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65)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244) – 베드로전서 강해(1)
베드로전서 강해(1) – 베드로전서 1장
베드로전후서 강론은 사도 바울의 편지들과 비교하면서 두 사람에게 임한 깨달음과, 일어난 구원 사건을 서로 비교하는 시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 구약의 모세율법과 선지서들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자신이 받은 유대교 교리와 성경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구약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후, 베드로를 만나 15일 동안 함께 보냈다.(갈1:18) 베드로에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구원 사건이 일어난 것인데, 두 사람이 만나 각자 체험했던 깨달음과 은혜와 구원 사건으로서의 거듭남과 새로운 창조를 꼼꼼하게 비교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던 것이다.(갈2:6)
거듭남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구원 사건이다 (1-13)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와 유럽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공동체(디아스포라) 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대들이 택함을 받은 것은 세상 원리에 속하지 않고 세상과 구별되게 만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순종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은혜와 평화가 충만하기를 먼저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중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심(거듭나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살아 있는 소망을 주셨고, 우리가 하늘에 간직된 상속물을 받게 하셨다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
거듭남은 새로운 창조이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구원 사건이다. 그 핵심은 존재의 이유의 교체이다. 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삶에서 현재와 미래의 우리의 행복을 위한 삶으로의 교체이다. 즉 클레로스의 형성과 성장과 확산을 위한 삶으로의 교체이다. 존재의 이유가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과는 무관한 존재인 것이다.
번역본들은 상속물을 죽은 다음에 받는 것으로 해석했지만, 상속물은 이 땅에서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마지막 때에 드러날 구원을 위하여 그대들의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드러날 구원이란 종말 때의 우주적 구원을 의미한다.
그 구원은 이 땅에서 시작되어 영원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는 구원인 것이다. 그래서 그대들은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현재 보호를 받고 있고 종말 때까지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들은 크게 기뻐하고 있으며 비록 지금 잠시 여러 가지 시험으로 고통을 겪더라도 그대들은 그 신뢰함에 대한 연단으로 더욱 값진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의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험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더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들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볼 수 없으나 신뢰하고 있으며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찬미로 크게 기뻐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그대들의 신뢰의 최종 도달점인 생명의 구원을 받은 자들의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구원은 종교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 구원에 대해서는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했는데 이 구원은 메시아가 오신 이후에 일어날 예언이라는 것을 선지자들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가 오신 것을 인정하면 예레미야 언약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한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심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적 탐심에 의한 교리일 뿐이다. (유대인들은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에 모세 율법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서 예레미야 언약이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수신자들은 들은 것이다. 이 구원 사건은 너무나 신비한 일이어서 하나님의 사자들도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구원 사건에 해당된 자들은 택함을 받아 거듭남이 일어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신(디아노이아)을 집중하고 깨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대들에게 주어질 은혜를 흔들림 없이 소망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의 소망은 현실에서 진행되는 구원에 대한 소망과, 내세에서 이루어질 종말 이후 완성될 구원에 대한 소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실에서의 구원은 존재의 이유가 바뀌어서 클레로스의 형성과 성장과 확산을 위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14-25)
14절부터는 현실 이야기가 나온다.
현실에서의 구원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종말 이후 완전한 구원에 대한 소망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본론은 현실에서의 구원이다.
수신자들은 거듭남이 이미 시작된 자들이며, 순종하는 자녀들이며, 순종할 수 있도록 재창조된 자들 답게 진보하는 구원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아직 완성된 구원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정상적인 인간의 욕망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에피듀미아(육체적, 정신적, 종교적 욕망)를 따르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권면의 내용으로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 되라는 것과, 하나님은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분이니 (산상수훈의 결론도 행위이다) 이방인으로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존재의 이유가 바뀌어서 클레로스의 형성과 성장과 확산을 위한 새로운 삶을 사는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인 것이다. 따라서 두려움을 가지고 살라는 것은 싸르크스의 유혹을 받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며 떨어야 하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 싸르크스가 제압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존재의 이유가 바뀌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감격이 있는 것이다. 즉 떨며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신자들이 더 깊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다. 수신자들은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삶에서 풀려난 사람들이다. 유대교 교리와 유대교라는 종교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흥 없고 티 없는 어린 양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대들은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 분으로 말미암아 신뢰하고 있는 자들이니 그대들의 신뢰와 소망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수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인공인 것이다. 구원이 시작된 자들로서 우리는 인간의 영역에서 회개와 간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그대들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 서로 가식함이 없는 사랑을 나누게 되었으나 수시로 싸르크스의 유혹에 흔들릴 수 있는 과도기적인 존재들이니 더 깊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은 풀과 꽃과 같은 인생이나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서 새로운 피조물들은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는 구원받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종말과 내세 구원은 이 말들을 하기 위해서 전개된 것이다.
핵심은 이 땅에서 진보하는 구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엄숙 자매입니다.