이 충성과 불충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그 결정에 따라 주인에게서 전혀 다른 조처를 받는다는 이야기다. 41절에서 ‘준비하고 있으라’는 가르침을 받은 베드로가 그 말씀이 자신들에게 해당되는 말인지 묻는 말에, 루카는 예수의 어록을 옮기면서 ‘종’(마태24.45)과 ‘집사’를 구분하여 주신다. 주인이 종들을 맡기고 나갔을 때 집사인 교회지도자들은 주인의 뜻에 따라 신자들에게 충실하고 슬기로운 봉사자가 되기 위해 비유를 들어 답하신다. 44절은 37절과 대조를 이룬다. 37절은 ‘주인이 종의 역할’을 하고, 44절은 ‘주인이 종에게 모든 재산을 맡긴다’는 내용으로 교회지도자들은 주인이신 주님으로 부터 모든 재산을 책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종말이 지연되는 것을 핑계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종말 심판 때 큰 벌을 받는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요구한 만큼 많이 알게 되면 복음을 실천해야 할 책임도 크다고 하신다.
♠ 복음 요약 :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나라의 충실한 종이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하신다. ‘다른 것들에 생각을 빼앗김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일상에 빠져 지내는 가운데 내가 부모, 청소년, 사제 등 그리스도인으로의 인식을 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이 없는 듯, 청소년은 어른인 것처럼, 사제는 직장인처럼, 그리스도인은 비신자처럼, 예수님 비유에서의 종이 주인인 것처럼 살듯이 말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면서 하느님을 잊은 채 추구하는 최고의 삶인 듯 말이다. 그러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 인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하루의 일상생활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며 하느님과 함께 가정과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지혜로운 삶으로 살아야 함을 일깨우는 듯하다.
♠ 대화방향 : ① 예수님께서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고 하십니다. 내 마음에 비중을 둔 보물은 무엇인가요?
② 예상치 못한 날,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참고문헌 : ▪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가기 (김인호 지음 / 대전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루카복음 주해 (유충희 지음 / 바오로딸 출판사,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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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0주일
2019. 8. 18
루카 12, 49~53
♠ 복음 공부
1)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다. 어떤 주석가는 이 말씀을 복음 전파, 성령 강림, 거룩한 불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리스도께선 이 불을 세상에 붙여 그 불로 세상의 찌꺼기를 태우고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서 오셨으며 "이미 그 불은 붙여졌다." 복음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강림을 예시하는 말씀으로 읽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불로 태우듯 성경으로 세례를 베푸셨다. 이 성경은 맹렬한 불길로 강림하였다.
2) 자기의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의 "예견,"그는 자기가 겪어야 할 고난이 무엇인지, 또한 그 고난을 겪어야 할 불가피한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줄이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함몰이 아닌 ‘세례’로 부른다. 박해 속으로 ‘밀려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구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고난을 ‘성화’시킨다. 세례는 성스런 예식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수난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바쳤으며, 나아가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불사르셨다(히 7:27, 28).
3) ‘복음 전파의 결과는 분열일 것이다.’ 복음의 목적과 그 일반적인 경향은 사람의 자녀들을 서로 맺어 주고, 거룩한 사랑 안에 함께 묶는 것이며, 모두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연 그 결과는 이러할 것이지만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척까지 하여 복음 전파로 그 마음이 더욱 굳어져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기도 함으로 복음이 분쟁의 원인은 아니지만, 분쟁의 실마리는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대화 방향 : 성령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면 성령의 작용인 은사가 내안에 작동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을 통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모습일 때 하느님과 함께 있다고 느끼는지요...? 생활 속에 있는 나를 찾아봅시다.
♠ 참고 문헌 : ▪ 성경주해서 ▪ 교황문헌-복음의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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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1주일
2019. 8. 25
루카 13, 22~30
♠ 복음 공부 : 구원과 멸망
* 22~24절 : 어떤 사람하나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 이 사람의 의도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좁은 문은 어떤 문일까... 요한복음 10,9을 보면 연결이 된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양들이 드나드는 문을 의미한다.
* 25~29절 : 집주인은 문을 닫아 버리면, 밖에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주님께서는 모르신다고 대답하신다.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잔칫상에 초대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 30절 :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이들에 속하는 이들은 성서형제회 형제자매님들이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성서형제회는 아주 작은 모임이다. 하지만 보라, 누가 이병호 주교님 인준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인준을 받았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첫째이다.
