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아무리 좋은 약도 지나치면 해롭게 마련이다.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약물사용을 일컫는 '
과잉투약'은 비용 뿐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여러 가지 약제를 동시에 복용하고 있는 노인 환자들에게는
다제투여(polypharmacy)로 인한 잠재적인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다.
미국 노인전문약사 인증제도 위원회(Commission for Certification in Geriatric Pharmacy)를 이끌고 있는 토마스 클라크(Thomas R. Clark) 박사는 약계 전문지 '파마시타임즈(Pharmacy Times)'와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복용약제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약물유해반응과 상호작용 위험도 커진다. 이상반응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약제의 처방을 중단하지 못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일선에서 환자들과 만나는 약사들이 과잉투약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클라크 박사는 처방전을 검토하는 짧은 순간 동안 다음의 6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제시한다.
◆처방약이 FDA 허가사항에 맞게 사용되고 있나?불필요한 약제처방을 막기 위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오프라벨' 처방을 제외하는 것이다.
경구용 날트렉손(naltrexone)을 예로 들어보자. 이 약은 알코올 및 오피오이드 의존증에 관한 치료 적응증으로 FDA 승인을 받았지만, 병적도벽(kleptomania)이나 강박적 도박(compulsive gambling), 발모광(compulsive hair pulling) 같은 충돌조절장애에도 효과가 있다는 일부 예비연구 결과들이 나와있다. 자해 예방이나 섬유근육통(fibromyalgia) 치료에도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클라크는 "약사들이 이러한 허가 외 적응증에 대한 처방을 지지하는 논문들 중 어떤 것도 강력한 근거를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록에서 오프라벨 처방이 확인된다면 처방을 한 의사와 직접 컨택해 적합한지 여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환자가 복용하는 약이 다른 약들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나?환자가 복용하는 약제의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약물상호작용이 심할 경우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CYP3A4 기질의 경우,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약제의 절반가량에서 대사작용에 영향을 미쳐 효과를 감소시킨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약물상호작용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환자반응이 낮아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또한 2015년 미국노인병학회(AGS)가 제시한 주의 의약품 처방(Beers Criteria)에서는 항콜린 약물들은 익히 알려진 항콜린효과로 인한 질병 부담(anticholinergic burden) 외에도 인지기능 저하와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약물상호작용이 있다고 알려진 주요 약제들을 10가지 정도로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우울증 치료제 플루옥세틴(Fluoxetine)과 페넬진(Phenelzine)
△강심제로 사용되는 디곡신(Digoxin)과 부정맥 치료제 퀴니딘(Quinidine)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Sildenafil)과 이소소르비드 단일질산염(Isosorbide mononitrate)
△염화칼륨(Potassium chloride)과 이뇨제 스피로락톤(Spironolactone)
△강압제 클로니딘(Clonidine)과 베타차단제 계열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
△항응고제 와파린과 해열진통제 디플루니살(Diflunisal) 테오필린(Theophylline)과 항생제 시프로플록사신(Ciprofloxacin)
△조현병 치료제 피모자이드(Pimozide)와 항진균제 케토코나졸(Ketoconazole)
△항암제 계열 메토트렉세이트(methotrexate)와 프로베네시드(probenecid)
△도파민 촉진제 브로모크립틴(bromocriptine)과 슈도에페드린(Pseudoephedrine)
◆환자가 치료 목적 이외에 보충제를 복용하고 있나?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사실. 다제투여의 위험성이 처방약에만 해당하는 개념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다수 환자들이 비타민 같은 영양보충제는 부작용이나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약사를 포함한 의료서비스 제공자들은 환자들에게 복용하고 있는 보충제 현황을 꼼꼼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이 보완대체의학 사용에 관해서는 잘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사들도 다수 나와있는 실정이다.
비타민류 중에는 비타민 A와 E가 심각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존재한다. 특히 와파린을 복용하는 환자에서 항응고작용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또한 마그네슘은 항생제의 흡수를 감소시킬 수 있어 항생제 복용 2시간 전이나 6시간 뒤에 복용하도록 시점을 조절해줄 필요가 있다.
◆복용하고 있는 약물의 부작용이 혜택을 능가하나?의외로 약제로 인한 이상반응이 혜택보다 크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통합의료관리 협력단체인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하는 남성은 중증 발기부전을 경험할 확률이 높았다. 베타차단제, 티아자이드 및 클로니딘 같은 항고혈압제나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삼환계항우울제(TCA), 리튬, 모노아민산화효소억제제(MAOI) 등의 정신과 약물이 발기부전을 일으킬 연관성이 높은 약물로 지목됐다.
그 외 탈모예방 목적으로 처방되는 프로페시아(피나스테리드)는 간혹 일부 남성에게서 여성형 유방을 유발할 수 있고, 후라질(메트로니다졸) 같은 항생제나 항우울제 엘라빌(아미트립틸린), 근이완제 로박신(메토카르바몰) 등은 소변색을 검은 색 또는 녹색으로 변하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항을 환자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큰 일이다.
◆한 가지 약물이 다른 약제의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나?클라크 박사는 노인 환자들을 가리켜 '연쇄처방의 늪(prescribing cascade)에 떨어진 피해자'라고 표현했다. 환자들이 호소한 증상이 새로 처방받은 약제로 치료되더라도, 약을 끊는 대신 그 약으로 인해 생긴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다른 약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프로피온(bupropion)에 의한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트라조돈(trazodone)이 처방되는 사례는 정신과에서 매우 비일비재하다.
클라크 박사는 "만약 환자가 치료약물로 인한 오심(nausea) 증상 때문에 또다른 약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공복일 때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거나 음식과 함께 복용하라는 간단한 팁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복용 약제를 한 가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기증에 의한 오심을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하루 중 약을 복용하는 시간도 중요하게 따져봐야 한다.
◆약 없이도 증상치료가 가능한가? 마지막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약물치료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느냐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속쓰림(heartburn)은 약을 먹지 않고 환자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증상이다. 침대의 머리를 높이거나 체중감량, 늦은 밤에 식사를 피하는 것 모두 임상적 개선효과가 있음이 증명됐다.
알레르기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라면 항히스타민제나 흡입형 스테로이드(ICS)를 처방하는 대신,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에 창문과 문을 닫아놓고 야외활동을 피하도록 하는 등 알레르기 항원노출을 최소화 하는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