♠ 복음 요약 : 비오신부님께서는 고해성사실에서 고해자의 친척이 구원되었냐는 질문에 너의 외삼춘은 구원되었다. 신부님은 고해실에서 영혼들이 구원되었는지 구원 받지 못했는지를 알고 계셨다. 그리고 구원의 문을 여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기도하십시오. 마지못해서라도 기도하십시오.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적게 기도하는 사람은 위태롭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벌 받을 것입니다. 의지를 보시고 상을 주시는 것이지,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위안은 기도에서 옵니다. 하느님은 올바른 지향과 선한 의지로 하는 기도이면 무엇이라도 좋게 받아들이십니다. 기도는 우리 최고의 무기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 없이는 구원은 없습니다. 기도 없으면 그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선택은 그대의 몫입니다. 사람은 책 안에서 하느님을 탐구할 수 있으나, 발견하는 것은 오직 기도 안에서입니다. 천상어머니의 팔에 당신을 맡기십시오. 어머니는 당신의 영혼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펼치십시오! 언제나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나는 성모님을 그 분의 공로에 합당하게 사랑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성인과 천사들 모두가 합쳐도, 성모님을 그분의 공로에 합당할 만큼 찬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한테서 위안을 받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어떤 위안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감실로 가십시오. 거기서 여러분의 마음을 털어놓으십시오. 위안은 거기서 찾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을 소중히 여깁시다. 매순간 시간을 허비하지 맙시다. 다가오는 순간은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바친 시간은 결코 허비된 시간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극기는 가정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를 뉘우치는 사람은 선행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속하는 것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십자가를 사랑과 순종의 정신으로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는 이상, 주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시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이따금씩 숨기시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나가는 시련인 것이고, 주님께서 원하실 때 이 시련은 그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관용을 베푸는 데는 비할 데가 없으신 분입니다.
♠ 대화 방향 : 구원에 과정에서 하느님 은총에 대한 체험을 서로에게 전하며, 구원의 여정을 서로 격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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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주제 발표 >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 루카복음 10. 25 ~ 37 >
임 젤뚜르다 (성자)
서울 이문동 일반팀 FB
예수께서 나아가시는 길에 맨 먼저 걸림돌을 놓는 자는 신학자입니다.
이 학자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간을 생명으로 이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이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없애주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이 사랑의 실천에는 종족, 인종, 종교, 국가, 사회계급의 장벽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와 같은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 특히 가난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모두 내 이웃입니다. 법률가는 사랑에 한계를 놓습니다.
“누가 내 이웃인가?”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느님을 마음과 목숨과 힘과 생각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 자녀요 자기 형제자매인 모든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 자기 형제자매인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요 자기 자신도 참되게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도 율법 선생은 다시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유다인의 이웃은 유다인만을 말하는 것인가, 이방인도 그들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답하십니다. 예리코로 가는 길에 강도에게 당한 사람은 아마 유다인이었을 것입니다. 그 유다인을 사제와 레위 사람은 피해 버립니다. 그 유다인이 죽었을지도 모르고 죽은 사람을 만지면 불결해 지니 차라리 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쓰러져 있는 유다인을 구해주고 치료를 받게 해 준 사람은 유다인들이 싫어하고 무시하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당한 사람이 유다인인지 사마리아인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인정 없는 부자들과 불의한 나라들에게 당하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과 자비가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경계도 한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니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알아 위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복음 말씀을 요약해보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정신을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사랑의 실천에는 종족, 인종, 종교, 국가, 사회계급의 장벽이 있을 수 없으며 유다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따지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웃이고 자비를 베푸는 이는 누구나 이웃이라 하십니다. 출신 성분이나 율법 규정의 준수 여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십니다. “사랑할 사람은 아주 가까이 있다.....네가 이웃이 되어 주라.”
<소나무 신부와 함께하는 마음의 산책>
한 사람이 질문을 받습니다.
“하느님께 꼬박꼬박 기도해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신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그것은 노여움, 이기심, 탐욕, 우울함, 불안감,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얻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얻는 것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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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교리>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교회 - 듣는 교회
팔봉성당 주임신부님 : 윤태종 토마스
- 전주교구 주보 발췌 -
대부분의 가톨릭신자들 뿐만 아니라 타 종교인들, 그리고 심지어는 무신론자들까지도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고, 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산 에지디오 공동체의 창설자인 리카르디(Riccardi)는 현 교황을 ‘모든 이들의 형제’, ‘모든 이들의 아버지’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주지해야 하는 사실은, 만약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대화의 장벽 없이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중을 향한 현 교황의 친화적이고 개방적인 성향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에서 아래로 하달되는 수직적인 구조를 넘어서서 하느님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복음의 기쁨, 154, 171항 참조), 곧 ‘경청하는 교도권’(발터 카스퍼)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가톨릭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선교 명령에 따라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 모든 것을 지키게”(마태28, 19-20 참조) 하는 ‘가르치는 교회’(ecclesia docens)의 모습에 익숙했다.
하지만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 받음으로써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받고, 이러한 감각을 통해 '하느님 백성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라고 선포했다(교회헌장, 12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공의회 교리를 다시금 교회 중심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신자들 전체에게 주어진 ‘신앙 감각’을 통해 하느님이 오늘날의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들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2014.10.04).
때문에 그는 교회가 하느님의 소리와 백성들의 외침을 들어야 함을 천명한다.
“신자 백성, 주교단, 로마의 주교 모두가 서로 들어야 하고, 모두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듣기 위해서이다.” (2015.10.17.).
‘잘 말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는 것이 소통의 첫 번째 원칙임에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면 교회가 하느님 백성을 잘 인도하고 가르치기 위해,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성 아우구스티노) 서로서로가 먼저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너무나도 과장된 말일까?
여기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대답한다.
“ 중요한 것은 내가 듣는 것입니다. […] 서로 대화합시다.
나는 나에 관해 호의적이지 않은 의견 또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가장 아름다운 정의에 따르면, 교황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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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F․B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면서...
안산 원곡본당 FB : 권 토마 (순)
<성서형제회의 특수성>
1. 성경의 말씀을 삶에 충실히 번역시키려고 노력하는 ‘예수님사건의 증인’들인 말씀선포자들의 코이노니아다. 모든 회원들은 말씀선포자가 되어 복음을 선포한다.
2. 신약성경을 충실하게 공부하여 원시교회 공동체의 마음을 읽도록 노력 할 것이며, 회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하느님나라와 주님 뜻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3. 교회의 세신은 성경운동, 전례운동, 하느님말씀의 선교와 교리교사, 평신도사도직, 수도생활의 새 형태, 결혼의 영성, 사회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활동.
4. 예수마리아의 정신으로 살려는 크리스챤들이 이룩한 친교의 현실성을 중요시하며, 성경을 통해 뵙게 된 주님을 자신의 현실 안에서 뵙게 되는데, 기도와 사랑의 실천, 특별히 성체 안에서 만나 뵙는다.
<성서형제회 원칙들>
1. 하느님말씀인 성경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실생활에 충실하게 번역시키려 노력하는 교회의 파견된 사랑의 공동체로서, 하나의 추상적인 모임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해주시는 주님의 지체이기에 철저하게 하느님께 속한다.
2. 성경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실생활에 충실하게 번역시키기 위하여 코이노니아에서 말씀의 봉사를 함으로써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써 자기 자신을 형제에게 준다.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다운 사랑의 삶이 이룩됨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3. 코이노니아에서 성경 본문을 봉독할 때, 회원은 자신의 구원을 예수그리스도 역사 안에서 찾을 것이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분의 강생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에서 자신의 삶이 밑받침되는 희망을 얻게 된다.
4. 회원은 날마다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살아가기 위해 주님의 현존 안에 홀로 있기를 연습해야 할 것이다.
5. 형제가 하느님말씀에 의하여 살아가도록 협력하고, 형제가 진리를 알아 참된 자유를 누릴 때가 십자가의 희생으로 봉헌해야 할 때임을 알게 된다.
6. 하느님말씀과 뜻을 증거해야 할 때가 있을 경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회원들과 그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랑의 행위임을 인정한다.
7. 형제들의 인격의 다양성으로 서로서로 기쁨으로 용서하고, 본받으며, 사랑해야할 책무를 주님으로 부터 받았다는 것뿐이다. 회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받지만, 그 자리는 자기 자신을 낮추어 형제를 섬김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자리 일 뿐이다.
8. 코이노니아 바탕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구원, 그리고 새로운 창조에 있기에 하나의 이상이 아니고 영적현실이다. 영적 현실의 바탕은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진리이며 빛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연적 친교는 욕망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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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많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9년 6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